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의 방북이 성사될 경우 몇 가지 측면에서 시의성이 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우선 AP통신의 보도처럼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의 핵심인사 방북은 사이버 공간의 마지막 국경선인 북한의 존재를 새삼 국제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세계에서 가장 인터넷 통제가 엄격한 나라인 북한이 김정은 체제를 맞아 외부세계와 관계 설정을 과거와 달리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이다.

특히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1일 신년사에서 '경제강국'이라는 단어를 반복해서 언급한 것이 이런 맥락에서 의미 있게 받아들여진다.

김정은 제1비서는 '과학기술 발전에 기반한 경제강국의 건설'을 역설했다. 이는올해 북한 최대의 과업으로 `경제' 부문의 도약을 천명한 것이며 그 수단으로 인터넷을 포함한 첨단 정보통신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외교적 측면에서 볼 때 슈미트 회장의 방북 카드는 미국의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둔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비록 지난해 말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경고에도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했지만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적대시 정책의 철폐'를 전제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줄곧 피력해왔다.

현재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제재를 추진하고 있지만 워낙 폐쇄적인 북한에 끼칠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두차례 핵실험을 바탕으로 이미 핵보유국임을 천명한 북한이 장거리 로켓이라는운반 수단을 갖추면 미국으로서도 '위협 관리' 차원에서라도 북한과 접촉을 미룰 수없는 상황이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 북한에 '간첩혐의'로 억류돼 있는 한국계 미국인 케네스 배(한국명 배준호) 씨 문제는 간과할 수 없는 소재가 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억류돼 있는 미국인 석방 문제를 북미 관계에서 적절한 카드로 활용해왔다.

지난 2009년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평양으로 초청해 억류한 여기자 2명을 석방했고 이를 고비로 북한과 미국 간 관계 개선 가능성이 외교가에 제기됐다.

슈미트 회장과 함께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가 방북할 것으로 알려진 것도 이런 측면에서 주목된다.

AP통신은 소식통들을 인용해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북한에 억류 중인 배 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 관리들과 접촉을 시도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했던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지난 1994년 이래 수차례 방북한 바 있고 이 중 두 차례는 북한에 강제 억류된 미국인 석방 협상을 했다.

게다가 북한과 상당한 접촉선을 확보한 토니 남궁 씨가 동행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외교 소식통들은 북한이 슈미트 회장 일행의 방북을 고리로 미국에 모종의 메시지를 전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의 당국자들은 매우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주미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2일(현지시간) "슈미트 회장의 방북 성사 여부에 대해서도 확실하지 않다"면서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억류 미국인의 석방이라는 '인도적 카드'를 활용하려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미국 당국 차원의 '교감'이나 개입은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슈미트 회장의 방북이 보도된 대로 이달 중 성사될 것인지, 그리고 성사된다면 억류 미국인의 석방이 가시화될 것인지 등 복잡하게 얽힌 사안의 전개를 지켜봐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