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계는 사망시 처벌 우려
- “중과실 아니면 형사 면책을”
- 환자·시민단체 “과한 요구”
병원과 의료진이 형사고발과 막대한 배상 책임을 우려해 적극적인 치료에 부담을 느끼면서 소아청소년 응급환자가 제때 병원을 찾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의료계는 응급 환자 치료 중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이유로 환자가 사망하면 형사 책임 면제를 요구하나 환자단체와 시민단체는 과도하다고 맞서 대안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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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 곳곳에서 응급실 운영이 파행하는 가운데 부산 동아대학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김동하 기자 |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부산지역 소아청소년 인구 1000명당 전문의 수는 1.01명이라고 18일 밝혔다. 1·2차 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전문의와 진료를 보지 않는 전문의도 포함된 수치로, 이들이 응급실 당직을 서는 경우는 적다. 지역에서 소아청소년 응급환자가 안심하고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은 전무한 셈이다. 지난달 고교생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으며 지난 15일에도 병원에서 수액을 맞다가 쇼크가 온 10세 여아를 병원 13곳에서 수용을 거부하는(국제신문 지난 17일 자 6면 보도) 일이 벌어졌다. A 양은 최종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 21분이 걸렸다. 이 과정에서 6분간 심장이 멎었다. 혈압과 맥박은 회복했지만 의식은 되찾지 못했다. A 양 수용을 거부한 병원 가운데는 지역 상급종합병원 네 곳 모두 포함돼 있었다.
의료계는 전문의도 부족하지만 잇따른 소아청소년 뺑뺑이의 핵심 이유로 치료 중 환자가 사망하면 발생하는 형사 책임과 막대한 배상금을 꼽는다. 앞서 2023년 서울에서 유아가 ‘장 중첩증’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 수술이 필요했지만 소아 외과의가 없어 일반 외과의가 수술을 했다가 후유증이 발생했다. 법원은 병원이 소아 외과의에게 수술을 맡기지 않은 책임을 물어 약 1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결 이후 병원과 의료진은 소아청소년 응급환자 받지 않으려 한다.
지역의 한 대학병원 의사는 “지금보다 의사가 적었던 10년 전에는 전공이 달라도 일단 아이 목숨부터 살렸지만 현재는 소아 전문의가 아니면 손을 대지 않고 병원은 119에서 연락이 와도 환자를 안 받았으면 하는 눈치”라며 “형사 책임과 막대한 배상금 부담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의료계는 앞으로 소아청소년 뺑뺑이는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본다. 의료진은 응급 등 필수의료 진료 중 고의나 중과실이 아닌 이유로 환자가 사망하면 형사 면책이 가능하도록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 제정을 요구한다. 하지만 환자단체가 반대하자 시민단체는 대안으로 조사절차 간소화를 제시한다. 경실련 관계자는 “면책은 반대하지만 의료진에 무조건 형사 부담을 안기는 것도 우리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며 “정부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기구를 설치해 의료 사고를 판단하게 하고 불가항력적 사유라면 수사까지 가지 않도록 하는 간소화 방안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시는 정부가 소아청소년이 언제든 응급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거점병원을 도입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 합당한 권한 부여를 바란다. 시 관계자는 “올해 하반기 고위험 출산에 대비해 의료 자원을 상황에 맞게 투입하는 권역 모자센터 시범 사업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냈다. 정부가 이와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면 응급실 뺑뺑이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