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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82> 이도경 부산과학기술대 교수

그림으로 병상의 절망 떨쳐…시니어 문화예술 여정 돕다

  •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
  •  |   입력 : 2026-05-19 18:44:07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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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경 교수는 2024년 11월 한국예술문화명인 유아다례 부분 최초 명인으로 선정됐다. 사진은 이 교수(가운데)가 수업 시간 학생들에게 다도 예절을 지도하는 장면. 이 교수 제공
-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전신마비
- 그림에 대한 갈망이 나를 살려
- 시니어 대상 학과 개설에 온 힘

- 미술·음악·댄스 동아리도 활발
- 전시회 열고 각종 공모전 수상
- 묻어뒀던 꿈들 꺼내며 삶 치유


◇ 이도경의 인생이모작 귀띔

- 내 안의 진짜 해보고 싶었던 것을 찾아 다시 시작하십시오.

대학 강단에서 교육에 헌신하던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시련을 맞았다. 갑작스러운 뇌출혈과 전신 마비. 극한의 비극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 병상의 1년 6개월 동안 스케치북을 부여잡고 그림을 그리면서 회복은 시작됐다. 완치 후 대학으로 돌아온 그녀는 인생 2막을 새롭게 열었다. 성인학습자들의 문화예술 교육을 위한 학과를 만들고, 그들이 묻어 두었던 꿈을 다시 꺼내도록 돕기 시작했다. 부산과학기술대학교 이도경(61) 교수의 이야기다.


-안녕하세요. 지금 어떤 행사를 준비 중이신가 봅니다.

▶그림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문화예술복지과는 특별한 행사 때만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평소에도 모여 그림을 그리고, 각자 반찬을 준비해 와서 점심도 함께 나누며 왁자지껄하게 지냅니다.



-문화예술복지과라는 이름이 독특합니다. 어떤 학과입니까.

▶말 그대로 문화예술을 통해 삶을 다시 풍요롭게 만드는 학과입니다. 졸업하면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지만, 우리 학과의 진짜 힘은 음악 미술 댄스 다도 같은 문화예술 활동 그 자체를 즐기는 데 있습니다. 나이 들어 배우는 예술은 취미를 넘어 자기 안에 묻어 두었던 감각을 다시 깨우는 일입니다.



-요즘 전문대학의 분위기가 많이 변했지요? 여기는 주로 어떤 분들이 입학하나요.

▶정말 다양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복지시설이나 병원, 교직에서 일하다 퇴직하신 분들도 있고, 공무원 출신들도 있습니다. 전업주부로 살아오다 학교에 오신 분들도 많습니다. 이분들은 단순히 자격증만 따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이모작의 시기에 다시 학교에 다니며 자신의 시간을 새롭게 설계하고, 좋은 사람들과 공통의 교과목을 통해 깊은 친교를 나누는 것이죠. 우리 대학은 동아리 활동도 아주 활발합니다.

대학의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전문대학이 청년들을 산업현장으로 보내는 기술·취업 중심의 학교였다면, 지금은 그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성인학습자들의 새로운 배움터로 변모하고 있다. 인생이모작기에 다시 모여 삶을 재설계하도록 지원하는 학교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동아리 활동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집니까.

▶미술의 경우에는 학생들 중 60, 70, 80대에 처음 붓을 잡은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만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굴이 달라지고, 삶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방학 때나 졸업 후에도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피카소’라는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이 밖에도 ‘황금소리’ 합창 동아리, 다도 동아리인 ‘향기로운’, 댄스 동아리인 ‘BIST 소녀시대’, 파크골프 동아리인 ‘늘푸른’도 있습니다.

-동아리 활동이 잘되는 모양입니다.

▶성인학습자들의 학습 열망은 정말 뜨겁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그것이 평생 이루지 못한 꿈을 향해 가는 늦깎이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분들에게 그림은 단순한 취미가 아닙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삶에 대한 치유이자, 꿈에 다가가는 길이며,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그러기에 자기 작품을 세상 앞에 조용히 내놓으며 자신의 미래를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졸업전시회뿐만 아니라 ‘스승-제자 동행전’ 같은 기회도 마련합니다. 저에게도 그림은 병실의 절망 속에서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생명의 사다리였기에, 특히 애정을 쏟고 있습니다.



-그림에 그렇게 특별한 애정을 갖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원래 보건학 박사이고, 유아교육 박사이기도 합니다. 젊은 시절 큰 유치원을 12년 경영했고, 대학에서도 유아교육과 교수로 일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거의 1년 반을 병상에서 보냈습니다. 눈을 뜨면 눈물이 계속 났습니다.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데 머릿속 생각은 또렷했습니다. 그러니 더 슬펐습니다. 침상에서 그저 눈물만 흘리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이 그림입니다.



-말씀을 듣는 저도 마음이 아프군요.

▶그런데 생명의 끝에 서 있는 것 같던 어느 순간,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었지만 미대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삶의 끝점처럼 느껴지던 자리에서 다시 그림에 대한 갈망이 치솟아 올라왔습니다. ‘나는 그동안 나를 위해 살지 못했구나. 학교에서 일만 하며 살아왔구나. 이제부터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것을 해야겠다’.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남편에게 스케치북과 색연필을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병상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그린 스케치북이 600권이 넘었습니다. 그림은 저에게 단순한 회복 훈련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살고 싶다는 절규였고, 다시 살아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직업을 바꾸는 일만이 인생 2막이 아니다. 때로는 평생 묻어 두었던 색 하나를 다시 꺼내는 일도 인생 2막이다.



-그 경험이 문화예술복지과 설립으로 이어진 것입니까.

▶네. 회복 후 저는 미술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다시 석사를 마쳤으며, 지금은 홍익대 박사과정 중에 있습니다. 또한 인생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되면서, 학생들의 작은 열망이라도 대학이 최선을 다해 품어야 한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2년간 비워두었던 대학에 복직해 입학처장 보직을 역임했었고, 그리고 그 일을 하며 전문대학의 새로운 미션도 보았습니다. 공학기술과 취업 중심의 대학이 이제는 문화예술 치유 복지 같은 성인학습자 중심의 라이프 대학으로 변화해야만 경쟁에서 앞서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시니어 대상 학과들을 만들게 된 것입니까.

▶네. 당시 문화예술복지과를 비롯해 시니어연기모델과, 스마트도시농업복지과 등 시니어 대상 학과들의 초안을 만들었습니다. 이 변화를 아시고 부산과학기술대학에는 지금 신중년들이 정말 많이 찾아옵니다.



-제자들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이 행복한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입니다. 물론 기본기는 중요합니다. 붓 쓰는 법, 색을 쓰는 법, 재료 다루기 등은 대충 넘어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목적은 하나입니다. 캔버스 앞에서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그림을 통해 내면을 다독이고 성숙해지기를 바랍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닫힌 문을 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는 국회 아트갤러리 전시를 포함해 19차례의 개인전 외에도 100여 회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일본 아이치현립미술관 초대전, 나고야 핑거포럼갤러리 초대전에도 참여했다. 또한 한국현대여성미술대전, 현대조형미술대전 등에서 특선을 수상하고, 월드아트엑스포에서는 우수상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고기능성 스킨케어 브랜드 한스라벨르의 대표 제품인 sc 앰풀 대용량 6종에 밝고 부드러운 파스텔톤을 입혀 화장대 위의 작은 갤러리를 만들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피카소 동아리 제자들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던 분들이 어느 순간 “다음 전시는 언제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이 변화가 큽니다. 처음에는 학생이었지만, 나중에는 자기 작품을 설명하고 다음 작품을 구상하며 전시회를 기다립니다.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하며 삶에 새로운 중심이 생긴 것입니다. 자식 걱정, 건강 걱정, 나이 드는 걱정을 하던 일상 속에 ‘내 작품’이라는 세계가 들어간 것이죠. 인생 후반기에 자기 세계가 있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 세계가 있는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제자들의 삶에서도 느끼는 것이 많으시겠습니다.

▶피카소 동아리에는 허점순(84) 학우처럼 여든이 넘어 처음 붓을 잡은 늦깎이도 있고, 황복순(75) 학우처럼 그림을 그리면서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 행복해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또한 신금자(76) 학우나 전경화(64) 동아리 회장처럼 그림을 통해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드시는 분도 계십니다. 묘향 스님을 비롯해 지면상 다 언급하지 못한 분들의 이야기도 소중합니다. 이들의 삶은 인생 후반의 배움이 얼마나 뜨겁고, 또 얼마나 사람을 새롭게 만드는지를 보여줍니다.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무엇이든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림이면 그림,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공부면 공부,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을 하나 잡으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이제 늦었다”고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늦었다고 말하는 순간 정말 늦어집니다. 일단 시작하면 그때부터 시간이 다시 열립니다. 저는 그림을 그릴 때마다 스스로 주문을 겁니다. “나의 그림을 보는 모든 이들은 이 그림이 힐링제가 되어 미래가 더욱 풍요롭게 빛나기를.”



이도경 교수는 그림으로 자신을 치유하며 다시 산 사람이다. 그리고 이제는 제자들이 그림으로 성장하는 장면을 만들고 있다. 인생 2막의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사람이 살아나고, 그 살아난 힘이 다른 사람의 삶을 깨우는 것. 그래서인지 그녀의 그림 색상은 신비로울 정도로 곱다. 이제 인생 2막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가 아니라 “아직 내 안에 어떤 색이 남아 있는가”여야 한다. 이 교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름답고 환상적인 색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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