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길태 정유정 등 굵직한 사건 참여
- 프로파일러 특채 2기 20년 ‘베테랑’
- 피해자와 그 가족 지원책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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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9일 부산경찰청 과학수사과 김해선 범죄분석관(경위)이 대화로 범죄자 심리를 읽어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심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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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부산경찰은 몸을 숨긴 김길태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해 2월 사상구에서 13세 여중생을 납치·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이었다. 현장 인근 빈집에서 그를 발견하고도 놓쳤다. 이후 전국 수배와 밤샘 수색에도 좀처럼 그를 붙잡지 못했다.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부산경찰청 과학수사과 범죄분석관(프로파일러) 김해선(44) 경위는 공중전화 사용 기록에 주목했다. 범행 전후 이동 경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동안 살아온 지역을 크게 벗어난 적도 별로 없다. 낯선 곳보다 익숙한 생활권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었다.
“수도와 전기가 끊기지 않은 빈집에서 밥을 해 먹고 잠을 자던 사람이었다. 그런 특성을 알고 있으니 그 지역이 더 편할 수 있다고 봤다. 전국에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부산을 벗어났을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김길태는 사건 발생 15일 만인 그해 3월 10일 현장 인근에서 붙잡혔다.
프로파일러 특채 2기로 들어와 20년 가까이 강력사건을 분석한 김 경위를 지난 19일 만났다. 사회학을 전공하고 경찰 시험을 준비하다 범죄분석요원 채용 공고를 본 것이 입직 계기였다. 그는 “범죄자와 대화해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데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가 놓지 않는 질문은 범행의 이유다. 김 경위는 “누구를 만나든 이 사람이 왜 이런 범행을 했는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범죄자의 말만 믿을 수는 없다. 수사 자료와 배경 정보를 참고해서 진술을 함께 본다”고 설명했다.
‘부산 또래 살인’ 정유정 사건에서는 우발적 범행이라는 주장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들여다봤다. 당시 김 경위는 ‘살인사건 피의자의 진술이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고 면담에 나섰다. 가족에 대한 피해의식이 비현실적으로 심했고 분노도 많았으며, 칼로 찌르는 행위에 생각이 고착돼 있었다. 그는 “개인적인 불만을 표출하려 한 계획적 범행일 수 있겠다고 봤다”며 “범행 도구가 피해자 집에 있던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도서 대출 내역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 내역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수사관들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정유정이 계획적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란 취지다.
피해자 지갑은 버리려 하면서 신분증은 따로 챙긴 행동도 눈에 띄었다. 도서 대출 내역에는 ‘화차’가 있었고, 면담에서도 동명의 영화를 좋아한다고 했다. SNS에서는 신분을 위조하려 한 정황이 있었다. 김 경위는 이 기록과 행동을 연결해 범행 동기를 추정했다. “본인은 피해자가 부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정황을 봤을 때 자기 처지를 비관해 분풀이 목적으로 살해한 뒤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분석했다”고 한다.
범죄자와의 대화는 안부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식사는 하는지, 잠은 어떻게 자는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 자기 이야기를 꺼내도록 한다. 김 경위는 “처음부터 범죄 이야기를 하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거짓말을 하거나 과시적으로 이야기해도 일단 듣는다”며 “그중 더 물어볼 부분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한다. 본인이 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음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을 여러 번 찾아가기 어려워 한 차례 면담은 보통 3, 4시간 이어진다. 후반부에 가면 상대가 자기 이야기를 많이 꺼낸다고 한다. 그는 “남들은 안 들어주는 이야기를 내가 잘 들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으로 계속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 내 일이다. 그 말에 실수가 있을 수도, 우리가 몰랐던 정보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분석에 활용하는 자료도 달라지고 있다. 김 경위는 “예전에는 정황을 이야기하면 자백했는데, 요즘은 정황을 다 들이대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수사물이나 온라인 정보를 접할 기회도 많아졌다”며 “정유정이 말을 하지 않아 SNS를 통해 그 사람을 파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SNS에는 자기 관심사가 무엇인지 드러난다. 예전에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 정도가 중요했다면 이제 게시물과 접속 이력, GPT와 나눈 대화까지 분석에서 중요해진다”고 덧붙였다.
사건이 끝나도 피해자의 모습은 오래 남는다. 이웃에게 가족을 잃은 ‘도라지차 사건’의 아이가 그랬다. 김 경위는 “잘못한 사람은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뻔뻔하게 부인하는데, 아이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을 느끼며 힘들어했다. 너무 마음 아팠다”며 “그 사례를 보며 피해자 가족에 대한 심리·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정유정 사건 피해자의 가족에 대해서도 “너무 조용히 슬퍼했다.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봤다.
경력이 쌓여도 배움은 끝나지 않았다. 매년 보수교육을 통해 진술 평가와 면담 기법 등 업무에 필요한 지식을 익힌다. 20년 가까이 현장을 지켰지만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자신의 부족함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똑같은 사건은 하나도 없다. 범죄자를 만나거나 사건을 분석할 때마다 ‘나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더 열심히 하고 전문성을 키워야겠다고 아직도 생각한다”고 전했다.
김 경위는 이상동기 범죄 예방을 위한 당부를 덧붙였다. 그는 “고립되고 소외된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타인에 대한 이유 없는 적대적 범죄가 늘고 있다”며 “부산경찰은 112 반복 신고 분석 등을 통한 조기 개입과 세심한 치안으로 범죄를 예방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상동기 범죄 같은 강력범죄를 예방하려면 경찰뿐만 아니라 법무 복지 의료 등 다양한 유관기관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 대한 심리적 사회적 지원 체계도 강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