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월 10일 부산교육청 예산안 심사가 열린 부산시의회 대회의실 앞에서 학부모단체 회원들이 방청을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10년 전 정말 ‘난리’였습니다. 2015년 12월 2일 부산시의회 교육위원회 회의실, 2016년도 부산교육청 예산안 예비 심사. 진보 성향 학부모·시민단체 회원들이 회의실 입장을 요구하며 격렬히 항의했습니다. 시의회는 “회의실이 협소하다”며 시민 방청을 선착순 4명으로 제한했죠. 그리고 개회와 동시에 문을 굳게 잠갔습니다.

단체 회원들은 “도대체 무슨 비밀회의를 하길래 방청을 막느냐”며 회의실 문을 주먹으로 쳤습니다. 소란에 예산안 심사가 어려워지자 시의원은 모두 퇴장. 그 틈에 단체 회원들이 회의실을 점거했죠. 회의는 1시간 20여 분간 중단됐습니다.

여기까진 예고편. 며칠 뒤엔 더 큰 혼란이 빚어졌습니다. 12월 10일 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 심사가 열린 대회의실. 시의회는 미리 출입문을 봉쇄했고, 진보 단체 회원들은 더 강하게 진입을 시도했습니다. 경찰까지 동원돼 이들을 막았고, 회의실 주변엔 고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5년 12월 2일 부산시의회 앞에서 학부모·시민단체 회원들이 중학교 의무급식 시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갈등의 불씨는 의무급식(무상급식). 그땐 부산지역 모든 중고생이 ‘학교에서 돈 내고 밥 먹던 시절’입니다. 당시 진보 성향 김석준 교육감은 ‘중학교 의무급식’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는데요. 중1부터 당장 시작해 매년 중2, 중3으로 범위를 넓힐 계획이었죠.

그러나 보수 성향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장악한 시의회가 이를 막아선 겁니다. “질 높은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학교 환경 개선이 훨씬 시급한데, 막대한 예산이 드는 의무급식은 포퓰리즘이다. 법과 조례에 근거가 없다. 중장기 재정 계획도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에 진보 성향 학부모·시민단체 회원들이 시의회로 몰려가 “의무급식 예산을 원안대로 가결하라”고 촉구한 겁니다. 반대로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보수 성향 시민단체 회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의무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며 시의회 편을 들었죠.

어떤 결론이 났을까요. 진보 교육감 공약인 의무급식은 막고 싶고, 반발 여론은 부담스러웠던 시의회가 아주 ‘애매한 절충안’을 통과시킵니다. 시교육청이 중1 의무급식 예산으로 편성한 113억 원을 중1·2·3에 똑같이 쪼개 급식비로 지원하게 한 겁니다. 쉽게 말해 모든 중학생에게 급식비를 할인해주는 거죠. ‘공짜 밥’은 물 건너갔으니 의무급식은 공식적으로 무산, 대신 예산은 그대로 살려 둔 겁니다.

2015년 12월 2일 부산시의회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중학교 의무급식 예산 삭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10년이 지났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재연될 조짐을 보입니다. 그때의 김석준 교육감은 최근 4·2재선거를 거쳐 다시 부산교육 수장 자리로 돌아왔고, 그때의 시의회는 한 차례 ‘물갈이’ 이후 다시 보수 정당 국민의힘이 장악했습니다.

‘소재’가 바뀌기는 했습니다. 이번엔 ‘초등학교 입학준비금 30만 원’ 공약입니다. 시의회 신정철(해운대1) 의원은 30일 제328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입학준비금 공약 철회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부산 기초지자체 대부분이 (준비금을) 주는데, 시교육청이 이중으로 지급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비판했습니다. 시교육청은 “현금성 복지가 재정 부담이 크긴 하지만, 불평등을 해소해 올바른 성인으로 자라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맞섰습니다.

앞서 교육위에서도 양측 신경전이 치열했습니다. 시교육청이 기구 개편을 통해 ‘교육정책과’를 ‘민주시민교육과’로, ‘교육희망팀’을 ‘민주시민교육팀’으로 바꾼 게 발단. 교육위는 “김 교육감의 정치색이 과도하게 투영됐다”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육감이 취임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TV 생중계를 각 학교에서 시청하도록 한 것도 논란이 됐습니다. 시의회는 “정치색이 농후하다”고 질책했죠.

역시, 여기까진 예고편일 수 있습니다. 오는 6월 추가경정예산안 심사가 남았습니다. 김 교육감이 입학준비금 공약 등을 실행하려면 추경 확보가 필수. 시의회는 벌써 추경안 심의를 직접 언급하며 시교육청을 압박합니다. 10년 전 사태가 또 벌어질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교육에서만큼은 보혁 갈등이 없었으면 합니다. 학생들의 미래만 생각해야겠습니다. 보수 시의회와 진보 교육감 모두 동의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념 말고 교육, 좌우 말고 미래.” 이제, 양측이 이 원칙을 지키기만 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