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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658> 성평등과 성조화 ; 음양과학 차원에서

  • 박기철 소락소암 암장·전 경성대 교수
  •  |   입력 : 2025-12-07 18:48:45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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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성 인지 감수성 및 성평등에 관한 강연 의뢰가 들어왔다. 정년퇴임한 교수에게, 그것도 나의 전공과 한참 거리가 먼 주제의 강의였다. 강의를 요청하신 분은 평소의 나답게 뻔하지 않은 내용으로 발표하면 된다고 했다. 흔쾌히 응했다. 신선한 발상이 필요했다. 강연장에서 30분 동안 무슨 말을 할지 잠들기 전 베개 위에서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빅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음양론을 중심으로 성평등에 대해 논하자는 콘셉트 방향이 잡혔다. 이후 내 머릿속 온갖 빅데이터들을 끄집어내 꿰맞추며 파워포인트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요즘 인공지능이 그런 것까지 만든다는 데 필요 없었다. AI가 도저히 만들 수 없는 나만의 독창적 발표를 하기 위해서니까.

음양론을 기반으로 한 ‘성 차이 공감력과 성조화’에 관한 강연 후 관계자들과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음양론이라고 하면 동양의 음양 철학이 떠오른다. 뭔가 비과학적 비현실적 시대착오적 고리타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크게 잘못된 통념이다. 음양론은 고대 중국 ‘황제내경’과 ‘주역’ 등으로부터 유래한 동양철학이면서, 원자를 설명하는 현대 서양 과학의 핵심이다. 전자는 음(-) 전하를, 원자핵 안 양성자는 양(+) 전하를 지닌다. 음인 전자와 양인 양성자로 만물이 이루어지고 생명이 태어난다.

원자를 이루는 전자와 양성자는 결코 서로 평등치 않다. 한 원자 안에 양성자 개수에 맞는 개수의 전자가 있어 평등한 듯 보이지만 진실은 불평등하다. 일단 질량 차이가 크다. 양성자와 달리 전자는 그 질량을 측정할 수 없을 만큼 가볍기에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기에 다른 원소와 전자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끌거니 밀거니 하면서 온갖 화학 반응을 이룬다. 그럴 리 없겠지만 만일 한 원자 안에서 전자가 양성자와의 질량 평등이나 개수 평등을 고집하여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냥 원자로만 멀뚱멀뚱 아무 반응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도 소금도 돌도 흙도 사라질 것이다. 식물의 광합성도 동물의 세포호흡도 없을 것이다. 사람도 없다. 물질과 생명의 종말이다. 하지만 원자 속 전자와 양성자의 불평등·불균형으로 인해 이 세상은 조화롭게 돌아간다. 음양의 평등 아닌 음양의 조화 덕분이다.

서로 똑같아야 한다는 평등은 이념 속에 존재하는 그럴듯한 개념이다.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평등하지 않다. 천간(天干) 하늘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10개이지만, 땅인 지지(地支)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12개다. 그런 불평등 체제로 60년 한 바퀴가 다채롭게 돌아간다. 만일 천간과 지지의 개수가 똑같다면 단조로울 것이다. 도레미파솔라시도 7음계에서 미와 파, 시와 도의 음정 간격이 다른 음들과 평등을 위해 지금처럼 반음이 아니라 온음을 고집한다면? 음악적 조화(harmony) 없이 단조로울 것이다. 흔한 말로 자웅을 겨룬다는데, 암컷과 수컷 새인 자웅(雌雄)은 서로 다투듯 겨루지 않는다. 다만 암수를 가릴 수는 있어도….

이러한 기본 취지로 남성과 여성의 성평등보다 여성과 남성의 성 조화를 제안했다. 성 대립을 야기할 수 있는 예민한 성 인지 감수성보다 포용적 성 차이 공감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00여분 여성 청중들 반응을 나름 들을 수 있었다. 발표 다음 날 이러한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부산여성NGO연합회, 성평등보다 성 조화 새 담론 제시.” 이 정도면 내 제안이 수용된 걸까? 아마도 앞으로 AI는 내 제안을 인용하며 성조화에 관한 여러 스토리들을 꾸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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