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루블화 급락으로 옛소련 형제국인 중앙아시아 각국의 외환시장이 휘청거리며 경제위기가 역내에 확산할 조짐이다.
타지키스탄 중앙은행은 8일(현지시간) "올해 들어 지금까지 소모니(타지크 통화) 가치가 총 7% 하락했으며 이 중 4%는 지난달 떨어진 것"이라고 밝혔다고 현지언론인 '아시아플러스'가 보도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중앙은행은 "러시아는 타지크의 주요 교역국이라 대다수 제품이 러시아로부터 들여오고 있다"며 "루블화 하락이 소모니를 평가절하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은 그러나 "소모니는 곧 안정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주민들에게 시중에서 떠도는 물가 급등설에 동요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런 가운데 타지크 민심은 험악해지고 있다.
수도 두샨베에 사는 아이누라 소요로바는 "지난주 휘발유 1리터의 가격은 3.20 소모니였으나 지금은 3.50 소모니다. 또 밀가루 한 포대의 가격도 145 소모니에서 160 소모니로 올랐다. 당국은 걱정하지 말라지만 어떻게 걱정 안 할 수가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주민 비비샤리프 미르조예바는 "러시아에서 일하는 아들이 매달 150달러를 보내왔지만, 이제는 100달러만 보내고 있다"며 루블화 하락으로 가계수입이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했다.
사미딘 두스토프 타지크 경제연구소 소장은 "타지크 한해 국내총생산(GDP)의 50% 이상이 러시아에서 일하는 타지크 이주노동자들이 보내는 송금액"이라며 경제위기는 이미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키르기스스탄도 상황은 비슷하다.
키르기스 중앙은행은 4일 루블화 하락에 따른 환율방어를 위해 이날 하루만 2천470만 달러를 외환시장에 투입했다고 발표했다. 중앙은행은 앞서 지난달 28일에도 3천225만 달러를 외환시장에 쏟아부은 바 있다.
누르벡 제니시 중앙은행 부총재는 당시 "환율개입으로 올해 초보다 외화보유액이 8.69% 감소했다"고 밝히면서 국가 경제위기를 우려했다.
키르기스 당국은 또 올해 물가상승률을 10.6%로 전망하며 이는 러시아 루블화 약세 등 대외 경제상황 악화 탓으로 보고 있다고 현지 일간 '아키프레스'는 전했다.
가난한 산악국가인 타지크와 키르기스는 자국민 수십만 명이 러시아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 경제는 루블화 급락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루블화 약세로 이미 한차례 홍역을 치른 카자흐스탄은 추가 위기를 맞고 있다.
카자흐 중앙은행은 올해 2월 최대 교역국인 러시아의 루블화 약세에 대한 선제조치로 자국통화인 텡게화의 달러당 환율을 하루 새 약 18%나 올렸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오히려 일시적 물가급등에 따른 소비재 품귀현상 및 일부 시중은행에서 뱅크런(대량예금인출) 사태가 벌어지며 국내경제가 요동쳤다.
카자흐 경제는 이후 진정국면을 맞는 듯했으나 최근 루블화가 애초 예상치보다 더 떨어지고 국제유가마저 하락하며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당국은 현재 연내 추가 평가절하는 없다는 입장이다.
카자흐 국가경제부는 지난달 경제현황보고에서 "루블화의 달러당 환율은 10월 기준 연초보다 22.9% 떨어졌고 같은 기간 텡게화의 실질 환율 하락폭은 12.6%"라며 "앞서 17.8%의 평가절하를 한 만큼 아직 여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위기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지 투자전문회사 '알파리'의 금융전문가 안나 코코레바는 "유가폭락, 환율변동 등으로 정부의 예산지출이 감소하며 카자흐 경제는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카자흐 금융권 관계자들은 "시중에서 텡게화의 추가 평가절하설은 공공연한 사실이다"며 "대부분 기업은 절하폭을 약 10%로 예상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마친 상태"라고 밝혔다.
2009년부터 고정 환율제를 고수하는 투르크메니스탄도 루블화 하락에 따른 민심의 동요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지난 10월 투르크멘에서는 루블화 하락으로 자국 통화가치가 급락해 은행에서 달러를 사지 못한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이에 당국이 즉각 진화에 나섰으나 불안감에 사로잡힌 시중 환전소들이 한동안 달러 사재기에 나서며 현지 외환시장은 몸살을 앓았다.
한편, 국제통화기금(IMF)은 러시아 탓에 중앙아시아의 경제성장 둔화세가 내년까지 계속될 것으로 진단했다.
IMF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러시아의 경제불안이 이어지고 중앙아시아는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며 이 지역의 2014-2015년 평균 경제성장 전망치를 앞서 5월발표보다 0.75% 떨어진 5.5%로 낮춰 잡았다.
아울러 역내 국가들이 러시아 경제불안에 따른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경제성장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IMF는 조언했다. 디지털뉴스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