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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형준 전 부산시장(왼쪽)과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지난해 10월 31일 면담에서 생곡마을 소각장 이전 대책을 논의하는 모습. 김도읍 의원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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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추진돼 국비와 시비 3158억 원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어렵게 토지보상, 주민이주합의까지 마친 사업이다. 부산시민 전체 생활폐기물 처리 방식을 좌우하는 대형 시책 사업이기도 하다. 이 사업 방향이 시장과 국회의원 단둘이 수차례 나눈 면담으로 바뀌었다. 시장 구두 언급은 그 자체로 정책 결정 효력을 갖지 못한다. 본지가 이 발언 이후 정상적으로 거쳤어야 할 행정절차를 짚어본 결과 ▷공식 지시 문서 ▷시의회 사전 보고 ▷협의 내용 공식화라는 주요 단계가 모두 비어 있다. 부산시가 이 같은 법적 절차와 막대한 매몰비용 위험을 외면한 채 구두 합의만으로 사업을 멈춰 서게 하면서 행정 혼선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지 변경, 어떤 절차를 거치나
4일 강서구 지역 국회의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면담 내용에 따르면, 박형준 전 부산시장은 지난해 10월 31일 해당 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의원님과 주민들이 반대하면 추진이 어렵다. 제3의 부지를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나온 직후 부산시는 진행 중이던 생곡마을 광역폐기물처리시설(소각장) 타당성조사 용역을 정지시켰다.
생곡마을 부지는 폐기물시설촉진법에 따라 입지선정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됐다. 부지를 변경하려면 국토계획법상 도시관리계획 변경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입안과 주민 열람·공고, 주민 의견 청취, 관계기관 협의, 지방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변경 결정·고시를 다시 밟아야 한다. 시장 구두 발언만으로 기존 결정을 취소할 수 없으며, 별도 행정처분이 필수다.
새 부지 지정을 추진하려면 법률 제9조에 따라 입지선정계획을 재공고하고 주민대표가 참여하는 입지선정위원회를 새로 꾸려야 한다. 전문연구기관 타당성조사, 해당 지역 세대주 과반수 동의, 주민설명회, 공청회, 실시계획 인가까지 처음부터 재진행해야 한다. 환경영향평가도 새 부지를 기준으로 다시 받아야 한다.
이미 수용한 토지는 토지보상법 제91조를 적용받는다. 사업 폐지나 변경으로 수용 토지가 불필요해지면 원소유자는 보상금을 반환하고 토지를 되찾는 환매권을 행사할 수 있다. 생곡마을 부지 포기 시 기존 보상·매입 토지 전체가 환매권 대상에 오른다. 공익사업 변환 제도를 활용해 환매권 행사를 막는 대안도 존재하나 실제 전환 가능 사업을 사전에 검토해야 한다.
생곡대책위원회와 체결한 주민이주합의서 처리 문제도 발생한다. 이주를 마치거나 보상받은 주민에게 원상회복을 요구하기는 불가능하다.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사업이라 지방재정법상 지방재정투자심사, 타당성조사를 재수행해야 한다. 국비 포함 사업 특성상 환경부 등 중앙부처와 사업계획 변경 협의도 새로 거쳐야 한다. 사업 부지 변경은 지방자치법상 부산시의회 보고 대상에 해당한다.
●시장 발언 이후 필요한 절차는
박 전 시장이 발언한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정상적인 절차는 크게 일곱 단계로 나뉜다.
첫째, 시장이 구두로 언급한 내용은 그 자체로 정책 결정이 될 수 없다. 담당 실국인 환경물정책실에 공문이나 지시 메모 형태로 ‘생곡마을 대안 검토’를 공식 지시하고, 그 지시가 기록으로 남았어야 한다.
둘째, 실국은 대체부지 후보의 타당성과 기존 매몰비용, 환매권 문제, 추가 소요기간, 예산 영향을 담은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고 부시장과 시장 결재를 받았어야 한다.
셋째, 진행 중이던 타당성조사 용역은 이미 체결된 계약이다. 발주기관 사정으로 이를 멈추려면 지방계약법에 따라 계약상대자와 협의해 계약변경, 즉 일시중지 협약서를 작성하고 그때까지 수행된 부분에 대한 기성 대가를 정산했어야 한다.
넷째, 이미 편성된 용역 예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예산부서와 협의해 지방재정법상 절차를 밟았어야 한다.
다섯째, 3158억 원 규모 정책 전환이라면 관례상 상임위인 복지환경위원회에 사전 또는 즉시 보고했어야 한다.
여섯째, 생곡마을 원주민과 에코델타시티 주민 양쪽에 사업 방향이 재검토되고 있다는 공식 설명이나 문서도 필요했다.
일곱째, 시장과 국회의원 사이에 실제로 전면 재검토 합의가 있었다면, 그 합의 내용을 면담 결과 보고서나 양해 형태로 남겼어야 한다.
●무엇이 빠졌나
본지가 앞서 확인한 사실관계와 부산시의회 회의록을 종합하면, 여덟 단계 가운데 최소 세 단계는 공식 문서로 확인되지 않는다. 우선 전임 시장의 공식 지시 문서는 부재했다. 담당 부서는 사전에 이 계획을 공유받지 못했고, 이후 공문을 통한 지시도 받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내부 검토보고서는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무 차원의 검토 자료였을 뿐 시장이나 부시장 결재를 받은 공식 문서 형태로는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취재됐다.
공식적인 시의회 사전 보고 여부는 확인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 부산시의회 의원은 지난해 11월 10일 행정사무감사에서 “부산시장과 국회의원 간 전면 백지화를 포함한 재검토 협의가 있었는데 실무진 차원에서는 엇박자가 났다”며 “윗선과 아랫선이 엇박자가 남으로써 오히려 혼선만 가중됐다”고 지적했다. 같은 해 12월 1일 회의에서도 이 시의원은 문제를 재차 짚었고, 당시 담당 실장은 “기억하고 있다”고만 답했다.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식 설명이나 문건도 확인되지 않는다. 해당 지역 국회의원 홈페이지를 보면 공식문서와 투명하고 책임 있는 논의 과정을 요청하는 글이 이어졌다. 부산시도 부지 재검토와 관련해 공식적인 설명회 등을 개최하지 않았다. 시장과 국회의원 간 협의 결과를 정리한 시 내부 공식 문서 역시 부재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고위 공직자는 “3000억 원이 넘는 대형 시책 사업을 공식 문서나 법적 절차 없이 구두 합의만으로 중단한 것은 행정의 법치주의와 책임성을 무너뜨린 행위”라며 “시스템을 무시한 정치적 접근은 행정 신뢰도를 실추시키고, 그로 인한 매몰비용과 수백억 원대 재정적 피해는 결국 시민 부담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