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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채색 같던 중년여성 삶, 나전칠기 만나 반짝반짝 빛났죠”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39> ‘결대로 공방’ 신미선 대표

  • 고영삼 인생이모작포럼 공동대표
  •  |   입력 : 2023-11-28 19:12:49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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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아·가족에 집중하던 40대 때
- 통영시 공예수강생 모집 글 접해
- 초급~고급 수료하며 재능 발견
- 문화재청장상 등 각종 상 휩쓸어

- 친근한 공예로 자리 잡기 온 힘
- 정부 지원 200% 활용 권하고파

◇ 신미선의 인생Tip

-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주인되는 삶을 지향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신미선 작가가 통영소반을 주로 제작하는 이상희 작가가 새롭게 디자인한 소반을 다시 다듬던 중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오른편에 보이는 작품은 나전칠기 입문 3년 차에 매화문으로 나전을 시문해 친정어머니께 선물한 통영소반이다.
재능이란 무엇일까? 젊은 시절 묻혀있던 재능이 중년기에 발견돼 시작해도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재능은 어떻게 발견되는 것일까? 얼마나, 어떻게 해야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룰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교육학자들만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결혼해 아이를 기르며 가족을 돌보는 일에 전념했던 여인들, 이른바 경단녀들은 이 질문 앞에 위축되곤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흔 중반에 우연히 시작했으나 마치 예언처럼 빛나고 있는 이를 만났다. 그녀는 어떻게 하여 가능했을까?



-여기는 어디인가요?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통영시 용남면에 있는 ‘결대로 공방’입니다. 우리 공방은 ‘쓰임새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공예의 본질을 바탕으로 결대로 무늬대로 작업하는 나전칠기 공방입니다.

-얼마 전에 개인전을 하셨다고요?

▶지난 10월 5일부터 30일까지 통영의 갤러리 노산에서 했었죠. 제가 나전칠기에 입문한 게 2012년이었으니 12년 만에 연 첫 개인전이었습니다. 운명처럼 된 나전칠기 인생에 중간 마침표가 필요했습니다. 100여 점을 전시했는데, 1개월 걸려 만든 작은 소품들부터 몇 년에 걸쳐서 완성한 작품도 있었고요. 공방 구석에 두었던 것들에 빛깔을 넣고 이름을 달아주는 일이었지만 보였던 것을 또 보이기 싫어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준비했죠. 고단했지만 뿌듯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동안 나전칠기 부문에서 적지 않은 상을 받았더군요. 나전칠기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대한민국 공예품대전에서 문화재청장상 등 적지 않은 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상복이 좀 있나 봐요(웃음). 나전칠기는 조개 나(螺) 비녀 전(鈿)을 씁니다. 나무 금속 가죽 그리고 유약을 바르지 않은 도자기 등 다양한 성질의 기물에 나선형의 전복 조개류의 껍질을 갈고 가공하여 자개를 붙이고 여러 번의 옻칠을 하는 등 25가지 이상의 공정을 거쳐 마무리하는 난도 높은 수공예입니다. 천연 자개는 빛과 각도에 따라 반짝반짝 아름답고 신비로워 곁에 두고 접할 수 있는 것 중 걸작이죠. 통영이 본향인 가장 민족적이고도 아름다운 공예입니다.



신미선 작가가 2019년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에서 나전칠기 체험 부스를 운영하던 중 찍은 사진.
이번에 만난 이는 나전칠기 작가 신미선 씨다. 그녀는 43세인 2012년에 나전칠기에 입문하여 그다음 해인 2013년 제16회 경남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그 이후 2018년 제48회 경남공예품대전 대상, 제48회 대한민국공예품대전 문화재청장상, 2020·21·23년 경남공예품대전의 입선·대상·동상 수상, 2021년 대한민국공예품대전 한국공예협동조합 협회장상, 2022년 통영시 관광기념품공모전 대상을 받았다.



-대학에서 나전칠기를 전공하셨던 경단녀인가요?

▶아니어요. 저는 학습지 회사에서 직장생활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두 아이를 출산하여 양육해 온 문외한이었어요. 나전칠기는 제 인생에 없던 품목이었습니다.

-그럼 특별한 공부 없이 이 경지에 올랐다는 건가요? 어떤 계기에 시작하셨나요?

▶결혼하고 두 아이를 출산하면서 저라는 존재보다는 가족에게 집중했던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생활이 즐겁지 않거나 불편한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무채색이었어요. 나이 40줄이 되자 글쓰기가 꿈이었지만 시작을 못했고 세상으로부터 점점 소외되고 위축된다는 느낌이 커지더군요. 첫애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둘째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남은 50년을 어떻게 지낼지 두리번거리던 중 우연히 통영시의 나전칠기 공예 수강생 모집 안내 글을 보았습니다. 남들과 차별화된 것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던 중 노크하게 된 거예요.

-평생 해본 적 없었는데 빠져들다니 뭐 다른 동기가 부여된 계기도 있었겠죠?

▶통영 사람으로서 뿌리를 생각했지만 각오를 더 다진 계기도 있었어요. 2019년이었는데, 그동안 여러 곳에서 상을 받고 나니, 세계 3대 관광박람회인 베를린 국제관광박람회(ITB Berlin)에 참여해 한국관의 나전칠기 체험 부스를 운영하게 됐습니다. 그때 K-컬처 붐이 일었던 덕에 한복까지 입은 독일 십 대 소녀들이 한국관에 엄청나게 몰려오더군요. 인기 폭발이었죠. 그런데 그해 8월 싱가포르에서도 그랬고, 2019년에는 태국 프랑스 스페인에서도 그러더군요.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늘 장사진이었어요. 그 연이은 경험이 저를 더욱 깊숙이 빠져들게 하더군요.



대학에서 전공한 것도 아니고 강한 열망을 미리 가진 것도 아니었다. 마흔을 조금 넘어 우연히 기초반부터 시작해 이렇게 고수가 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런데 ‘우연’은 성공자의 경력에 종종 나타난다고 보고되고 있다. 심리학자 존 크롬볼츠(J. D. Krumboltz) 교수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의 80%가 치밀한 계획보다는 우연한 어떤 계기를 타고 시작했다는 것. 하지만 그녀 스스로도 몰랐던 잠재 재능에 스파크가 일어나려면 무언가 더 어떤 요인이 있지 않았을까 궁금했다.



-그래도 나이 40 중반에 시작했기에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초급반을 마치면 중급반, 그다음은 고급반 이렇게 계속 배우고 닦았죠. 제가 운이 좋았던 건 최고 선생님에게서 배울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통영시는 나전칠기 교실에 송원섭 옻칠 분야 대한민국 명장, 박재성 국가중요무형문화재 나전장을 교수로 모셨어요. 최고 전문가를 모신 것은 통영시만이 할 수 있는 멋있는 기획이었어요. 그리고 저 스스로는 매일 15시간 이상 쏟아부었어요. 전적으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죠. 체력은 문제 되지 않았지만 피부에 옻이 올라 고생도 했었죠. 진물이 흐르거나 얼음 찜질을 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던 날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중학생일 때인지라 돌봄 소홀로 인해 문제는 없었나요?

▶아내 엄마 딸 며느리로서 가족을 중심으로 존재하던 제가 저의 일에 점점 열중하자 취미로 그칠 줄 알았던 가족들이 당황하고 불편해하는 시기가 있었어요. 그러나 남편은 지금 최고의 우군입니다. 아이들도 상황을 알고서 주체적으로 되어 열심히 하더군요. 딸은 지금 BTS의 소속사인 하이브의 걸그룹 르세라핌의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합니다. 아들은 중국에 유학하여 열심히 살아주니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그들에게 관여를 줄이고 저 스스로 주체적으로 사는 모습이 더 좋은 가르침이 되었나 봐요.

-작가님의 성공 사례를 생각하여서 독자들에게 도움 되는 말씀 좀 해주세요.

▶우선,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200% 활용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둘러보면 저렴하거나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교육 기회가 참 많습니다. 저는 정부 프로그램으로 시작하고 내공을 쌓고 마침내 이름을 낸 경우입니다. 둘째, 협업 마인드를 권하고 싶습니다. 협업은 작품을 실적으로 고양시키고 시장 니즈에 부응하게 합니다. 저의 경우 앞으로 회화 섬유공예 가죽공예 목공예 금속공예 등과의 협업은 물론이고 명품 핸드백하고도 협업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40대 이후 새 일을 찾는 여성들에게도 한 말씀 부탁해요.

▶주파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삶에는 무수한 유혹들과 다양한 일들이 맹수처럼 입을 벌리고 있지만 자기만의 안테나를 세워 원하는 주파수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숱한 잡음들이 안테나에 걸리고 거친 소리들이 귀를 괴롭히겠지만 간절히 원하는 나만의 주파수에 이르면 지나왔던 모든 소음들이 잠재워집니다.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큰 물줄기가 되어 일렁인다면 누구도 막을 수 없고 크고 작은 난관에도 거침없는 나만의 색깔과 소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해외에서 10·20대들이 나전칠기로 된 열쇠고리나 수저 만들기 체험에 매료되는 것을 보고 이를 통영의 어르신과 다문화가족에게도 적용했는데 역시 인기 폭발입니다. 나전칠기를 전통의 공예에서 실생활에 쓰임이 많은 다양한 작품들로 만들어 모두가 공감하는 친근한 공예로 자리 잡도록 하고 싶어요. 여러 가지 체험 키트를 만들어 세계인들이 나전칠기 공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저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잠재웠던 글을 쓰는 작업을 계속하여 이를 공예에 접목해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나전칠기 공예를 넣은 목기 도시락도 제작하고도 싶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신미선 작가는 겸손하고 언어가 반듯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43세 이후 그녀가 통영의 모든 밤과 낮을 붙들고 치열하게 노력했던 것을 다 들을 수 없었다. 우리가 그녀에게서 받을 수 있는 힌트는 무엇일까? 바로 ‘우리 모두에게는 스스로 눈치채지 못한 걸출한 재능이 있다’는 것 아닐까? 그런데 인간사 재능만으로 되는가? 축구 영웅 펠레(Pele)는 말했다. “재능만으론 부족해요. 성공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 헌신, 그리고 결단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헌신은 노력을 말한다. 그녀는 많이 늦었고 전공자가 아니었기에 재능에 노력을 곱하여 기술을 익혔고, 그 기술에 또 노력을 곱하여 성취를 이루고 있다.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자신의 삶에 집중하자 나전칠기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난 이후 꿈이 무산되고 있다며 아파하는 여인들이 가슴속 삶의 별빛으로 기억할 만하다.

※특별후원: BNK 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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