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또래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정유정과 무방비 상태의 여성을 뒤에서 가격한 ‘서면 돌려차기 남성’이 사이코패스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들이 실시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에서 각각 28점과 27점이 나왔기 때문인데요. 몇 가지 문항만으로 어떻게 사이코패스를 판별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적인 범죄자들이 그칠 줄 모르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흉악 범죄 소식이 세상 밖으로 알려질 때 꼭 언급되는 단어가 있는데요. 바로 ‘사이코패스 여부’와 ‘사이코패스 점수’입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정신의’라는 뜻의 접두어 ‘psycho’와 ‘-의 결핍 또는 이상’을 뜻하는 접미어 ‘-path’가 결합된 단어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의 일종입니다. 사이코패스는 양심의 가책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현저히 결여되어 있다는 특성을 보이는데요.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국내에 널리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초 20명 이상을 잔혹하게 살해한 유영철 사건 때부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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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공감 능력이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의 장면이 나오고 있다. 사진=더 글로리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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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를 판별하기 위한 PCL-R(Psychopaths Checklist-Revised)이라는 진단 검사가 있습니다. 함혜현 부경대 교수(경찰범죄심리학전공)는 “(PCL-R은) 1991년 로버트 헤어라는 캐나다 한 박사에 의해 처음으로 개발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다. 현재까지 심리학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로 유효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하며 “실제로 프로파일러들이 정신병질적인 성향이 범죄 동기에 영향을 많이 미쳤다고 판단이 들면 그때 실시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이 진단은 총 20개 문항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총점은 40점으로 우리나라는 통상적으로 25점 이상, 미국은 30점 이상일 때 사이코패스로 간주합니다. 비인간적이고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사이코패스 지수는 38점, 8살짜리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조두순은 29점, 장모와 아내를 살해하고 여성 8명을 납치 살해한 강호순은 27점, 여중생 딸의 친구를 성추행 및 살해한 이영학은 25점으로 역시나 높은 점수가 나왔습니다.
사이코패스 검사는 보통 수사 초기 단계에서 진행되는데요. 합리적으로 범죄의 동기가 설명되지 않을 때 어떤 요인이 가장 영향을 미쳤는지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기 위해 사이코패스 검사가 쓰이게 됩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찾아볼 수 있는 PCL-R 진단 문항을 보면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산다’, ‘고통받는 동물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도 나쁘지 않다’ 등의 문항이 있습니다. 높은 점수가 나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상적인 양 답변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에 함 교수는 “기본적으로 PCL-R 검사는 BAI, MBTI 검사와 같이 자기 보고식 검사가 아니다. 평가자가 범죄자를 대상으로 과거의 행형 기록이나 학교 생활기록부를 제공받아서 종합적으로 판단을 한다. 때문에 피평가자의 기만이라든가 거짓은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보면 된다”며 신빙성에 대한 의심을 바로 잡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PCL-R 테스트는 문항 요지와 개수, 선택지를 비슷하게 테스트식으로 재구성 했을 뿐입니다. 실제 검사지를 보면 전문가가 문항을 참고해 사이코패스인지를 진단하는 ‘체크리스트’ 성격을 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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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S에 올라온 한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 문항. 이는 PCL-R을 참고를 했을 뿐 공인된 진단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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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사이코패스는 다른 범죄자들보다 비교적 재범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사이코패스의 재범률에 관한 한 연구에 따르면 정신병질 성향이 높지 않은 사람들의 경우 교도소에서 석방된 후 10년 내에 21%가 다시 범죄를 저지른 반면 사이코패스는 약 77%가 다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함 교수는 “특히 PCL-R은 재범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상당히 유용한 검사다. 그래서 사이코패스 성향이 높은 결과가 나오는 경우에 가석방이나 전자발찌 부착과 같은 단계에서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SNS를 보면 범죄자의 사이코패스 여부와 진단 점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습니다. 심지어는 범죄자들끼리 비교하며 줄을 세우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미 수사 단계에서 유용하게 쓰였을 범죄자들의 사이코패스 여부와 점수 등의 정보는 굳이 우리가 알 필요도 없고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사이코패스 점수가 높든 낮든 잔혹한 흉악범임은 변하지 않고, 심신 미약과 같은 감형 사유로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이코패스로 간주하는 점수 기준이 30점인 미국에서는 조두순, 강호순, 이영학, 정유정 등이 사이코패스로 판별되지 못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미 25점이 넘어간 점수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체감됩니다.
오히려 우리가 사이코패스 점수에 관심을 가질수록 해당 범죄의 죄질과 사회적 영향에 대한 분석이 뒷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누가 누구보다 사이코패스 점수가 높은지에 관심을 가질 것이 아니라 범죄의 죄질,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사회적 맥락, 앞으로의 영향 등의 시각으로 온전하게 바라보는 건 어떨까요. 국제신문 뉴스레터 뭐라노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