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간 통화 당사자가 위법하게 녹음한 파일이라도 사생활 침해 여지가 적다면 수사기관이 피의자의 유죄 입증 증거로 쓸 수 있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국제신문 DB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공공단체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수산업협동조합 조합원 A 씨에게 징역 1년4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 씨는 부산지역 수산업협동조합원으로, 2019년 3월 치러진 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당시 또 다른 선거운동원 B 씨, 후보자 C 씨와 공모해 금품을 제공하고 사전 선거 운동을 벌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달 14일 확정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에 따르면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A 씨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여기에는 A 씨가 B, C 씨와 통화한 녹음파일과 A 씨가 본인 배우자와 통화한 녹음파일 등이 들어 있었다. 이들 녹음파일은 A 씨의 배우자가 그의 불륜 등을 의심해 휴대 전화에 몰래 자동녹음기능을 활성화해 생긴 것이었다. 경찰은 해당 녹음파일들을 A 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썼다.

1심은 선거운동원인 A, B씨에게 각각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후보자였던 C 씨에게는 징역 1년 2개월을 판결했다. 세 사람은 통신비밀보호법상 ‘불법감청에 의한 전기통신내용은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사건 녹음파일은 피고인들의 이 사건 범행의 증명을 염두에 두고 생성된 것이 아니고, 수사기관 역시 해당 녹음파일의 생성에 어떠한 관여도 하지 않은 채 적법하게 압수한 휴대전화를 분석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며 “녹음파일을 증거로 사용한다고 해서 통화 당사자들에 대한 사생활의 본질적인 침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항소심도 A, B씨 항소를 기각했다. C씨는 일부 무죄가 선고됐지만, 형량은 징역 1년4개월로 되레 늘었다. 이후 검사와 피고인 모두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은 모든 상고를 기각했다. 상고심 쟁점은 휴대전화에 녹음된 A 씨 부부의 통화 내용을 혐의 입증의 증거로 쓸 수 있는지 여부였다. 대법원은 이 사건의 경우 증거 사용이 가능하다고 보고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원심이 전화통화 녹음파일 중 A 씨와 그의 배우자 사이의 전화통화 부분에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은 정당하다”며 “원심의 판단에 위법수집증거, 2차적 증거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는 등으로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없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