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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찾은 부산항 신항 7부두(동원글로벌터미널부산, DGT)의 공기는 차갑지만, 보이지 않는 데이터의 흐름으로 뜨거웠다. 과거 항만 노동자의 거친 호루라기 소리와 컨테이너가 바닥에 부딪히며 내던 굉음은 자취를 감췄다. 대신 정적을 깨는 것은 전기 모터의 구동음과 센서가 데이터를 주고받는 미세한 비프음뿐이다. 컨테이너 무인 이송장비(AGV)가 바닥에 매설된 트랜스폰더를 따라 오차 없이 미끄러지고, 93m 높이의 안벽 크레인은 원격 제어 센터의 지시에 따라 거대한 로봇 팔처럼 컨테이너를 집어 올린다.
■국산 기술로 일군 완전 자동화 터미널
이곳은 국산 기술로 완성된 국내 최초 ‘완전 자동화 터미널’이다. 선박은 터미널 운영 시스템(TOS)과 정교한 AI 관제 아래 가장 효율적인 하역 서비스를 받는다. 현재 3개 선석을 운영 중인 DGT는 전체 개장이 예정된 2027년 이후 연간 500만 TEU 이상의 물동량을 처리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AI 기반 자동화 시스템 덕에 하역 속도는 유인 항만 대비 20% 이상 향상될 전망이다. 특히 모든 장비를 전동화해 내연기관 중심의 기존 터미널과 달리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인 ‘친환경 그린 포트’를 구현했다.
박정재 DGT 사업지원실장은 “완전 자동화 항만은 인명 사고 위험 요소를 원천 차단해 안전사고를 최소화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큰 장점은 ‘예측 가능성’이다. 시스템이 설정한 생산성에 따라 하역 작업이 일정하게 진행되므로, 선사는 입항부터 출항까지 정교한 운항 스케줄을 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극항로 시대 ‘유연성’이 경쟁력
이 같은 ‘지능형 항만’의 진가는 미래 북극항로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수에즈 항로와 달리 북극항로는 유빙의 이동, 돌발적인 블리자드(눈보라를 동반한 겨울 폭풍), 기온 변화에 따른 해빙 속도 등 ‘불확실성’이 변수다. 아날로그 방식의 항만으로는 수시로 변하는 선박의 도착 시간을 감당하기 어렵다.
부산항만공사(BPA)가 진해신항을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항만으로 구축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북극항로 시대, 부산항의 경쟁력은 ‘속도’가 아니라 ‘유연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진해신항은 부산항 신항 7부두에 AI 기능을 더 강화한 ‘AX(AI 전환)’를 통해 차원이 다른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핵심은 BPA 주도로 국내 업체들과 함께 개발 중인 통합 장비 제어 시스템(ECS)이다. 기존 터미널 운영 시스템(TOS)이 각 장비에 개별 명령을 내렸다면, 새롭게 도입되는 ECS는 AI를 통해 안벽크레인(CCTC), 무인 이송 장비(AGV), 야드크레인(TC) 등 모든 장비를 실시간으로 통합 제어한다. 해당 시스템은 올해 말까지 완성도를 높여 내년 3월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다.
진해신항의 메인 서버는 북극해를 지나는 선박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할 수 있다. 선박이 베링 해협을 통과하는 순간, AI는 기상 상태와 선속을 분석해 입항 시간을 분 단위로 예측하고 최적의 선석을 미리 배정하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가상 세계에 실제 항만을 구현해 시뮬레이션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이 현실화되는 셈이다. 북극해를 건너온 선박의 상태를 로봇이 스캔하고, 선원이 내리지 않아도 드론이 선용품을 배달하며, 하역과 동시에 친환경 LNG 벙커링이 이뤄지는 ‘원스톱 서비스’ 구현도 머지않았다. 북극해의 변덕스러운 기상을 뚫고 온 선박들에 부산항은 가장 정교하고 빠른 ‘스마트 게이트’가 된다.
■진해신항 ‘스마트 게이트’ 활짝
BPA는 북극항로 개방에 따른 물동량 증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진해신항 건설을 본격화하고 있다. 진해신항은 2032년 1단계 9개 선석 개장을 시작으로, 2·3단계를 거쳐 2040년 총 21개 선석 규모로 조성된다. 선석당 연간 처리 능력은 89만 TEU(기존 신항 65만 TEU)로 설정됐으나,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면 100만~110만 TEU 이상도 처리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BPA 유창훈 메가포트팀장은 “기존에는 크레인과 이송 장비 간 유기적인 소통이 부족해 대기시간이 발생하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며 “AI 기반의 ECS가 적용되면 장비들이 최적의 위치에서 대기하는 등 항만 운영의 ‘끊김 없는’ 연동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해신항은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까지 완벽히 갖춘 스마트 항만이 될 것”이라며 “국산 기술 중심의 자동화 인프라를 통해 부산항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물류 허브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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