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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돼서야 듣게 된 생부 전사 소식…전우 찾아 다녔죠”

UN공원에 잠든 용사들…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2 <13> 네덜란드군 故 아이르 반 블란데른

  •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  |   입력 : 2023-09-24 18:58:10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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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대 전 모친께 들은 재혼 사실
- 한국서 숨진 친부 존재 알게 돼

- 강원도 철원서 숨졌다는 아버지
- 어떻게 돌아가셨는 지 궁금해
- 참전용사협회 지인 등 수소문
- “지뢰 밟고 과다출혈” 비밀 풀려

- 2017년 한국행사 때 부산 찾아
- 아버지 묘지에 헌화… 사진 놔둬
- “부친 모르는 게 늘 한으로 남죠”

“제가 18살 때 의무 복무를 위해 군에 입대하려는데, 어머니가 별안간 ‘안 가도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엄청나게 놀랐어요. 알고 보니 어머니는 재혼하셨고, 저는 새 아버지를 원래 아버지라 여기며 자랐더군요. 그때 처음으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아버지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네덜란드 동부 헬데를란트에 위치한 두이번에서 만난 아이르 반 블란데른(76·사진)이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반 호이츠 부대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아이르 반 블란데른이다. 부자의 이름이 같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들이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게 네덜란드 전통 중 하나다.

“아버지는 제가 5살 때 한국의 전쟁터에서 돌아가셨습니다. 어릴 적 헤어졌기 때문에 아버지에 관해 잘 모릅니다. 이런 현실이 항상 슬펐고, 한으로 남았죠.”

입대를 앞둔 청년 블란데른은 자신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아버지와 관련한 이야기를 듣기 어려웠다. 어머니와 삼촌에게 여러 차례 물어봤지만,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누구였고, 어떻게 자랐는지, 또 왜 한국전에 갔는지 등 잘 모릅니다. 그냥 저 혼자 어둠 속에 내버려 두는 느낌이 들었죠. 누구나 자신의 아버지에 관해 알고 싶어 하는데, 저는 몰라서 씁쓸했습니다.”

아버지와 관련한 실마리를 푼 곳은 네덜란드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VOKS)였다. 협회의 모임에 참석했는데, 아버지와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참전용사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들을 수 있었다.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

아이르 반 블란데른의 아버지. 아이르 반 블란데른 제공
그의 아버지 블란데른은 1925년 12월 5일 산타클로스의 날에 태어났다. 산타클로스는 자선심이 깊었던 성 니콜라스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성 니콜라스가 태어난 날이 12월 5일이다. 네덜란드에서는 이날을 기념해 퍼레이드 등의 행사를 연다.

산타클로스의 축복 속에 태어난 아버지는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자랐다. 그리고 직업 군인이 됐다. 당시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하려던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전투에도 참전했다. 당시 계급은 병장이었다.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자, 참전을 결심했다.

“아버지가 한국으로 간 정확한 이유는 모릅니다. 다만 아버지 전우의 이야기를 듣고 종합해 보면 아버지는 우선 모험을 즐기셨던 것 같아요. 돈도 필요하지 않았나 싶어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라 한국전쟁에 참전하면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었죠. 무엇보다 아버지가 한국 사람을 돕고 싶었던 것 같아요.”

1951년 10월 10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아버지는 저격 임무를 맡았다. 당시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여러 장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안타깝지만 현재 이 편지는 한 장도 남아있지 않다.

아이르 반 블란데른이 어릴 적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 아이르 반 블란데른 제공
“제가 25살 때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편지를 읽어봐도 되냐고 물어봤죠. 어머니는 읽기 전에 고모한테 먼저 편지를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편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고모가 그 편지를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후 고모도 돌아가셨죠. 다만 기억 나는 건 아버지의 필쳅니다. 읽기 어려울 정도의 글씨 모양이었습니다.”

10개월 정도 한국을 누빈 아버지는 1952년 8월 28일 강원도 철원 인근에서 전사했다. 이후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갔다. “여러 참전용사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 해주셨어요. 어떤 분은 아버지가 벙커에 있었는데 수류탄을 맞아 전사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분은 정찰 중에 돌아가셨다고 했죠.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몰랐어요.”

협회 모임에서 ‘보스예(vosje)’라는 별칭을 가진 아버지의 전우를 만나면서 전사 당시 상황의 비밀이 풀렸다. “이분은 아버지가 전사할 때 함께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지뢰를 밟아서 숨졌다고 이야기 해줬죠. 하반신의 고관절에 큰 상처를 입어 과다 출혈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찾아 부산으로

2017년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을 찾은 아이르 반 블란데른(오른쪽)과 그의 아들. 아이르 반 블란데른 제공
그동안 아버지가 정말 사무치게 보고 싶었다. 부자의 재회는 쉽지 않았다. 53년 만에 고인이 돼 묘지에 안장된 아버지와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그 해가 2004년이었다. 한국 정부가 마련한 재방문 프로그램으로 서울을 찾았다. 갑작스러운 복통은 재회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고기를 먹었습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다른 사람은 괜찮았는데, 저만 속이 좋지 않았죠. 결국 5일 정도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당시엔 버스를 타고 4~5시간 정도 부산에 가야 해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버지의 묘지 앞에 무릎을 꿇고 화환을 헌화했다.

2014년 다시 한국 정부의 재방문 프로그램에 초청받았다. 이번에는 한국으로 출발하기 전 네덜란드에서 배탈이 났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곧 한국으로 출국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의사는 못 간다는 의견을 냈죠. 결국 저는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했고, 아버지의 묘지를 찾지 못했습니다.”

3년 뒤 2017년, 다시 네덜란드 한국전쟁 참전용사협회가 주최한 방문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아들과 함께 유엔기념공원의 아버지 묘지에 작은 화환을 헌화했고, 아버지의 사진과 추모 글귀를 함께 놔뒀습니다. 그 순간이 아주 감동적이었죠. 그리고 ‘도대체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 왜 우리는 평화롭게 살 수 없는지’ 등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쉽게 입을 떼지 못했다. “아버지, 저는 아버지를 보고 싶어요. 제가 아버지를 잘 알지 못해서 정말 슬픕니다. 제가 죽으면 다시 아버지를 만나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네덜란드=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

영상=김태훈 PD

※제작지원 : BNK금융그룹

※취재협조 : 재한유엔기념공원관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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