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직자였던 박태덕 원장이 기틀
- 전쟁고아 등 대학 진학까지 지원
- 각계 어른된 이들 형제회 모임
- ‘아버지’‘어머니’라 부르며 추모
- 11월 창립 80돌… 향후 행보 관심
지난 5월 12일 한낮 부산 금정구 노포동 볕 잘 드는 너른 언덕에 자리한 남광사회복지회 뜰에는 화사하게 차려입은 할아버지 할머니 11명이 모였다. 92세 김석명(전 민주신보 사진기자, 부산시 공보과 근무) 옹부터 김용길(87·부산수산대학교 출신, 선장 역임), 김상철(85·캐나다 34년 거주) 어르신, 한국 문단의 큰 작가 유익서(80) 그리고 거센 세월의 풍파에 맞서 삶을 잘 살아낸 느낌이 역력한 멋진 할머니 할아버지들. 90대부터 70대까지, 평균 연세가 81.2세인 일행 11명은 먼저 뜰에 있는 추모비 2기를 찾아가 비석을 어루만지고 닦았다.
그러면서 모두 이렇게 인사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희 왔습니다.” 이 어르신들이 눈물마저 글썽이며 “부모님”이라고 부른 두 비석의 주인공은 1945년 남광사회복지회를 설립한 박태덕(1992년 작고) 송혜상(2004년 작고) 부부다. 이날 찾아온 이들은 ‘남광형제회’ 회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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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부산 금정구 남광사회복지회의 잔디밭 마당에서 직원 80여 명이 모여 80주년을 자축하며 마음을 다지고 있다. 이원준 기자 |
■형제회가 찾아온 날남광사회복지회는 출발점을 1945년 11월 18일로 잡는다. 일제강점기이던 1942년 12월 1일 설립된 남광학원이 그 전신이다. 일제가 패망하면서 남광학원은 미군정 하 부산부로 귀속돼 보건후생국의 기구가 된다. 뒤이어 공직자이던 박태덕이 제4대 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사회복지기관으로 기틀을 놓고, 오늘의 남광사회복지회로 이어진다. 공식 자료 ‘남광 70년사’는 ‘1945년(11월 18일)을 남광사회복지회의 원년으로 하며, 1년간 시설 기반을 다진 뒤인 1946년 12월 1일을 개원일로 정했다’고 기록했다. 남광은 부산에서 가장 역사가 긴 사회복지법인으로 꼽힌다.
“제가 1951년 1월 5일 열세 살 때 남광학원에 들어왔습니다. 6·25 전쟁 때 아버지와 함께 피란 내려오다가 수원에서 헤어져 혼자 부산까지 왔거든요.” 87세 김용길 옹이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친부가 계신 곳을 찾겠다고 부산시청으로 갔다가 실패하고 박태덕 원장님을 만났죠. 그때 부산시청 근처에서 적기(부산 남구 감만동 우암동 일대)까지 통선(배)이 다녀서 타고 갔죠. 누군가 저더러 ‘고아원으로 가는 것’이라고 해 불안했지만 달리 갈 수 있는 곳도 없었어요.”
남광형제회는 남광사회복지회 초창기에 해당하는 아동복지시설 남광학원에서 살았던 이들이 만든 모임이다. 당시 말로 ‘고아’라고 했다. 70대에서 90대에 이르는 회원들을 남광사회복지회는 해마다 한 번꼴로 초대해 친교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세상 산전수전 다 겪고 자기 세계를 굳건히 갖췄을 이들 고령의 회원이 지금도 아이처럼 설립자 박태덕 송혜상 부부를 ‘아버지 어머니’로 부르는 모습은 놀라웠다.
■아직도 “아버지 어머니”이날 회원들의 인사말과 회고는 내용이 엇비슷했다. 남광 초기 역사에 다가가기 위해 ‘1951년 들어간’ 김용길 옹을 ‘대표’로 삼아 그의 회상과 소회를 좀 더 들어보자. 1970년 노포동으로 옮겨오기 전까지 남광은 부산 남구 대연동 1170번지 일대 약 1만6500㎡(5000여 평) 터에 있었다. 지금도 있는 대연동 남광시장의 이름이 바로 이 남광학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정부 지원은 전무했고, 사회복지라는 관념조차 없었으며, 한국 전체가 찢어지도록 가난한 가운데 6·25 전쟁이 터져, 피란민이 부산으로 끝없이 밀려들고 전쟁고아와 불우한 이웃과 부랑인이 폭증하던 시절이다.
“논밭을 가꿀 수 있어서, 쌀 시금치 고구마 감자 고추 쪽파 … 하여간 농사를 정말 열심히 지었어요. 일반 가정은 굶어도 우린 굶지 않았어요. 낮에 일하고 밤에 학교 가는 원생이 많았죠.” 그가 덧붙였다. “당시 설립자는 피란민도 도우면서 저희에게는 교육을 강조하셨죠. 우리는 그 진심 어린 노력을 느꼈습니다. 학교를 다 보내줬어요. 야간이라도 다니게 했죠. 저도 야간 중학교·고등학교를 거쳐 부산수산대학까지 쭉 다녔습니다. 우리는 아버지 아버지 하면서 따랐죠. 두 분 다 정말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고아’였던 김 옹은 뒷날 선장이 되어 바다를 누볐다.
한국 문단에서 존재감이 큰 유익서 작가도 회원으로 참가했다. 그도 남광에서 자랐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육을 받았고 중요한 작가가 될 수 있었다. “남광에서 받은 자양분이 지금도 내가 작가로서 작업하게 해줍니다. 남광의 아버님 어머님 고맙습니다.”
■다시, 새로운 과제 앞에이쯤에서 현재로 돌아와 보자. 광복 80년을 거치며 가난·혼란·절망 속에 헤매던 1940년대 대한민국은 K-컬처를 세계로 뿜어내는 경제강국으로 거듭났다. 그런 만큼 사회가 커지고 복잡하고 다양해져 새로운 과제에도 직면했다. 남광은 어떻게 됐을까? 대한민국과 거의 비슷한 길을 걸었다. 지난 6월 19일 열린 남광사회복지회 이사회 자리에서 현황에 관해 들을 수 있었다. 길고 길었던 역사 이야기를 대폭 생략하고, 2025년 남광사회복지회가 하는 일을 보자. ▷아동복지=NK아이빌·와치지역아동센터·절영어린이집 ▷지역복지=남광종합사회복지관·절영종합사회복지관·와치종합사회복지관 ▷노인복지=하회원·남광재가노인지원센터·와치재가노인지원센터·남광노인주간보호센터·와치노인복지센터·절영재가장기요양기관·충무효노인복지센터 ▷장애인복지=기쁜우리사회복귀시설·어울림주간보호센터·절영발달지원센터.
이를 ‘많다’는 관점보다 ‘한국 사회복지 영역이 이토록 다양해졌다’는 측면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남광사회복지회 박도영 대표이사는 “복지 영역은 매우 복잡해지고 있다. 초고령화, 청년 세대 불안, 돌봄 격차, 새로운 국면을 맞는 아동복지 등 과제가 급속히 늘어난다.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하는 서비스 등 상담 고도화, 스마트 돌봄 시스템 등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래 내다보기 그리고 교육지난 5월부터 수시로 취재하면서 ‘지역사회 사회복지법인의 역사가 80년이나 되었네’라는 화제성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사회복지의 눈으로 광복 80주년을 들여다보니 한국인의 삶,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이 거기 다 들어있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이를 ‘총체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경제·정치·문화 등 총체성이 담긴 영역을 집중해서 탐구하면 그 사회 핵심 과제를 꿰뚫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광복-전쟁-가난-혼란-성장-경제강국으로 이어지는 먼 여정에서 사회복지 영역은 점점 중요도가 커지며 한국 사회의 미래를 뒷받침하고 좌우할 존재로 성장했음을 남광 80주년은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교육’이 중요한 구실을 했음을 확인한 점은 인상 깊다. “남광학원으로부터 시작된 남광아동복지원에서는 남광아동복지원(현재의 NK아이빌)으로 통합되기 전의 남광육아원과 남광영아원 시절을 거쳐 1980년대 말까지 총 2360명의 인원이 거쳐 갔다. 그중에서 280명의 혼인이 성립되었으며 서울대 중앙대 한양대 수산대 부산대 동아대 출신 학사가 32명 배출되었다. 중고교 졸업자는 960명 배출됐다.”(‘남광 70년사’ 중)
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살피면서, 남광이 성장한 배경에는 미래를 내다보는 노력이 있었음을 느꼈다. 지난 2일 다시 찾은 남광사회복지회는 오는 11월 창립 80주년 행사를 준비하느라 모인 젊은 사회복지 종사자들로 활력이 넘쳤다. 이들이 펼칠 미래에 관심이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