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구 장전동 부산대학교 캠퍼스 전경. 부산대 제공

우리말의 로마자 표기법이 개정된 건 2000년 7월. 당시 16년 만의 변화였고, 벌써 25년이 흘렀습니다. 변경된 내용이 여럿인데, 부산과 대구의 영문 표기를 각각 PUSAN·TAEGU에서 BUSAN·DAEGU로 고친 게 대표적입니다. 김해국제공항의 ‘김해’도 KIMHAE에서 GIMHAE로 첫 글자가 달라졌습니다.

지역명과 기관명이 대거 바뀌면서 엄청난 혼선을 빚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들은 BUSAN이 알고 있던 도시 부산이 맞는지 혼동했고, 각 기관은 간판 상징물 문서 안내표지 홍보물 등에 사용된 영문명을 교체하느라 상당한 비용을 들였습니다. 직원 명함도 싹 바꿔야 했죠.

무엇보다 상징성이 훼손되는 게 큰 문제였습니다. 세계에 피프(PIFF·P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로 각인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랜 ‘저항’ 끝에 2011년에야 비프(BIFF)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국내외 영화인은 물론 관객 상당수는 비프가 아니라 피프로 부릅니다.

25년이 지난 지금도 PUSAN과 BUSAN은 통일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대학명에 여전히 ‘P’가 많은데요. 거점 국립대인 부산대는 갖은 ‘외압’에도 PNU(PUSAN NATIONAL UNIVERSITY)를 지켰습니다. 마찬가지로 국립부경대는 영문 약자를 PKNU로 씁니다.

부산대학교 정문. 부산대 제공

부산대가 지금껏 PNU를 포기하지 않은 건 1946년 개교 이후 국제 사회에서 고유명사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세계가 공인한 학교명이라는 거죠. 또 ‘P’가 ‘B’로 바뀌기 전, 이미 PNU라는 이름으로 SCI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만 수천 편인데 이를 모두 수정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사실 부산대가 PNU를 끝까지 고집한 데는 교수·교직원·재학생·졸업생의 자부심 또는 자긍심이 깔렸습니다. 8년 전이긴 하지만, 부산대 한 교수가 교내 언론사에 기고한 글이 인상적입니다. 기고문 제목은 ‘PNU 이름값’. 글은 십수 년 전 영문 학교명이 BNU로 바뀔 뻔했을 때, 부산대 구성원이 적극 나서 막아낸 사례를 먼저 언급합니다. 그러면서 ‘BNU는 PNU와 다른 대학’으로 보인다고 덧붙입니다.

글에서 특히 눈에 띄는 문장이 있습니다. ‘SKY라는 대단한 이름값을 받는 서울의 세 개 대학이 있다. 그 K대와 Y대가 예전에는 PNU에 비해 등록금이 비싼 대학이었지, 더 좋은 대학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이들은 하늘(SKY) 반열에 올랐고, 부산대는 땅으로 추락하고 있다’.

갈수록 수도권 일극 체제가 정도를 더하고, 지역과 지역 대학의 소멸 위기가 커지는 요즘 부산대가 PNU로 지키고 싶은 건 ‘과거의 영광’일 수 있습니다. SKY 중 K나 Y 정도와는 어깨를 견줄 만했던, 새벽벌이라 부르는 캠퍼스에서 ‘웅비의 탑’을 지날 때면 수도권 대학 남부럽지 않았던 시절. 사법시험 합격자 수, 대기업 임원 수 등에서 항상 전국 상위권에 오르고 어디서든 꿀릴 일 없었던 날들. 부산대는 PNU라는 이름에서 그때의 명성과 자부심을 되찾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부산대학교 홈페이지 캡처. 2026년 개교 80주년을 홍보하는 페이지에 부산대 슬로건인 ‘Arise PNU’가 보인다.

부산대도 결국 내년 개교 80주년을 맞아 PNU를 BNU로 바꾸는 방안을 두고 내부 검토를 시작했습니다. 외국에서 통용되는 부산의 영문명이 BUSAN인 만큼, 국제화 추세에 발맞추겠다는 취지입니다. 2027년 3월 부산교대와 통합하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됩니다.

“부산대 역사와 단절되는 행위”라며 반대하는 여론도 여전합니다. 총학생회는 의견 수렴을 위해 자체 설문조사에 나섰는데요. “아무래도 PNU를 사용한 역사가 있다 보니 명칭 변경을 두고 반대 의견도 많다”고 밝혔습니다.

PNU냐 BNU냐. 부산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합니다. PNU를 사수한다면 옛 명성을 되찾기를, BNU로 변경한다면 ‘BUSAN’ 브랜드와의 시너지로 국제적 평판을 높여나가기를 바랍니다. 지역이 소멸해선 안 됩니다. 그래서 부산대를 비롯한 지역 대학도 건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