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 즉 원자력발전은 지진을 비롯한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전쟁·테러와 같은 외부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취약하다는 것이 전 세계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견해이다. 원전은 미국이나 옛 소련이 볼 때 전쟁 상황을 고려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 감히 미국·소련 본토의 원전을 공격할 수 있는 나라나 세력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한반도의 경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4년 미국이 북한 영변핵시설을 폭격할 뻔한 위험천만한 적도 있었지 않은가.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와 같이 안보가 불안한 나라에서 원전은 자칫 잘못하면 테러나 전시에 큰 화약고가 될 우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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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우크라이나 남부의 카호우카 댐 붕괴 모습. 인근에 자포리자 원전이 있다. AP |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22년 3월 유럽 최대의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원전이 포화에 휩싸이면서 전쟁으로 인한 원전 파괴 우려는 물론 전시 상황에서 원전의 치명적 약점이 노출돼 전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연합뉴스(2023년 6월 6일)는 ‘우크라이나 남부 대형댐 터져 홍수·원전 손상 등 민간인 재앙 우려’라는 기사를 내놓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고, 위험지대는 수만 명에 이르러 주민 긴급대피령이 발령됐다고 한다.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원전에 당장은 큰 위험은 없다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나 러시아 어느 쪽이 했든 이는 전쟁범죄 정황이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환경 학살, 근처 원전 노린 위협”이라고 러시아를 지목하고 있다.
이카타원자력발전히로시마재판사무국이 2022년 5월 발행한 자료(https://saiban.hiroshima-net.org)를 보면 1954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원전이 운전을 개시한 이래 원전 입지 지역이 전쟁터가 된 적은 이번 우크라이나-러시아전이 처음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는 4개 원전에 총 15기의 원자로를 운용하고 있는데 모두 옛 소련의 가압수형 원자로(VVER)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전은 치명적인 약점을 드러냈는데 그것은 전쟁과 원전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전투지역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을 수반하는 원자로의 운전이 계속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2022년 4월 말 현재 우크라이나는 15기 원자로 중 운전 중인 것은 자포리자원전 2기를 비롯해 7기이며, 그 중에서도 자포리자원전은 전기계통 손상으로 100만Kw 출력의 2/3 수준으로 운전하고 있다. 전투지역의 원전은 운전 중지가 상식적으로 맞지만 우크라이나의 경우 국가 전력 수요의 51%를 원전이 조달하고 있기에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원전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사실 원전에 대한 테러 위협은 줄곧 있어왔지만 2001년 9·11 테러로 그 정도가 심각해졌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도 이러한 테러공격에 원전이 극히 취약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고 실제로 9·11테러 이후 미국이 가장 우려한 것이 원전에 대한 테러였다. 그래서 미해군 특수부대 대원이 모의테러훈련을 했는데 원전 침입을 시도한 결과 11개 원전 가운데 7개 원전에서 노심 파괴에 이르는 피해를 입었다는 결과를 2001년 12월 미국 핵관리연구소가 발표한 바 있다.
원자력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은 지금까지 핵무기 개발과 관련돼 계속돼 왔다. IAEA가 반복해 원자력시설에 대한 군사 공격을 하지 않도록 보고서나 결의문을 채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미국과 같은 ‘특정국가’는 원자력시설을 군사 공격의 제1 목표로 삼아왔다는 것이다. 1991년 걸프전에서 미 공군은 제1 목표를 원자력시설에 두고, 반복해 폭격을 가함으로써 이라크의 모든 원자력시설의 20%가 전쟁 중에 파괴됐다고 보고됐다.
역사상 최초로 원자력시설을 겨눈 공격은 실제 이스라엘이 감행한 이라크 원전 폭격이었다. 1981년 6월 7일 이스라엘공군 소속 F16 전투폭격기 6대가 이라크를 공습해 탄무즈1호 원자로를 폭격해 건설 중이던 40만kW급의 원전을 완전히 파괴한 사실이 있다. 그런데 탄무즈원전과 같은 경수로에서는 핵무기급의 플루토늄을 제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익히 국제사회에 알려진 사실이었다(アソシエ編集委員會, 『アソシエ 第10號: 原子力の終焉』,御茶の水書房, 2002)
이처럼 원전이 군사 공격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상존한다고 봐야 한다. 전시 때 극단적으로는 원전이 ‘핵지뢰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원자력 안전전문가가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로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도쿄해상일동리스크컨설팅(주)(東京海上日動リスクコンサルティング株式會社) 위기관리그룹 노무라 유키요(野村幸代) 연구원은 2007년 ‘전쟁 시 원전의 공격성 문제 심각’이라는 보고서(http://www.tokiorisk.co.jp)를 내놓았다. 노무라 연구원은 원전에 어떠한 테러가 일어날 수 있는 지를 다섯 가지 상황으로 정리해놓았다.
첫째, 핵물질 탈취이다. 통상 핵연료는 크고 무거워 탈취가 쉽지 않지만 중무장·조직적 범행의 경우 성공 가능성이 있다. 옛 소련 등에서는 핵물질 관리가 허술했기 때문에 도난이나 분실이 실제로 일어났다. 원전 이외에도 핵연료 사이클 시설 등으로부터 플루토늄, 열화우라늄이나 핵폐기물 등이 도난당한 경우 각각 원자폭탄 열화우라늄탄 등으로의 전용이 가능해져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둘째, 원전 자체에 대한 공격이다. 원전 자체를 공격해 원자로 폭파나 방사능 누출 등을 유발하는 테러로 일반적으로 여러 겹의 격납용기가 있어 다중방어를 하는 원전의 경우 안전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9·11테러와 같은 항공기 충돌에 관해서는 기체 중량, 연료 유무, 돌입시간의 속도 등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최악의 경우 노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셋째, 대정전 유발이다. 2003년 8월 14일 북미 대정전 사례처럼 전력공급이 끊기면 피해는 막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원자로의 중앙제어실을 점거하기만 하면 원자력에 관한 지식이 없는 사람도 원자로를 정지시킬 수 있다.
넷째, 내부 위협자에 의한 행위 가능성도 있다. 일반적으로 테러라고 하면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상정하기 쉽지만 직원 등 내부정보에 정통한 인간에 의한 기밀정보 누설·외부 위협자의 침입 방조나 스스로 공격을 가하거나 하는 내부 위협의 존재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섯째, 사이버 테러 가능성이다. 원전제어시스템에 침입하여 연료 조작으로 노심에 영향을 주는 등 원전의 사이버테러가 발생하면 최악의 경우 방사능 누출 위험도 있다. 이처럼 핵물질을 다루는 원전만의 공격 기법이 있고 또 공격 성공 시 피해의 심각함을 고려하면 원전테러 위협은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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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앞에서 열린 ‘2017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에서 119소방대원들이 화재진압 훈련을 하고 있다. 이날 훈련은 지진에 의한 화재 발생과 테러 공격 등 복합적인 재난 상황을 가정해 진행됐다. 국제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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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민간 외교정책 싱크탱크인 CFR(The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외교관계평의회)는 홈페이지(www.cfr.org/backgrounder/targets-terrorism-nuclear-facilities)에 미국이 피해를 볼 수 있는 핵시설 공격에 대한 국가안보 전문가들의 우려 상황을 다음과 같이 들고 있다.
▷원전이 트럭이나 보트로 배달된 폭탄에 맞은 후 대량의 방사선을 방출하는 경우 ▷비행기를 유도미사일로 사용해 핵시설에 충돌시키는 9·11형의 공격을 하는 경우 ▷내부자 또는 침입자에 의한 원자력시설의 파괴 행위 ▷원전 폭파를 시도하는 특공대의 지상 공격 ▷자살테러범들이 원전에 침입하여 방사성물질이 섞인 재래식 폭발물인 ‘더티밤(dirty bomb)’을 빠르게 만들어 폭발시키려 할 경우 ▷공격자들이 재래식 폭발물을 사용해 일부 핵폐기물이나 핵연료를 폭파하여 방사성물질을 인근에 확산시킬 경우 ▷원자로의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이 보관된 수조를 목표로 삼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핵전문가들은 이것이 원전의 멜트다운보다 더 심각한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원전이나 핵관련 시설에 대한 테러는 이미 다수 발생했다. 원전 테러 위협은 이제 현실이 되고 있고, 실제 원전 테러 사례도 많다. 2007년 11월 2일 미국 애리조나주 팔벨로테원전에서 시설에 들어가려던 계약직 직원의 차량에서 파이프 폭탄이 발견돼 시설이 일시 봉쇄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같은 해 11월 8일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서부의 펠린다바원자력연구시설에 총을 소지한 4인조가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966년 11월 영국 브래드웰원전에서는 핵연료봉 20개를 도난당한 사실이 있고, 1970년 4월 영국 크로스터셔버크레이원전에서는 불만을 가진 직원이 방전기를 제어하는 와이어를 절단한 사실도 있다.
1971년 8월 미국 버몬트양키원전 내에 괴한이 침입해 달아나다 경비에게 위해를 가한 사례가 있고, 1972년 11월 미국 오크리지실험로시설에선 납치범이 이 시설 상공을 비행기로 선회하다 시설에 돌격하겠다고 협박해 직원들이 대피했고, 범인은 당시 요구금 1000달러를 받아낸 적도 있다.
1975년 8월 프랑스 몽다비원전에서는 브레통 분리주의자가 폭탄 2개로 공격해 냉각수공급 호수와 원전을 연결하는 운하 건물에 폭탄을 설치했으나 피해는 없었다. 1982년 2월 프랑스 고속증식로에서는 슈퍼페니젝스론강 건너편에서 로켓탄 5발이 떨어졌는데 환경운동단체가 범행을 시인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1993년 2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원전에서는 승용차에 탄 정신질환자가 방호구역 게이트와 터빈을 들이받고 차량을 버리고 도주했다 체포되기도 했다. 1998년 12월 러시아 체첸공화국 수도 그로즈누이에서 9마일 떨어진 철도 선로 부근에서 방사성물질을 탑재한 컨테이너의 안에서 폭탄이 발견돼 당국이 해체했다.
원전에 전쟁·테러 외부공격이 일어난다면? 생각도 하기 싫은 끔찍한 일이다. “원전사고의 경우 상상 가능한 사고는 일어날 수 있다. 사고 시에는 안전장치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사고는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원인으로 일어나며,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미국 베크 박사의 ‘베크의 법칙’이다. 전쟁과 테러는 사전에 막아야 할 일이다. 평화와 안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