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된 29일(현지 시간) 미 국회의사당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마치 미국과 세계 경제의 앞날을 예고하는 듯하다. 워싱턴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의 구제금융법안이 29일 하원에서 부결되자 미국은 벌집쑤신 듯 패닉 상태에 빠져들었다. 부시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고 유럽에서도 법안 부결에 대해 한 목소리로 비난을 쏟아부었다.

▷뉴욕증권거래소 "악몽과 충격"=이날 7000억 달러 구제금융 법안이 미 연방하원에서 부결되자 뉴욕증권거래소(NYSE)의 트레이더들은 머리를 싸맨 채 충격에 빠져들었으며 거래소는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

이어 한 펀드매니저는 중개인들에게 거래를 철회하라고 소리쳤고 앤서니 콘로이의 트레이더들은 입전되는 통신사 뉴스들과 방송을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쳐다봤다. 콘로이의 수석 트레이더는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악몽"이라며 "내가 일하며 지켜본 22년 중 요즘의 시장 불안정성은 최악"이라고 말했다.

▷의원들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켰던 미 의회 조차 공황상태에 빠져들었다. 법안이 표결에서 '부결'로 가는 양상을 보이자 법안 통과에 총력을 기울였던 양당 하원의원들은 충격에 빠져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삼삼오오 모여 대책을 논의했다.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는 예상치 못했던 최악의 상황에 다가가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전자표결기를 쳐다봤고, 법안을 지지했던 몇몇 의원들은 폭락하는 주식시장의 낙폭을 중계하며 소리치기도 했다.

표결 마감시간이 다가오자 긴장은 극에 달했다. 결국 반대 228 대 찬성 205로 법안 부결이 확정되자 화가 난 의원들은 기자들 앞에서 상대당을 맹비난했다.

▷유럽도 '뿔'났다=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미국의 구제금융법안 부결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BBC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백악관에 미국이 결정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는데 표결 결과가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피터 만델슨 유럽연합(EU) 통상 담당 집행위원도 미 의회가 "제정신이 아니다"며 거칠게 비난했다. 그는 "미국이 보여준 정치적 당파성과 무책임함을 유럽이 반복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美국채 수익률, 기술주 폭락=법안이 부결되자 투자자들이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미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TB)에 몰려 미 국채 수익률이 크게 떨어졌다. 2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0.44%포인트가 하락해 뉴욕에서 1.66%까지 떨어졌고 10년 만기채도 수익률이 3.58%까지, 30년 만기채도 4.11%까지 급락했다.

실리콘밸리 첨단기술 사업을 주도하는 유수의 기업체들도 주가가 폭락했다.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대표 기업인 애플은 29일 구제금융안 부결 소식이 전해지자 주가가 18% 떨어진 주당 105.26달러를 기록, 지난해 5월 이후 최저치로 마감했다. 또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 구글은 주가가 이날 12% 가량 내려가 거의 2년만에 처음으로 나스닥 주가가 400달러 밑으로 떨어지는 등 나스닥 시장에서 주요 기술주는 종합지수가 이날 하루동안만 전체적으로 9% 이상 폭락했다.

▷부시, 식물대통령으로 전락=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2008년 9월 29일'은 '2001년 9월 11일'만큼 잊혀지지 않는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9월 11일'은 부시 대통령이 테러조직 알카에다로부터 예상치 못한 '테러'를 당한 날이고, 하원에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된 '2008년 9월 29일'은 정치적 동지인 공화당 의원들의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날이 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년 1월 20일 퇴임을 앞둔 부시 대통령은 발등을 찍힌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부시 대통령으로선 자기당 의원들조차 설득 못하는 '식물 대통령'임이 입증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