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중동 땅에 많은 고대왕국들이 있었다. 수메르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히타이트 아카드 아람 엘람 메디아 이스라엘 등등등…. 이 중에 페니키아(Phoenicia)도 있다. 그런데 페니키아는 다른 왕국들과 현저히 달랐다. 페니키아인들은 쳐들어가 무찔러 광대한 영토를 차지하거나 거대한 제국을 이루려 하지 않았다. 다만 개별 도시국가를 이루며 재빠른 갤리선을 타고 지중해 해상무역에 충실했다.

레바논 있는 레반트를 거점으로 교역하던 페니키아인.

그들의 후손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레반트 지역이다. 이슬람 국가를 만들겠다는 이슬람 극단주의 강경파 세력인 IS(Islamic State)나 ISIS(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와 비슷한 ISIL(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의 마지막 이니셜에 해당하는 레반트다. 레반트는 지금의 어디일까? 고대 로마의 관점에서 볼 때 지중해에서 해가 떠오르는 동쪽 지역이다. 결국 고대 가나안 지역이다. 여기에 자리 잡은 지금의 국가들은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요르단이다. 이 다섯 국가들 중 레반트(Levant) 지역을 대표하는 나라는 레바논(Lebanon)이다.

발음이 비슷할 뿐 레반트와 레바논의 어원이 같지는 않은 듯하다. 레반트는 해가 떠오르는 곳이고, 레바논은 높은 산에 늘 흰 눈이 쌓여 있는 곳이라니…. 레반트 지역에 있는 국가인 레바논은 기원전에 페니키아로 불리었다. 페니키아 사람들은 거대한 제국을 이루기보다 지중해에 있는 다른 나라들과 활발한 교역을 하면서 부를 축적했었다. 페니키아 상인들은 이집트에 품질 좋은 백향목을 수출했다. 지금 레바논 국기에 백향목이 그려진 이유다. 그리고 이집트로부터 종이를 뜻하는 페이퍼(paper)의 어원인 파피루스(papyrus)를 수입했다. 수출과 수입을 하던 페니키아의 교역 항구가 파피루스와 발음이 비슷한 비블로스(Byblos)다. 성경은 비블로스에서 얻은 파피루스에 쓰였기에 바이블(Bible)이라 불린다. 페니키아인들이 인류에 남긴 가장 커다란 업적을 딱 하나 꼽으라면 알파벳이다. 해상교역을 하던 페니키아인들은 상업 거래에 필요한 기록을 단순한 표음문자로 썼다. 알파벳의 기원이다. 그 22개 문자는 당시 이집트 상형문자나 메소포타미아 지역 설형문자보다 쉬웠다. 그 표음문자들이 고대 그리스를 거쳐 고대 로마로 전수되고 게르만족 문자가 되며 영국에까지 퍼지면서 영어를 적는 세계 최다 글자가 되었다.

세종은 한글을 창제한 업적으로 대왕으로 불린다. 그런데 서양 문자의 근간인 알파벳을 창제한 페니키아인들은 위대한 사람들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냥 레바논 지역에서 살다 사라진 고대인이라고만 여겨진다. 번성하며 융성했던 페니키아 중심도시인 티레와 시돈은 침략당했다. 페니키아가 있던 자리에 레바논공화국이 들어섰다. 수도인 베이루트는 한때 중동의 파리로 불릴 만큼 찬란했다. 지금은 이슬람 시아파 무장투쟁 조직인 헤즈볼라의 거점이다. 현대의 레반트 지역 레바논인들도 그들의 조상인 페니키아인들처럼 투쟁 전쟁이 아니라 교역 무역을 하며 살 순 없을까? 그들은 이문에 밝고 약삭빨랐어도 사나운 전사는 아니었다. 3000~4000여 년 전 위대한 상인이었다. 그저 고대 페니키아인들처럼만 살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