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니 프랭크(오른쪽) 미국 하원 금융위원장이 29일(현지시간) 7000억 달러 구제금융법안의 부결을 선언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선택한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조치가 29일(현지시간) 하원에 의해 '법안 부결'이라는 철퇴를 맞았다. 이 때문에 미국은 물론 전 세계 금융시장이 위기를 맞고 있다.

미 정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해결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장의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심화되는 신용경색을 해결할 묘안을 찾기 힘들어 결국 구제금융을 다시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왜 부결됐나

미국의 보통 사람들은 금융위기의 주범인 월가의 금융인들에게 세금으로 회생의 기회를 부여하는 조치에 대해 심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월가의 금융인들은 탐욕스러운 데다 능력도 없어서 이번 위기를 자초했고, 국민의 세금을 통해 회생을 노리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치고 있다. 이것이 표에 민감한 의원들의 '반란표'를 촉발한 주요 배경이 됐다.

이와 관련, 폭스비즈니스닷컴은 이날 반대표를 던진 다수 의원들이 '구제금융 입법안이 설마 부결되겠느냐'는 생각에 이 같은 유권자의 반발을 의식한 투표행위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도했다. 실제 폭스비즈니스닷컴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 가량이 구제금융안에 찬성한 의원에게 표를 주지 않겠다고 답한 반면 표를 주겠다는 답변은 10%에 불과했다.

또 법안 논의 초기부터 발목을 잡았던 공화당 의원들의 뿌리깊은 국가개입에 대한 반대성향도 부결을 야기한 주요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사느냐, 죽느냐…마의 일주일

부시 행정부와 여야 지도부 등이 사태수습을 위한 조율에 나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주는 세계금융시장에 그야말로 마(魔)의 일주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전문가들은 미국과 전 세계가 금융위기 확산 방지를 위해 총력전에 나서지 못하면 재무구조가 취약한 금융기관들 그리고 대외적 충격에 약한 국가들부터 먼저 위기 상황으로 내몰려 이들 중 일부는 시스템이 중단되는 멜팅다운 현상을 불가피하게 겪게될 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모기지 관련 부실로 유동성 위기에 직면해 있는 미국 금융기관들은 물론 자금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금융기관들에게 이번 주는 그야말로 '사느냐 죽느냐'를 결정하는 기로가 될 수도 있다. 그만큼 사태가 급박하다는 얘기다.

대안은 어디에

헨리 폴슨 미국 재무장관은 구제금융 법안이 부결된 뒤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폴슨 장관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 있을까.

미 정부가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의회에 7000억 달러의 공적자금 승인을 요청한 것은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을 인수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미국 금융시장의 가장 큰 문제는 신뢰가 무너져 자금이 돌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 정부가 직접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채권을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 바로 구제금융법안이다. 그러나 의회가 이를 불허했다. 이렇게 되면 재무부로서도 당장 자금시장에 숨통을 틔울 방법을 찾기 어렵다. 종전처럼 우량채권을 담보로 잡고 국채를 빌려줘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법은 국채도 물량이 달려 불가능하다.

일부에서는 최후의 수단으로 정부가 금융회사들의 채권을 직접 매입해 유동성을 지원하는 방법이 동원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하지만 이 방법은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는데다 채권시장을 왜곡시킬 수 있어 쉽지 않다. 결국 미국 정부는 의회에 구제금융 법안의 통과를 다시 한번 호소하는 것 이외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