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아파트 화재로 숨진 자매가 다닌 부산 한 초등학교에 25일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부산에서 태어나 자랐대서 서울사람보다 2년이나 일찍 죽는다는 건 불공평하죠. 꽤 오래전입니다만, 그래서 기획한 국제신문 기사가 ‘부산 빈곤리포트 - 건강 불평등’(2013년 6월 보도)입니다.

기획의 첫 기사,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부산사람은 억울하다. 같은 날 태어난 서울사람보다 평균 2년 6개월 먼저 죽는다(2011년 통계청 생명표 기준)’. 인명은 하늘에 달렸다는데, 부산과 서울의 하늘이 다르지 않은데 왜 이럴까. 이유를 찾아보려 했습니다.

전문가 분석은 다양하죠. “부산은 고령화율이 높아 고혈압 등 만성질환자가 많다” “상대적으로 비만율이 높다” “먹는 물 수질이 나쁘고 환경오염도 심각하다” “의료기관 접근성이 떨어진다” 등.

개인 기질이나 유전적 요인, 연령 특성 외 외부 여건을 짚어봤습니다. 다시 말해, 평균수명(기대여명) 격차를 ‘사회의 노력’으로 줄일 방법을 찾으려 했죠. 결론은 의외로 어렵지 않게 나왔습니다. ‘하늘에 달린 목숨(人命在天)’이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돈에 달린 목숨(人命在錢)’이 너무 많다는 것.

당시 부산 214개 읍·면·동의 ‘연령 표준화 사망비(모든 읍·면·동의 연령별 인구 비율이 같다고 가정했을 때 사망률)’를 계산했습니다. 그랬더니, 소득 수준이 높은 곳은 사망률이 낮았습니다. 반대로 소득 수준이 낮은 곳은 사망률이 높았죠. 경제적 불균형이 건강 불평등으로 이어졌다는 얘깁니다.

돈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빈곤 지역은 그렇지 않은 곳에 견줘 사회 안전망이 부족합니다. 가난한 동네일수록 다쳐서, 사고로 사망할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누전으로 집에 불이 나면 홀몸 어르신의 사망 확률이 높습니다. 같은 유형의 교통사고가 발생해도 사고 지역 도로 사정, 중형차냐 소형차냐에 따라 위험성은 달라집니다. 홀몸 어르신이 아니라면, 연기가 집을 가득 메우기 전 빠져나올 수도 있었을 겁니다. 외곽의 어스름하고 굽은 도로가 아니라 가로등이 환한 도심 너른 도로였다면, 사고 발생 확률은 낮아집니다.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목숨’이 적잖다는 말입니다.

지난 24일 화재로 자매가 숨진 부산 한 아파트 현장에서 소방과 경찰이 합동 감식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앓는 병도 다릅니다. 당시 조사에서 가난하거나 각종 인프라가 열악한 동네의 입원 환자 질병 1위는 ‘탈구와 염좌’ 등 신체 손상이었습니다. 반면 비교적 살기 괜찮은 동네에는 치핵 환자가 가장 많고, 신체 손상은 순위 안에 없었죠. 형편이 넉넉지 않을수록 더 많이 다친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은 분명했습니다. ‘가난한 동네 사람의 평균수명이 더 짧다. 훨씬 많이 다치고, 위험에 노출된다. 하늘에 달린 목숨은 그렇다 쳐도, 돈이나 계층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나누는 것은 막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에게 충분한 사회 안전망을 갖춰주는 것이 지역 간 평균수명 격차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방법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기사를 보도한 후 12년이 지났습니다. 우리 사회는 나아졌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찾아보니, 부산사람은 서울사람보다 아직도 평균 2년 4개월 먼저 죽습니다(2023년 통계청 생명표 기준).

가난한 사람을 덮치는 외부 위험 역시 여전히 큽니다. 지난 24일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부모가 새벽일을 나간 사이 화재로 참변을 당한 자매가 끝내 모두 숨졌습니다. 당일 언니(10)에 이어 동생(7)도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던 중 25일 결국 눈을 감았습니다.

경찰은 전기적 요인으로 거실에서 시작된 불이 집 전체를 덮친 것으로 추정합니다. 자매가 사는 아파트는 지은 지 오래돼 스프링클러가 없었습니다. 부모는 평소 새벽 청소 등 여러 일을 하며 어렵게 생계를 꾸려 왔고,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잠든 자녀를 두고 새벽일을 나서야 하는 부모의 마음, 생때같은 자녀를 화마에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요. 이웃들은 “부부는 항상 손잡고 다니는 등 화목했고, 하늘로 간 아이들은 인사성이 밝고 예뻤다”고 기억합니다.

과연 이 가정에 우리 사회는 든든한 안전망을 제공했을까요. 질병이나 외상, 사고에 대처할 기회를 공평하게 줬을까요. 부산사람이나 서울사람이나, 가난한 동네 주민이나 부자 동네 주민이나 삶의 마지막은 평등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세상 소풍 끝내고 사랑하는 엄마 아빠, 친구들 곁을 떠난 두 아이의 명복을 빕니다. 슬픔을 한 겹이라도 벗겨낼 수 없겠지만, 아이의 부모에게도 위로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