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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에 빠진 교수님, 50대 주방 막내로 취업해 오너셰프로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34> ‘허교수 스시 오마카세’ 허동한 오너셰프

  • 고영삼 은퇴설계전문가(사회학 박사)
  •  |   입력 : 2023-09-19 18:44:58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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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대학서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 주말 요리학원 다니며 창업의 꿈
- 방학 땐 슈퍼마켓서 생선 손질도

- 요리 전념 위해 정년퇴직 전 은퇴
- 낮엔 수업받고 밤엔 스시집 ‘알바’
- “한참 어린 고참에게 설움 겪기도
- 대접받던 교수 생활 잊으려 노력”

- 3월 부산서 개업…매일 다른 메뉴


◇ 허동한의 인생Tip

- 타성에 젖지 말라. 진짜로 원하는 일을 찾아 과감히 뛰어들어라
허동한(오른쪽) 오너셰프가 고객들에게 정통 에도마에 스시의 네타와 샤리에 대해 설명하며 맛있게 즐기는 법을 안내하고 있다. 허 셰프의 왼쪽은 일본인 요시하라 셰프다.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답하기 어렵지만 은퇴기에 접어들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은퇴기란 어떤 기준으로 인생을 살 것인지를 질문받는 시기이다. 이 질문에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감하게 슈팅한 이가 있다. 나이가 더 들면 주저하게 될까 봐 정년퇴직 전에 존경받는 직업을 내 던졌단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초밥집. 인생 후반기 삶의 방향성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 될 것 같아 이 사람을 만났다.



-자신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허교수 스시 오마카세’의 오너셰프 허동한입니다. 해운대 엘시티 상가 2층에 있고요, 일본인 셰프와 함께 매일 다른 10여 가지의 정통 에도마에 스시를 제공해 드리고 있습니다.



오마카세(おまかせ)는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공손하게 표현한 말로 주문할 음식을 가게의 셰프에게 일임하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주방장 특선이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가게는 일본식 미니멀리즘 실내였다. 최대 12명이 셰프의 설명을 들으며 스시를 음미할 수 있도록 바 형식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었다.



-요즘 한국에는 오마카세가 인기를 타고 있습니다. 여기는 어떤 특징이 있나요?

▶저는 정통 에도마에 스시를 추구합니다. 일본의 스시는 에도마에 스시와 간사이 스시로 나누어 그 차이를 말합니다. 에도마에(江戶前)는 단어 상으로는 ‘도쿄 앞바다 스타일’을 말하는데, ‘손으로 쥔다’는 뜻의 니기리 스시 형태가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밥알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려 한입에 들어갈 크기의 샤리(밥)를 손으로 만들죠. 반면에 간사이 스시에서는 샤리를 주물러서 압축하여 쫀득쫀득한 식감의 보우스시(봉스시)나 밧테라(틀 안에 샤리와 네타를 넣고 압축한 스시. 하코스시) 스타일입니다. 저의 스시는 손으로 쥔 다소 꼬들꼬들한 밥 위에 네타(생선)를 얹습니다. 네타는 생선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대개 3~5일 정도 숙성시킵니다.

-다른 초밥집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저는 기본에 충실하려고 합니다. 저는 도쿄 긴자에서 배운 정통 에도마에 스시 방식을 고집하고 싶습니다. 부산에 정통 에도마에 스시 전문집이 있더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일본에서 대학교수로 활동하셨다던데 어떻게 된 건가요?

허동한 교수가 2018년 한일청년포럼을 한양대학교에서 개최한 뒤 한일 양국 대학생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맨 앞줄의 선글라스 낀 이가 허 교수)
▶저는 후쿠오카현립대학 공공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습니다. 노동경제학 사회보장론 등을 강의했었죠. 연구 강의도 열심히 했지만 사회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지자체의 정책전략위원회에도 소속되어, 지방 도시의 인구감소와 고령화를 극복하는 정책을 제안하기도 했죠.



오너셰프 허동한은 사실 뼛속까지 교수였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33세이던 1998년 규슈국제대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2008년에는 귀국하여 명지대 교수로 재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일본에 자리 잡은 가족들이 함께 귀국하지 않자, 할 수 없어 2015년에 다시 일본으로 가 후쿠오카현립대 교수가 되었다 한다.



-교수로 재직할 당시에는 어떤 타입이셨나요?

▶교육 연구 활동도 했지만 학생들의 학술교류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규슈국제대에 있을 때인 2000년에는 한일 양국 대학생들의 학술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한일청년포럼’을 만들었죠. 올해까지 양국의 12개 대학이 참여하여 25회째 계속되고 있으니 미래 세대 교류의 디딤돌을 놓았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스시를 시작하신 건가요?

▶저는 교수로서 충실했죠. 그런데 요리를 좋아했던 저에게는 정년퇴직 후 스시집을 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래서 후쿠오카현립대 교수가 된 후 1년쯤 지나서 후쿠오카에 있는 요리학원의 스시 주말반을 슬금슬금 다녔습니다. 1년 코스였죠.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 정도까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이게 하다 보니 미지의 세계에 대한 흥미가 더해져 억수로 재미있더군요. 그래서 방학이면 슈퍼마켓의 선어 코너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 들어갔습니다. 생선 손질 경험을 더 하고 싶었기 때문이예요.

-(하하) 교수님으로서는 일탈이군요. 손질법 쌓는 것이 그렇게 중요했나요?

▶매우 중요해요. 스시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생선 배를 많이 갈라보고 손질하는 것이 제일이죠. 그런데 실제 음식점 주방에서 누가 저 같은 ‘신삥’에게 기회를 주겠어요. 그래서 슈퍼마켓을 간 거죠.

-그리고요?

▶그리고 점점 빠져들던 중 2020년 코로나가 덮쳤어요. 이때 몸에 무리가 오더군요. 힘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65세 정년퇴직 후에 스시집을 시작하면 체력 땜에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더군요. 의욕도 약해질 것 같고요. 그래서 더 일찍 시작하자는 결론을 내렸어요. 2022년 고심 끝에 24년간 몸담아 온 교수직을 던져버렸습니다. 57세였죠. 아쉬움요? 전혀요. 그리고 도쿄 긴자에 갔습니다.



‘어른 대접’ 받는 교수직을 던지고 주방으로 향한 인생 전환. 쉬운 일이 아니다. 통념도 나이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원하는 일을 한다는 기준만이 중요했던 것 같다. 일본의 알아주는 공부전문가인 와다 히데키는 나이 들면서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의욕 감퇴라 했다. 또한 50을 넘기는 사람은 동기 강화를 위한 자기관리가 별도로 필요하다고 했다. 허 셰프는 그러했다. 스스로 동기를 강화했고 세월을 당겨 뛰어들었다.



-도쿄 긴자의 생활이 시작되었군요.

▶스시 기본을 더 다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쿄의 스시학교 코스에 거금을 주고 등록했죠. 오후 3시까지 배우고선 긴자 중심지의 고급 스시집으로 갔습니다. 밤 10시 넘어까지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도쿄 스시 업계 밑바닥을 배웠죠.

-보람도 있지만 고된 행군이었겠네요.

▶체력이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24년간 교수직으로 있으며 나도 모르게 형성되었던 ‘교수라는 때’가 더 문제였습니다. 주방 안의 인간관계 역학은 상식적이지 않았어요. 짠 밥 순서로 위계질서가 아주 심했어요. 제가 나이는 제일 많았지만 짠 밥이 약하니 10살 20살 밑의 고참들의 ‘부당한’ 지시도 다 감내해야 했죠. (어떻게 했냐고요?) 스시를 배우기 이전에 저의 온몸에 붙어 있는 ‘교수라는 때’를 제거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마인드 컨트롤을 했죠. 매일 새벽 일어나면 ‘나는 교수가 아니다’, ‘나는 배우는 사람이다’,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 등, 내가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큰 소리로 외치며 때를 벗겼습니다.



낯선 세계. 50대 후반 교수 출신은 주방의 뒷마당에서 무조건 고개를 숙여야 했다. 손에 쥔 밥알 숫자를 정확히 알 때까지 배우며 상한 자존심. 뼈를 깎는 고통이었다.



-이곳은 언제 개업했나요?

▶올 3월입니다. 사실 올해 연말까지는 도쿄 긴자에서 스시 공부를 더 할 계획이었죠. 근데 작년 말께 어머님의 건강이 좋지 않아 급하게 부산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계획보다 1년 정도 빠르게 저의 스시집을 가지게 된 거죠. 2016년에 스시의 세계에 입문하여 ‘음지’에서 보낸 세월이 7년이네요(웃음).

-한 편의 드라마군요.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요?

▶처음 아내와 형님은 반대하셨지만 이제 가장 든든한 우군이 되셨죠. 그러나 노모께서는 일본의 대학에 교수였던 자랑스러운 아들이 밥집을 한다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교수와 스시 일은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 전공지식을 잘 가르쳐 그들이 감동하는 것이랑 맛있는 스시에 고객들이 감동하는 것이랑 본질은 같다고 봐요. 앞으로 15년은 에도마에 스시의 기본에 충실한 맛을 계속 살리고 싶습니다.



스시는 기본적으로 상미 기간이 짧다. 그렇기에 신선한 활어 수급선이 좋은 부산은 외지의 스시 미식가를 끌어당길 수 있는 최고의 도시다. 이곳 출신 허동한은 인생 후반기의 좌표를 ‘스시 장인’으로 설정했다. 이를 위해 평판 좋은 직업도 내던졌다. 그리곤 피터 드러커의 말처럼 제일 중요한 하나에만 집중했다. 타성에 젖음을 경계하고 일로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과의 새로운 인연을 설레어 왔다. 뼈를 깎듯이 전념했다. 그랬던 덕분인지 이제 그가 설정한 목표가 신비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인생 후반기의 방향성에 고민하는 사람들, 성공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이들에게 빛나는 나침반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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