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보 직장가입자 자격도 못 얻어
- 한국어 강사 ‘수업시간’만 급여
- 고용주 제도 악용 없도록 보완을
부산지역 한 사립대 어학당에서 외국인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강사 A씨는 일주일에 10시간만 수업한다. 시간당 수당은 3만 원 선으로 적지 않아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교재 연구, 수업 자료 준비, 학생 시험지 채점 등에 쓰이는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해 오직 교단에 선 ‘수업 시간’에 대해서만 급여가 나오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정영주 일반노조 사무국장은 “다문화가정 방문지도사 사정도 비슷하다. 주 3~5 가정을 방문해 한국어와 학습을 지도하는데, 한 곳에 갈 때마다 2시간씩 인정받아 주당 노동시간은 15시간에 못 미친다”고 말했다.
■주 15시간 아래엔 아무것도 없다
19일 부산연구원이 공개한 ‘2025 부산일자리 종합실태조사’에서 비정규직 평균 근로시간이 13.7시간으로 추락한 결과는 A씨 같은 ‘초단시간 노동자’가 부산 노동시장의 주류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현행 노동법 체계에서 ‘주 15시간’은 법적 권리와 박탈을 가르는 보이지 않는 벽이다. 이 벽을 넘지 못하는 노동자 앞에는 거대한 제도적 공백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즉각적인 타격은 주휴수당 실종이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법적으로 하루치 유급휴일 수당이 나오지만,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제외된다. 시급 1만 원을 기준으로 하루 8시간씩 주 5일을 일하면 주휴수당만 월 30만 원이 넘는다. 여기에 1년을 꼬박 일해도 유급 연차휴가 15일이 주어지지 않으며, 퇴직금도 받을 수 없다.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건강보험·국민연금 직장가입자 자격도 얻지 못한다. 여러 곳에서 쪼개기 알바를 하더라도 각 사업장 단위로 시간을 따지기 때문에 합산 적용도 안 된다. 결국 보험료 전액을 홀로 감당하는 지역가입자로 전환되거나, 부모 등 가족 피부양자 자격에 기대 건강보험증을 유지해야 한다.
■비정규직 절반 이상이 사각지대
한국 노동법이 그어놓은 경계선인 ‘주 15시간’을 밑도는 근로자는 몇 명이나 될까. 개별 근로자 단위로 주 15시간 미만 해당자가 몇 명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이번 조사에서 비정규직 근로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비율은 46.0%, 산재보험 45.6%, 건강보험·국민연금은 42.7%에 그쳤다. 비정규직 22만3079명 중 절반이 넘는 이들이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주 15시간 미만 초단시간 근로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노동 현장에서 초단시간 일자리가 급증한 배경에는 기업의 인건비 절감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 사업주들이 비정규직을 고용하는 이유로 인건비 절감을 꼽은 응답은 2021년 7.4%에 불과했으나, 올해 20.4%로 폭증하며 고용 사유 2위에 올랐다. 비정규직 보유 사업체 비율도 이 기간 21.8%에서 37.0%로 늘었다. 법정 수당과 4대 보험 부담을 피하려는 고용주들이 근로시간을 주 15시간 미만으로 맞추는 이른바 ‘쪼개기 채용’을 고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거 단기 아르바이트생 보호를 위해 예외적으로 둔 ‘주 15시간 미만 예외 조항’을 고용주들이 비용 절감의 합법적 탈출구로 악용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부산노동권익센터 김희경 정책연구부장은 “일자리를 인위적으로 쪼개는 행태가 만연해지면 근로자 소득 저하와 사회안전망 해체로 이어져 지역 경제 전체가 침체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시대 변화에 맞춰 초단시간 근로자에게도 근무시간에 비례한 노동 권리와 사회보험 혜택을 보장할 수 있는 조례 제정 등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