- 문화 계승 못 한 채 자리만 옛 터 암시

‘고촉(古蜀)’에 관한 문헌은 사마천의 ‘사기’의 ‘촉왕본기’와 동진(東晋)시대 상거(常璩)가 쓴 지리지 ‘화양국지(華陽國志)’에 단편적으로 남은 기록뿐이다. 한나라 때 청두 출신의 학자 양웅(揚雄)이 쓴 ‘촉왕본기’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처럼 가물거리는 기억의 나라지만 그 땅에는 ‘천부(天府)’라는 이름 덕분인지 수많은 사람이 살아왔다. 지금도 중국 32개 성(省)·시(市) 중에서 네 번째로 많은 82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다. 티베트족, 이(彝)족, 묘(苗)족, 회(回)족, 강(羌)족 등 다양한 소수민족이 살고 이족과 티베트족, 강족의 자치주는 쓰촨성 전체 면적의 절반을 넘을 정도다. 그렇지만 한족이 약 95%로 절대다수이고 자치주는 대부분 해발이 높은 산지이다.

	중국 쓰촨성 거리 곳곳마다 촉(蜀)의 깃발이 아직도 나부끼고 있다.

‘사기’는 진(秦) 혜문왕(惠文王, 기원전 356년~기원전 311년) 때 고촉과 파를 멸한 것으로 기록한다. 그렇다면 최소한 이전 그 땅에 살았던 사람은 ‘촉족’으로라도 흔적을 남겼어야 할 텐데 그런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한족 유비가 그 땅에서 세운 나라 이름 ‘촉한(蜀漢)’으로 짐작할 수 있다. 소위 중원 땅에서 소란이 일거나 큰 재해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촉 땅으로 피해가거나 그곳에서 내일을 도모했다. 분지(盆地)를 둘러싼 험준한 지세는 안전에 유리했고 천부는 살아가고 도모할 밑천이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천하가 안정되면 중원의 사람을 이주시키기도 했다. 불안한 배후가 되어서는 안 되니 사람으로, 머릿수로 한족의 땅을 만든 것이다. 옛 촉의 후손들은 주류세력이 된 한족에 슬그머니 편입되었을 테고.

어쨌거나 다양성의 혼융(混融) 덕분인지 천부의 축복인지, 쓰촨에서는 수많은 인재가 태어났다. 두보(杜甫)와 함께 중국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는 이백(李白), 당송팔대가에 나란히 이름을 올린 소순(蘇洵) 소식(蘇軾, 소동파) 소철(蘇轍) 3부자를 비롯하여 주더(朱德) 덩샤오핑(鄧小平) 양상쿤(楊尙昆) 등 현대 중국 건국의 주역들도 다수이다.

쓰촨에는 거리 곳곳마다 ‘촉’이라는 깃발이 나부낀다. 까닭을 물어보면 대답은 ‘여기는 촉이니까’라고 답한다. 그저 지역 문화를 내세우는 것 같지도 않다. 뿌리는 잊었는데 전통에는 자긍심이라니, 아무래도 허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