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부하 화재 7·8월에 집중
- 전력사용 폭증 원인일수도

부모가 새벽 일을 나간 사이 아파트에 불이 나 초등생 자매가 참변(국제신문 지난달 25일 자 6면 등 보도)을 당한 지 불과 9일 만에 부산에서 또 어린 자매가 화마에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두 사고 모두 아파트에 스프링클러가 없었을뿐만 아니라, 전기적 요인이 원인으로 추정돼 여름철 폭염 속 냉방기기 사용으로 인한 과열이 화를 부른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불이 난 아파트는 최근 소방청이 시행한 노후 공동주택 소방시설 긴급 화재안전점검 대상에서도 누락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3일 부산 기장군 한 아파트에서 경찰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이 화재현장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전날 밤 10시58분 이곳에서는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발생한 화재로 9살과 6살 어린 자매가 목숨을 잃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3일 부산소방재난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2일 밤 10시58분 기장군 한 아파트 6층에서 불이 나 집안에 있던 A(9) 양과 B(6) 양이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끝내 숨졌다. 자매는 집안 베란다와 현관문 중문에서 쓰러진 채 발견됐는데, 경찰은 두 아이가 불을 피해 대피하려다 변을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불이 날 당시 부모는 모두 외출 중이었다.

현장에서 소방브리핑을 들은 박형준 부산시장이 눈물 지으며 안타까워하는 모습. 이원준 기자

앞서 이날 이 아파트에서는 두 차례 정전이 발생해 가게에 있던 아이들을 어머니가 근처 친척집으로 데려가 씻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밤 10시24분 외출했는데, 불과 30여 분 만에 불이 난 것이다.

앞서 지난달 24일 새벽 부산진구 개금동 한 아파트 4층에서도 불이 나 초등생 자매가 숨졌다. 당시 부모는 새벽일을 나가 자매만 집에 있다가 화를 당했다.

사고가 난 두 아파트 모두 스프링클러가 없었다. 소방시설법상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는 1990년 6월 16층 이상 층부터, 2005년 11층 이상 건물 등으로 점차 강화됐다. 부산진구 화재 아파트(20층)는 1994년 준공됐고, 기장군 화재 아파트(13층)는 2007년 준공됐으나 2003년 건축허가를 받아 의무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장군 화재 아파트는 2005년 법 개정 전후로 건축허가와 준공이 이뤄져 스프링클러 미설치 공동주택 집계에 포함되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소방청의 긴급 화재안전점검 대상에서도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점검은 부산진구 자매 화재 참변을 계기로 이뤄졌다.

두 사고의 화재 원인도 유사하다. 이날 합동 감식 결과 화재 발화부는 거실의 스탠드에어컨 주변으로 확인됐다. 단락흔이 발견된 에어컨과 연결된 멀티탭 전선이 발화원으로 추정된다. 부산진구 화재 아파트의 발화원도 거실 멀티탭으로 추정됐다.

전기 요인이 원인으로 추정되면서 폭염에 전력 사용량이 급증해 화재가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냉방장치에 의한 화재는 여름철에 집중된다.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7·8월 부산의 과부하·과전류에 의한 화재는 26건이었으나, 9·10월에는 6건에 불과했다. 이물질 등과 접촉불량에 의한 단락도 7·8월은 37건, 9·10월은 22건이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 심화로 혹서기와 혹한기에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화재 발생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동의대 류상일(소방방재행정학과) 교수는 “온열기와 냉방기는 오래 가동할수록 화재에 취약하고 노후 전선도 위험할 수 있다”며 “폭염경보 등 재난문자 발송 때 전력 과열로 인한 화재주의 문구를 담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이날 화재 현장을 찾은 박형준 부산시장은 “돌봄 공백이 없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스프링클러 미설치 아파트를 전수조사해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