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임덕후가 만든 민주주의 깃발
- 자체 제작한 스티커·머리띠 등
- 거리 나선 시민 열망 가득 담겨

12·3 계엄 사태 1주기를 맞아 열린 기획전시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시민의 물품이 전시된 가운데 기증품에 얽힌 갖가지 사연이 눈길을 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3일부터 부산 중구 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3층 잡은펼쳐보임방(기획전시실)에서 ‘시민의 빛, 부산에서 타오르다’ 전시를 시작했다. 12·3 계엄 사태 이후 부산에서 이어진 시민 행동과 사회의 변화를 기록한 타임라임, 당시 현장을 지킨 시민 인터뷰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파면 선고까지 걸린 123일 동안 열린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는 식민지역사박물관과 함께 지난 7월부터 이 전시를 기획했다. 각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에 전시의 취지를 알려 탄핵 집회 당시 시민이 사용한 응원봉과 피켓 스티커 깃발 옷 200여 점의 물품을 기증받았다.

기증품에는 여러 사연이 담겼다. 장갑(사진)을 기증한 이지희 씨는 한겨울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에서 사회를 보고 있었다. 맨손으로 마이크를 잡은 이 씨의 모습을 본 한 시민은 자신이 착용하고 있던 장갑을 벗어 이 씨의 손에 쥐어줬다. 이후 해당 장갑을 간직하고 있던 이 씨는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연대라는 증표로 기증을 결심했다.

자제 제작한 스티커와 배지, 머리띠 등을 기증한 시민도 있다. 소진희 씨는 탄핵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이들 물품을 집에서 한정 수량으로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집회에 나설 때마다 주변 사람들에게 스티커 등을 선물하며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공유했다.

‘게임 덕후’가 기증한 물품도 있다. 한 시민은 온라인 게임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NPC(논 플레이어 캐릭터) 대사를 인용해 “이제 겸사겸사 세상을 구하는 것쯤은 익숙하지 않습니까”라는 문구가 담긴 깃발을 만들어 국회와 서울 남태령 등 전국 곳곳의 집회 현장을 돌아다니며 목소리를 냈다. 집회 참석을 위해 지인과 무드등을 만들었는데 응원봉 등장으로 몇 번 써보지도 못하고 기증한 ‘웃픈’ 사연도 눈길을 끌었다.

이날 열린 전시 개막식에서는 풍물굿패 소리결 김인수 대표가 ‘민주주의 큰 기’를 들고 등장해 힘차게 흔드는 퍼포먼스를 보였다. 전시장에는 나만의 깃발 만들기 또는 응원봉 굿즈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이동일 부산민주공원 관장은 “1년 전 우리는 두려운 마음으로 총구를 막았다. 학살의 기억이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했다”며 “우리의 새로운 세계를 위해 잡은 손을 놓지 말길 바란다. 민주부산의 후예로 일어선 시민께 이 전시를 바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