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새벽, 이틀간 내린 폭우가 잦아들자 다시 찜통더위가 덮쳤다. 이른 시간부터 아스팔트 위로 스멀스멀 열기가 올라온 부산 중구 한 고물상 앞 도로. 폐지를 가득 실은 손수레(리어카)가 줄지어 섰다. 이곳 고물상 사장은 “새벽 4시40분께 문을 여는데, 여기 오는 어르신 대다수가 10년 넘게 폐지를 모으신 분들이라 미리 알아서 줄을 선다”고 말했다. 일부 노인은 손수레를 고물상 앞에 세워두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고물상에 손수레를 넘기기 전 폐지를 조금이라도 더 담기 위해서다.
이들 노인에게 폐지 수거는 매우 중요한 생계다. 하지만 오랜 기간 비가 내리면 ‘야외 노동’을 할 수 없다. 그러니 비 오는 날은 하루 벌이를 놓치는 것을 넘어 당장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연결된다.
이날 고물상에서 만난 70대 A 씨는 매일 새벽 1시 집에서 나와 오후 1시까지 꼬박 12시간, 부평동2가 골목골목을 세 차례 돌며 손수레에 폐지를 담는다. A 씨가 하루치 야외 노동으로 버는 돈은 1만~2만 원. 시급으로 따지면 많아야 1600원 남짓, 적을 땐 800원을 조금 넘는다. 어쩌다 구리나 동 같은 금속류를 주우면 수익이 제법 늘지만, 매우 드문 일이다. 자원순환마루 재활용가능자원 가격 조사 결과를 보면 ㎏당 전국 평균 폐지(골판지) 가격은 지난해 94.64원, 올해 88.7원. 같은 양을 모아도 수익이 줄어들면서 노인들의 손수레는 갈수록 무거워진다.
A 씨는 “폐지가 ㎏당 100원 하다가 10원, 20원 깎이더니 지금은 40원도 안 주는 것 같다”며 “비가 오면 더 돈이 안 된다”고 했다. 비에 젖은 폐지는 옮기기 훨씬 힘든데, 고물상은 물 무게를 빼고 값을 쳐준다. 보통 젖은 폐지는 무게의 절반만 ‘돈’으로 인정해준다.
그래도 B전통시장 일부 상인은 A 씨를 위해 폐지를 따로 챙겨둔다. 몇 년 새 폐지 줍는 노인이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자, 상인들이 나름 A 씨를 배려해주는 셈이다. A 씨는 “서로 폐지를 차지하려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어떤 노인은 싸움 끝에 병원비로 생돈이 나갔다고 하더라”며 “이 때문에 요즘은 서로 영역을 정해 각자 구역에서만 폐지를 줍는다”고 전했다.
인근 C전통시장 상인들도 한 명에게 폐지를 모아준다. 상인 D 씨는 “원래는 여기서 폐지 줍는 어르신이 두세 명 있었는데, 가격이 워낙 내려서 나눠 가지면 정말 돈이 안 된다. 어르신끼리 갈등도 심해졌다”며 “그래서 한 명에게 몰아주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전통시장 안에 점포가 몰린 구간은 폐지 종류와 배출되는 시간대가 대체로 일정하다. 이 흐름에 맞춰 노인들은 하루에 여러 차례 같은 장소를 돌며 활동 구역을 형성했다.
부경대학교 사회복지학전공 오영삼 교수는 “폐지를 줍는 노인이 늘어나는 건 노후 소득이 충분히 보장되지 못한 현실 때문”이라며 “폐지 가격 하락과 고령화가 맞물리며 경쟁이 과열되는 현상은 앞으로 더 심각해질 수 있다. 구조적인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