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직업군인 거부해 부산행…한국전 참혹함 책으로 펴냈죠”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17> 영국군 케네스 켈드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10-29 18:52:45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 상관 요구 거부로 참전 명 받아
- 부산 도착하니 춥고 끔찍한 악취
- 연천군 일대서 소총수 임무수행
-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우애

- 휴전 뒤 떠나기 전 유엔공원 찾아
- 전사 대원에 가슴 아픈 작별인사
- 英서 참전용사협회 활발히 활동
- ‘후크고지의 영웅들’ 등 3권 발간

“전쟁에서 전우를 잃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이걸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부대원이 40명 정도였는데 한 번 전투를 치르면 17명 정도밖에 안 남았습니다. 제가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영국 동쪽 노스요크셔의 스카버러에서 한국전쟁 참전용사 케네스 켈드(89)를 만났다. 성성한 백발에도 말끔한 옷차림에 차분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다. 전쟁의 참극을 겪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온화하고 푸근한 할아버지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저는 1934년 3월 14일 이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요크셔의 동쪽에 위치한 포터 브롬턴에서 태어나 살았습니다. 15살까지 학교에 다녔고 이후 처음으로 구한 일자리는 농장 등을 짓는 건설 업체였습니다. 18살이 되자 의무 복무를 위해 입대했죠.”

■“너는 한국에 갈 거야!”

케네스 켈드가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때 당시 사진. 케네스 켈드 제공
1952년 4월 17일 케네스는 입대해 16주간 기초 군사 훈련 등을 받았다. 자대에 배치되고 이튿날 상관과 군 생활과 관련해 면담했다. 그의 상관은 직업 군인으로 복무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아니요’ 였다. 그러자 상관은 ‘너는 한국에 갈 거야!(You’ll go to korea!)’라며 윽박질렀다.

“당시 군은 지속해서 복무할 군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제가 직업 군인으로 복무한다고 했다면 아마 수에즈 운하 문제로 이집트로 갔을 것입니다. 저는 아니라고 대답했기에 진짜 한국으로 갔죠. 18살의 어린 나이라 가기 싫거나 걱정하지는 않았어요. 단지 국가가 불러서 참전했던 거죠.”

이듬해 1월 그는 영국 듀크 오브 웰링턴 부대 소속으로 한국으로 향했다. 그가 먼저 들른 곳은 일본이었다. 이곳에서 겨울 보급품을 받았고, 이후 부산 땅을 밟았다. 그가 느낀 한국의 첫인상은 썩 좋지 않았다.

“그해 1월 부산은 매우 추웠습니다. 냄새도 끔찍했는데, 정말 전쟁을 겪는다고 생각했죠. 그렇게 기차를 타고 26시간 이동했던 게 기억 납니다. 기차에서는 폐허가 된 한국을 봤습니다. 제가 갔을 때 이미 전쟁이 3년째 지속돼 그럴 수밖에 없었죠.”

그가 도착한 곳은 영국군과 미군 등이 지키고 있는 ‘후크(hook) 고지’였다. 현재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판부리 일대다. 해발 200m 남짓의 능선 고지가 쇠고리 모양을 닮아 후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서는 1952년 10월부터 이듬해 휴전 직전까지 영국군과 미군이 4차례에 걸쳐 적군과 격전을 치렀다. 그 결과 임진강 북단의 연천군 장남면 백학면미산면 왕징면 일대를 현재 대한민국의 영토로 귀속시킬 수 있었다. 케네스도 이곳을 지켰다.

“이곳이 서울로 갈 수 있는 등 주요 통로라 사수하는 게 굉장히 중요했습니다. 영국군 외에도 미군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곳을 적군에게 빼앗기면 아마도 다시 유엔군이 서울로 밀렸을지도 모릅니다.”

■후크 고지의 영웅들

케네스 켈드가 부산에 입항했을 때 타고온 배에서 군인이 내리는 모습. 케네스 켈드 제공
케네스는 이곳에서 소총수 임무를 맡았다. 보초를 많이 섰고, 정찰도 자주 나갔다. 정찰 작전이 있을 때면 적군이 있을지도 모르는 지역으로 들어갔다. 적군을 맞닥뜨릴 수도 있고, 지뢰밭으로 들어갈 수도 있어 긴장된 분위기가 지속했다.

“정찰 땐 3명이 나갔습니다. 우리도 그렇지만 적군도 조우하길 원치 않았죠. 적군을 발견하면 부대로 돌아와 알리는 게 주 임무였습니다. 정찰하면서 다행히 적군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적군이 수시로 지뢰 위치를 옮겨놔 두려웠습니다.”

매일 밤 후크 고지를 향한 적의 포격도 이어졌다. 이곳에 있는 모든 군인은 매서운 포격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침묵 속에서 다 같이 어쩔 수 없는 공포를 느꼈다. “중공군이 후크 고지를 빼앗기 위해 계속 포격했습니다. 한 번은 중공군 한 명이 투항하기도 했는데, 정보를 제대로 전달해 주지 않아 매일 포격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당시 우리보다 중공군이 5배나 많았던 게 기억 나기도 하네요.”

케네스 켈드가 2021년부터 자신의 한국전쟁 이야기, 전우의 참전 수기 등을 엮어 발간한 책들. 김태훈 PD
가장 참혹한 순간은 전우를 잃을 때였다. “처음 전우를 잃었을 때 특히 더 힘들었습니다. 한번 전투가 벌어지면 우리 부대원 40명 중 살아남는 전우는 17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제가 한 명이었죠. 전우가 전사해도 이걸 잊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살 수 있었습니다.”

잔혹한 전쟁터를 꿋꿋이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전우애였다. 일반 병사부터 장교까지 전우애는 최고 수준이었다. 생사를 가르는 전쟁터에서 서로 가능한 한 도움을 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케네스는 영국군 병장이었던 조 페린과 친했다.

“조는 잘못해도 눈감아주는 스타일이라 편했습니다. 후임의 편에서 항상 생각해 줬죠. 장교랑 있으면 감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조랑 함께 있으면 대강해도 괜찮았어요.” 조도 무사히 전쟁을 마치고 생환해 영국에서 교도관으로 일했다. 지금은 작고했지만, 케네스는 조의 아들과 연락하며 지낸다.

■잊지 못하는 전우들

케네스 켈드가 영국 노스요크셔의 스카버러 자택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영국 부대 마크를 설명하고 있다. 김태훈 PD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이 이뤄졌다. 영국군 등 일부 부대는 평화 유지를 위해 이곳에 남았다. 케네스도 그해 11월까지 임진강 인근에서 근무했다. 이후 그는 지브롤터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가 1954년 4월 15일 제대했다.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들린 곳이 있다. 바로 전우가 묻힌 부산 남구의 유엔기념공원이다.

“한국에서 생환한 전우가 가장 힘들어했던 날 중 하나가 유엔공원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사라진 동료에게 영원한 작별 인사를 나누는 날이었죠. 이곳에는 제가 알고 지낸 동료들이 꽤 많습니다. 그중 우리 집 근처에 살았던 피터 메이슨이 기억 납니다. 먼 타국에서 만난 고향 사람이라 정말 편하게 생각했었죠. ” 피터는 1953년 5월 28일 휴전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대한민국 땅을 수호하다가 전사했다.

영국으로 돌아온 케네스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는 전우를 잊지 않았고, 1978년 영국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 창립 멤버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전쟁과 관련된 책을 집필했다. “2017년 친척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사회를 보던 목사가 ‘인생에서 무엇을 했는지 글로 남겨야 한다’는 말씀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제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21년부터 자신의 한국전쟁 이야기를 담은 책인 ‘후크 고지의 영웅들’ ‘너는 한국에 갈 거야!(You’ll go to korea!)’와 전우의 한국전쟁 참전 수기를 엮어 쓴 ‘고요한 아침의 이야기들(Stories from the morning calm)’ 등 총 3권의 책을 각각 발간했다. 처음 쓴 ‘후크 고지의 영웅들’이란 책은 한글판으로 영문판인 뒤의 두 권의 책이 발간되기 전 국내에 먼저 나와 세간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전우를 끝까지 잊지 않을 것이란 말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한국전쟁 참전용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함께 돌아오지 못한 전우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그의 가족을 기억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영국=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3. 3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4. 4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5. 5‘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6. 6“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7. 7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8. 8경로당 어르신·어린이집 아동들 “홀몸 어르신 고소한 전 드세요”
  9. 9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10. 10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1. 1靑 “北포로 비공개 합의 부인 강력 유감” 우크라에 사과 요구(종합)
  2. 2“BPA, 1년간 1조원대 채권 발행…항만공사 통폐합 강행 땐 빚 전가”
  3. 3“피지컬AI 항만 실증사업, 광양항 아닌 부산항서 해야”
  4. 4李 지지율 2주째 상승 37.9%…양당 지지도 오차범위 접전
  5. 5여야 만난 강신철 국방부 장관 “北 지뢰 확인 땐 상응 조치…은폐 없다”(종합)
  6. 6靑 재제청 요구 거부 조희대 “국감서 밝히겠다”(종합)
  7. 7부산시 ‘도시계획’ 조직개편 여파…시의회 상임위 간 신경전
  8. 8北 외무부상 "핵보유국 지위 무엇으로도 되돌릴 수 없어"
  9. 9‘인천대 교수 임용 특혜 의혹’ 유승민 딸, 입건없이 10개월째 수사만
  10. 10이재명 대통령 넘어선 민주당 지지율에 분열 확대
  1. 1은행점포 영업시간 30분 단축…내년 4월부터 9시30분 개점(종합)
  2. 2부산서 하루 더…오버나잇 크루즈 성황
  3. 3HJ중공업 조선업계 첫 올해 임단협 타결
  4. 4안주고 덜준 보험금, 5년간 1000건 육박
  5. 53년물 국고채 4.1% 돌파…美 금리 급등 여파
  6. 6빚 갚으려고 또 빚…카드론 대환 23%↑
  7. 7“금융위 경험·네트워크로 부산 금융생태계 강화”
  8. 8부산 유주택 신혼 반토막…‘6억 초과’ 보유는 2.5배 급증(종합)
  9. 9시중銀, 부울경 전략산업 금융 확대…지역銀 영역침범 우려도
  10. 10AI로 ‘해상 교통 혼잡도’ 예측한다
  1. 15배까지 뛴 불꽃축제 숙박료…지긋지긋한 ‘바가지’
  2. 2기장의 1/10…부산 북구 참전수당 월 2만 원 ‘서러운 대접’
  3. 3에코델타시티 마을버스…강서 17년 만에 새 노선
  4. 4‘부캉이’ 보낸다…29일 선박·워터펌프로 외해 유도(종합)
  5. 5“보조금 심의 결정권자는 나” 부산 중구 부구청장 논란
  6. 6찜질방·호텔 빈대 출몰에 화들짝…관광도시 부산 이미지 훼손 우려
  7. 7약발 없는 바가지 대책…인센티브·숙박세로 실효성 키워야
  8. 8약사 면허 빌려 28억 부당이득…환수 거부에 法 “토해내라” 쐐기
  9. 9공소시효 이틀 앞두고 세금 포탈 업자 송치…검·경 합동수사 빛 발해
  10. 10부산대 양산캠 유휴부지, 양산시도 나섰다…개발 TF 꾸려 대응
  1. 1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2. 2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3. 3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4. 4수영·탁구·사격 부진…양궁이 ‘금빛 갈증’ 풀어줄까
  5. 5오상욱 끝냈다…펜싱 男 단체 우승…승마 남동헌, 12년 만에 정상 탈환(종합)
  6. 6안세영, 천위페이도 가볍게 압승…결승 진출
  7. 7K-농구 황금시대…남녀 동반 우승, 3대3도 첫 金(종합)
  8. 8이강인·황인범 활용법 찾아라
  9. 9안세영, 세계 5위 가볍게 압도하며 4강행…사상 첫 2연패 도전
  10. 10[속보]강준이, AG 스케이트보드 ‘금빛 트릭’…한국 사상 첫 金
우리은행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교통취약지 ‘버스형 콜택시’ 도입, 울주 전역 도시가스 공급도 추진”
민선9기 지역일꾼 만나다
“중구 절반이 GB…다운목장 등 과감한 해제로 신성장동력을”
  • 2026 국제환경에너지산업전
  • 국제골프아카데미
  • 부산국제마라톤
  • 어린이청소년경제아카데미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