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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때부터 의료봉사 매진한 형…한국행 18일 만에 전사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16> 영국군 故 토마스 윌리엄 데이비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10-22 18:38:04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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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 응급처치 단체 SJAB 가입
- 모든 여가시간 봉사활동에 바쳐
- 전역 한 달 앞두고 한국전 투입
- 첫 정찰 임무서 적 포격에 숨져

- 부상 회복 중이란 전보 닷새 뒤
- 사망 소식에 온 가족 충격 빠져
- 48년 만에 유엔공원서 만난 형
- “다시 만날 때까지 편히 쉬세요”

“형이 한국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음 날 학교에 갔습니다. 지구본에서 한국이란 나라를 찾으려고 했는데, 어디 있는지 몰라 찾기 어려웠습니다. 힘들게 찾은 한국은 아주 멀리 있어 믿기 어려웠습니다. 아주 작아 보이기도 했죠. 당시 텔레비전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고, 뉴스도 이런 일을 잘 다루지 않아 형이 전사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냥 형이 갑자기 사라진 느낌이었죠.”

영국 윌트셔의 로열 우튼 바셋에서 만난 알버트 레이먼드 데이비(86)는 자신보다 8살 많았던 형 토마스 윌리엄 데이비를 잃었던 아픈 옛 기억을 다시 꺼냈다. 그는 형을 ‘톰(토마스의 애칭)’이라 불렀다. 톰은 영국 왕립 슈롭셔 경보병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21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형이 먼 타국 땅에서 전사해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당장 형의 묘지에서 경의를 표할 수도 없었죠. 전쟁터로 가기 전 형은 무척 건강했는데, 죽고 나니 이를 받아들이는 게 정말 어려웠습니다. 저에겐 든든하다는 느낌이 없어진 것 같았죠.”
토마스 윌리엄 데이비(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응급처치봉사단체인 SJAB 제복을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시간 나면 봉사하던 형

1929년 10월 16일 태어난 톰은 영국 서머싯의 브리짓워터에서 자랐다. 다섯 형제의 둘째였던 톰은 여덟 살 때부터 ‘세인트 존 앰뷸런스 브리게이드(SJAB·St John Ambulance Brigade)’에 가입해 활동했다. 1887년 영국에서 처음 설립된 SJAB는 현재 전 세계적인 응급처치 봉사 단체다.

“형은 낮에는 학교에 다니거나 기술을 배우다가 저녁엔 SJAB에 가서 일을 배우거나 돕곤 했어요. 16살쯤 됐을 땐 형이 앰뷸런스를 직접 타고 현장으로 출동해 봉사하기도 했죠. 형은 시간이 허락하는 한 모든 여가 시간을 봉사 활동에 바쳤습니다. 형은 동네 사람이 다치면 응급처치 해주는 데 큰 만족감을 느꼈죠.”

14세가 된 그는 벽돌공 기술을 배우기 위해 6년간 교육을 받기도 했다. 만 18세가 되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했지만, 톰은 직업 훈련을 받고 있어 곧바로 군대에 가지 않았다. 나이대로 입대했다면 당시 영국의 의무 복무 기간은 18개월이라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터지기 전 제대가 이뤄졌을 수도 있다.

“형이 SJAB에서 활동해 입대하더라도 의무병이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형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형이 오히려 총을 들기로 선택했더라고요. 의무병이 아니더라도 상처 입은 전우를 데리고 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답니다.”

■18일 만의 전사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 내 토마스 윌리엄 데이비의 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있는 동생 알버트 레이먼드 데이비.
톰은 1949년 12월 8일 군 복무를 시작했다. 해가 바뀌고 톰이 속한 부대는 영국을 떠나 홍콩으로 이동했다. 그는 이곳에서 홍콩과 중국의 국경을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1951년 4월 그는 말레이시아로 갈 것 같았지만 갑자기 한국으로 가라는 상부의 지시가 떨어졌다. 당시 한국에 있던 부대가 톰의 부대와 교체됐다. 그해 5월 홍콩을 떠난 그는 인천에 도착했다.

그는 18개월 복무 기간을 거의 다 채웠기 때문에 한 달 뒤 전역해야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지자, 영국 정부가 의무 복무 기간을 2년으로 늘렸다. 톰은 어쩔 수 없이 한국에서 군 생활을 이어갔다. 톰이 배치받은 곳은 서울로 가는 길목인 임진강 인근이었다. 톰이 도착하기 5주 전 이곳에서는 영국 글로스터 부대가 임진강 전투를 치른 뒤였다.

1951년 6월 1일 한국에서 톰의 첫 임무는 정찰이었다. 임진강 전투 후 적군이 어디로 얼마만큼 후퇴했는지 알아보기 위한 작전이었다. 정찰을 나갔던 톰과 부대원은 적군의 엄청난 포격을 받았고, 톰은 결국 양쪽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헬리콥터로 이동식 병원에 후송됐지만, 다음 날인 2일 결국 전사했다. 한국에 온 지 불과 18일 만이었다.

■잘못된 전보

토마스 윌리엄 데이비(맨 왼쪽)와 알버트 레이먼드 데이비(맨 아래)가 1947년 어머니 및 형제와 함께 찍은 가족 사진. 알버트 레이먼드 데이비 제공
톰의 소식은 하루 뒤 빠르게 영국으로 날아들었다. 톰의 부모는 영국 국방부로부터 전보를 받았다. 첫 전보에는 톰이 양쪽 다리를 다쳤다는 내용뿐이었다. “전보가 도착했을 때 저는 집에 있었어요. 어머니는 이 소식을 접하자 많이 우셨어요. 우리는 톰이 회복하길 기도했죠.”

이어 같은 달 7일 새로운 전보가 도착했다. 톰이 만족스러운 상태로 회복 중이라는 전보였다. 이 소식에 모든 가족은 안도감을 느꼈다. “우리는 형이 곧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습니다.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죠.” 형이 돌아올 것이란 기대를 하고 있을 때, 닷새 후 또 다른 전보를 받아 들었다.

“제가 집 밖에서 전보를 받아 급하게 어머니에게 건넸죠. 어머니는 전보를 열어보자마자 크게 비명을 지르며 오열했습니다. 톰이 지난 2일 전사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21살이란 젊은 나이에 죽을 것이라 예상도 못했어요.”

톰의 전사 소식에 모든 가족이 충격을 받았다. 특히 톰의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충격에 빠져 회복하지 못했다. 톰의 유해는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다. 별도의 장례식이나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없었다.

“한국은 우리가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였습니다. 영국 언론은 한국전쟁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죠. 우리 모두 ‘형의 최후의 안식처는 어딜까’ 궁금했습니다. 이게 우리 가족에게는 미스터리였습니다. 어머니는 창가에 앉아 있으면 항상 형이 올 것으로 생각했죠.”

■1999년 유엔묘지 방문

톰을 애타게 기다렸던 어머니는 1985년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알버트에게 톰의 유품을 물려줬다. 유품으로 톰의 일기 2권과 사진첩 1권이 있었다. 일기장 깊숙한 곳엔 한 여성의 사진이 있었다. 다름 아닌 톰의 여자친구였던 ‘모니카’였다.

“30년 넘게 형의 여자친구의 존재를 몰랐습니다. 형의 일기장 한쪽에는 여자친구가 남긴 글도 있었죠. 행운을 빈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사진을 형의 묘지 옆에 묻어줬으면 좋겠습니다.” 알버트는 취재진에게 그동안 고이 간직한 모니카의 사진을 건넸다.

톰과 한국전쟁을 알아가려는 알버트의 노력은 계속됐다. 우선 1997년 영국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에 가입했다. 2001년부터는 로열 우튼 바셋 인근의 스윈든 지부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2014년 협회가 해체됐지만, 새로운 참전용사협회를 만들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처음에는 제가 이런 직책을 맡아도 될지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형 이야기를 하면서 자격이 있다고 이야기 해주더군요. 제가 참전용사로부터 한국전쟁과 관련된 궁금증을 많이 해결했으니, 그들에게 받은 걸 돌려주고 싶었어요.”

알버트는 1999년 5월 협회의 도움을 받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톰이 전사한 지 48년 만에 유엔기념공원의 묘지에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톰의 기일에는 비무장지대(DMZ)로 이동해 톰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여전히 그리운 톰을 향해 알버트는 보고 싶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저는 형이 엄청나게 보고 싶습니다. 저는 형이 받지 못한 수많은 축복을 늘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형의 희생은 절대 공허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형과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형, 편히 쉬세요.”

영국=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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