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온천천 금정구 구서동 여울목에서 자연의 묵시록 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시인 원성만 씨가 두 시간 넘게 지켜본 자리에는, 한 마리 왜가리가 조용히 그리고 집요하게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숭어를 쫓고 있었다. 왜가리는 꼼짝 않은 채 숨을 죽였고, 숭어는 흐름을 거슬러 오르며 본능에 따른 도약을 계속했다. 짧고 격렬한 순간. 왜가리는 찰나 속에 숭어를 부리로 낚아챘다. 원 시인이 포착한 이 장면은 단순한 먹이 사냥을 넘어선, 생명과 생명이 얽힌 자연의 필연, 곧 ‘숙명’이었다.

왜가리는 여름철새로, 몸길이 91~102cm에 달하는 대형 조류다. 회색 등과 흰색 아랫면, 가슴과 옆구리를 가로지르는 회색 세로줄무늬는 경계와 침묵의 상징처럼 보인다. 하얀 머리에 검은 줄이 눈에서 뒷머리까지 이어져 댕기깃을 이루며, 자연이 조각한 한 점 수묵화처럼 도도하다. 번식을 마친 일부 개체들은 겨울에도 부산 등 남부지방에 머무른다.

온천천 금정구 구서동 여울목에서 왜가리 한마리가 숭어를 쫓고 있다.

반면 숭어는 강을 거슬러 올라 산란하는 습성을 지닌 강인한 생명이다. 바다와 강 사이를 오가며 생을 이어가는 숭어는 여울을 넘는 그 짧은 여정 속에 수많은 위험과 마주한다. 그 중 하나가 왜가리다. 숭어에게는 극복해야 할 벽이고, 왜가리에게는 생존을 위한 기회다. 왜가리와 숭어. 서로를 원망하지도, 피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그저 본능과 질서 속에서, 자신의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다. 인간이 개입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한 메커니즘이 온천천 한켠에서 조용히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매달 한번씩은 기자와 만나 막걸리잔을 기울이는 시인 원성만 씨는 “왜가리도, 숭어도, 각자의 길을 가고 있을 뿐입니다. 자연은 싸우지 않아요. 그저 살아가는 것일 뿐이죠.” 라고 이야기 한다. 온천천의 여울목은 오늘도 쉼 없이 흐르고 있다. 그리고 그 물결 속에서, 삶과 죽음, 쫓고 쫓기는 운명이 되풀이된다. 그건 자연의 숙명이며, 동시에 우리가 잊고 살았던 생명의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