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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현장’ 콜센터 취업기 <상> 폭언에 손 덜덜…화장실도 보고하며 가 방광염 달고 산다

  • 정지윤 기자 stopx@kookje.co.kr
  •  |   입력 : 2023-06-04 20:18:24
  •  |   본지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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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부터 콜센터에서 일한 김명신 활동가의 취업기는 평어로 작성합니다. 평어란 모든 호칭을 이름으로 통일하고 존대법을 사용하지 않는 ‘예의 있는 반말’을 의미합니다. 전화기 너머 절대적 ‘을’인 콜센터 노동자는 고객과 상급자에게 늘 반말을 듣습니다. 한 인간의 삶에서 언어는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말처럼 하대와 모욕은 어느새 자연스런 일상이 됐습니다. 명신의 입을 빌어 사람 간의 높낮이를 따지지 않는 ‘평어’를 사용해 낯설지만, 동료 시민으로 갖춰야 할 평등한 감각에 관해 함께 느껴보려 합니다.

- 오전 오후 10분씩만 휴식시간 허용
- 한숨 못 쉬어 담배 피우는 동료 많아
- 감정노동자법상 전화 끊을 수 있지만
- 고객 갑질 그대로 듣고 있는 게 현실

난 29세 명신이야. 제주에서 태어나 대학 진학을 위해 부산에 왔어. 어릴 적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일본이 너무 싫어 일본어를 열심히 배워 혼내줘야겠다는 다짐으로 일어일문학과에 진학했어. 근데 대학에 와보니, 여기저기 밥 숟가락 얘기가 돌더라. ‘흙수저로 태어나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게 현실이라니. 누구나 노력하면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 청년 진보 운동가 활동을 시작했어.

5년을 정신 없이 뛰어다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꿈꾸는 정치가 현실과 동떨어진 낭만과 이상을 외치는 게 아닐까. 일하는 또래 청년과 활동가인 내 삶이 멀게만 느껴져서 20대 여성이 많이 일한다는 콜센터에 취업하기로 했어.
■“김명신 중지 풀어. 중지 누르지마”

아~ 첫날부터 그만두고 싶더라. 지난해 9월부터 지난 1월까지 부산지역 A 카드사의 위탁 콜센터에서 일했어. 일단 여긴 화장실을 마음대로 못 가. 8, 9명인 팀당 1명만 갈 수 있는데 단체 메신저에 “화장실 다녀오겠습니다”고 쓰고 앞 사람이 화장실을 다녀오면 갈 수 있어. 문제는 내가 전화를 받는 사이 자꾸 다른 사람이 먼저 가니까 순서를 놓치기 일쑤더라. 다들 변비는 기본이고 방광염을 달고 살아.

화장실 하나 마음 편하게 못 가는 곳이니 밥은 오죽하겠어? 오전 11시59분에 전화가 들어와도 무조건 받아야 하고, 점심시간 20분이 날아가서 밥을 입에 욱여넣는 한이 있어도 낮 12시50분에는 앉아서 준비해야해. 오전에 진상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밥은 편하게 먹고 싶은 날에도 ‘중지’(콜 수신 멈춤)를 걸어놓으면 관리자가 “김명신 중지 풀어. 중지 누르지마”라고 소리를 질러. 통화 끝내고 ‘후처리’(상담 이력 정리) 시간이 조금만 길어져도 또 반말로 고함을 치지. 처음 들었을 때는 어찌나 놀랐는지 심장이 벌렁거려 죽겠더라.

■“통화할 땐 한숨 못 쉬니 담배를 피워”

살면서 여성 노동자가 이렇게 담배를 많이 피우는 회사는 처음 봤어. 쉬는 시간도 오전 오후 10분씩만 허용됐고, 한 팀당 1명만 돌아가면서 쉬어. 회사 동료 10명 중 6명은 담배를 피우니까 이 10분 안에 후다닥 가서 빠르면 2개비도 피우고 오지. 왜 이렇게 피우냐니까 작은 한숨 소리도 통화할 때는 용납이 안 되니 담배 피우면서 숨쉬는 거래. 유일한 도피처고 숨구멍인거지.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는데, 진상 고객한테 “너 같은 애들은 내가 카드 써서 돈 버는 주제에 건방지게 군다”는 등 별소리를 다 듣다 보니 이해도 됐어. 카드사는 민감한 개인정보를 다루니까 콜센터 상담원이 먼저 말할 수 없는 정보가 많아. 근데 한 고객이 자꾸 개인정보를 알려달라 해서 규정상 말 못 한다고 하니 폭언에 욕설을 30분 넘게 쏟아부었어. 손이 덜덜 떨리고 숨이 잘 안 쉬어져서 펑펑 눈물만 흘리고 있었는데 그때조차 상급자가 허가 안 해주면 자리를 못 비워.

회사 다니면서 들은 가장 어이없는 말은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계속 말해서 고객이 화를 내게 만들면 안 된다”야. 대체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일까. 규정상 반드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고객이 욕하면 그대로 듣고만 있어. 감정노동자 보호법에 따라 폭언이나 욕설하면 끊을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회사에는 매뉴얼도 없고 관리자가 끊어준 적도 없어. 총알받이 신세다 보니, 몇 개월 안 지나서 몸 여기저기에 이상이 생기더라. 그건 내일 얘기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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