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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관두고 스마트 농장주로…유럽포도 新재배법 전수

고영삼의 인생 이모작…한 번 더 현역 <16> 서병희 포도농원 ‘은기원’ 대표

  • 고영삼 동명대 교수
  •  |   입력 : 2022-12-13 19:21:36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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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급쟁이 비애…미래 30년 준비

- 씨 없는 유럽포도 호기심 생겨
- 영어논문 3000편 읽고 연구개발
- 2013년 美 양조포도학회 가입
- 2016년 51세 때 LG그룹 사표

# 인생일모작 때의 경험도 자산

- 비닐하우스서 30여 종 재배 중
- 기계공학 전공 활용 재배법 창안
- 농업기술센터에 기술무상 제공
- 책·자료집 내고 마이스트大 강의


◇ 서병희의 인생Tip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혼신의 힘을 다하라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인생일모작 때 직장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은 모든 가치를 압도한다. 하지만 땀의 결과가 자신의 꿈과 마찰을 일으킬 때가 올 수 있다. 아웃풋이 인풋을 외면하고 성취감은 기대조차 못 하는 상황이다. 이때 살아남는 자는 인생이모작에서도 영원한 현역이 될 수 있다. 좋은 사례가 있다 하여 방문한 곳은 한 포도농원이다.
서병희 대표가 은기원포도재배법으로 키운 포도나무의 잎을 보며 웃고 있다.
-여기는 어디인가요?

▶김해 대동면 주동리이고요. ‘은기원’이란 포도농원입니다.

-어느 정도 규모인가요? 무엇이 특별한가요?

▶대략 5600㎡(1700평) 규모의 비닐하우스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플레임 시들리스와 같은 씨 없는 유럽포도 30여 종을 재배하며 현지 직판하고 있습니다.



서병희 대표가 저술한 책과 자료집.
현재 만 57세인 서병희 대표. 그는 대기업에 사표를 던지고 51세인 2016년에 아이들 이름을 따와 이곳에 ‘은기원’이란 농장을 설립했다. 애초 450여 그루를 심고 시작했으나 많은 우여곡절을 넘어 올해 비로소 대기업 연봉만큼 소득을 올렸고 몇 년 후에는 3억 원 이상도 가능할 것 같단다. 그를 따라다녀 본 비닐하우스에는 겨울에도 형형색색 아름다운 포도나무 잎이 화려했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하셨나요?

▶저는 부산대 정밀기계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에 LG그룹에 입사했습니다. 문제는 1997년에 맞은 IMF 경제위기였는데 이 때문에 저는 계열사와 분사회사를 옮겨 다니는 상황이 되더군요. 남들에겐 부러웠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주인이 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군요.

-무슨 뜻인가요?

▶저는 일밖에 몰랐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해 밤 9시, 10시에 퇴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능력을 인정받아 관리자 레벨까지 빠르게 직행했었죠. 하지만 제 회사가 더 큰 회사에 합병되는 상황 등을 경험하면서 월급쟁이의 비애를 느꼈죠.



열심히 했던 만큼 일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인생일모작 때 흔히 있을 수 있는 이런 고민은 직장생활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인생의 기회를 붙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때 그는 유한한 시간자원을 온전히 자신의 일에 투여하고 싶다는 생각나무를 키웠던 것 같다. 그럼 포도나무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래서 이 포도농원을 시작하셨나요?

서병희 대표가 직접 연구개발한 유럽종 무핵포도 재배기술을 강의하고 있다.
▶직장생활 중 해외 출장을 가면 유럽의 씨 없는 포도를 먹곤 했죠. 1999년쯤에 점점 호기심이 많아졌는데 국내는 물론 일본에도 정보가 없더군요. 어쩔 수 없이 영어권 논문을 읽기 시작했고, 2013년도에는 미국 양조포도학회에도 가입했죠. 그러다가 2016년에 회사에 사표를 던져버렸습니다. 51세였어요. 마침 김해 에코델타 지역에 있던 아버지 논이 정부에 수용되면서 돈이 좀 생겼고, 저의 퇴직금을 보태 이곳에 땅을 매입하고 유럽종 포도 나무를 심었습니다.

-최고 대기업에서 촉망받던 직장인이 그렇게 덜컥 농사일을 하셨다구요?

▶덜컥이 아닙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단이었습니다. 트렌드를 읽었고, 씨 없는 포도를 찾는 시절이 분명히 온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집중력과 제가 연구한 기술력을 신뢰했죠.

-어떤 연구를 하셨다는 건가요?

▶저는 지금까지 포도에 관한 영어 논문을 3000여 편을 읽어냈습니다. 그중 1000여 편 정도는 전문을 번역했죠. 손가락이 아파서 키보드를 칠 수 없는 상태가 아니라면, 밤낮없이 번역하고 정리하고 틀을 잡고 논리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죽자고 시험 및 실험 재배를 반복했습니다. 사표 던질 때 잠시 망설였지만 월급쟁이는 지긋지긋했고요. ‘남은 인생 30년 동안 내가 가장 잘할 수 있고, 가장 경쟁력이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기준으로 결단했어요. 포도에 미쳐있었고, 어느 시점 생각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던진 거죠.

-그래도 포도재배는 전문영역과는 너무 다르지 않았나요?

▶그럴 수 있죠. 하지만 농장을 둘러보시면 알 겁니다. 저의 재배법에는 수학 물리학 화학 등 기계공학적 특성이 다 들어있습니다. 낯선 영역이 아니죠. ‘은기원포도재배법’이랄까, 많은 논문을 읽고 실험하며 저만의 과학적 재배법을 창안했습니다.

-은기원포도재배법요?

▶보시듯이 우리 농원에는 이 넓은 곳에 일꾼이 한 명도 없습니다. 포도재배는 순치기 덩굴손 따기 봉지 씌우기 등 손질이 많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수세(나무 자람세) 수분 등을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이를 통해 나무 자체가 성장을 조절하도록 유도하는 신재배법을 개발했습니다.



인터뷰 도중 실제 다녀본 비닐하우스 포도농장은 무언가 달랐다. 작동될 수 있는 다양한 장치가 있었다. 그는 또 다른 스마트 포도 팜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었다.



-더 설명해주세요

▶저는 포도의 품질과 당도가 최적기가 되는 미래 날짜를 정하고서 그로부터 일주일, 이주일, 한 달, 두 달 전부터 나무의 수분, 시비를 통해 세력을 조절하죠. 이 지역은 낙동강을 낀 염분이 많은 지역이라 포도원에 여름과 겨울 각각 다른 관수법을 사용합니다. 퇴비 중심의 경북 등 다른 지역과는 다릅니다. 또 시기에 따라 다른 재배법을 통해 나무, 잎, 과일 등의 성장을 각각 억제하거나 강화시켜 결정적으로 최적의 맛을 만들어 내는 거죠. 식물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탄소를 완벽하게 조절합니다. 이 재배법으로 연간 수천만 원의 인건비가 절약되죠. 매출액이 순이윤으로 남는 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

-난관도 많았겠군요.

▶이 지역이 저지대여서 비가 올 때면 논에 물이 심하게 많이 차더군요. 그대로 두면 건조한 조건에서 생장시켜야 할 나무를 저수지에서 키우는 식이 되겠더군요. 이미 엄청나게 투자를 많이 한 뒤 알게 되었기에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뚫고 나가야 했고,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하우스 구조와 주변 환경을 개선했습니다. 결국 이렇게 성공했죠.

-앞으로 계획은요?

▶당분간 저의 기술과 경험을 전파하고 싶습니다. 정부 기관, 특작과학원, 시도 농업기술센터 등에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는 경북 마이스트 대학 등에서 강의를 많이 하고 있으며, ‘유럽종 무핵포도 재배기술’ 책 출판, 10여 권 자료집도 발간했습니다. 2021년부터는 ‘유럽종 탐구회’란 동호회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생이모작을 준비하는 이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주문에 서병희는 “먼저 다시 남은 30년을 위해 무엇을 최고가치로 삼을 것인가, 얼마나 시간을 아끼고 투자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리석을 만치 근면해야 합니다”라고도 했다. 전문 학자도 아닌 이가 생경한 영어 논문 3000여 편을 읽으며 시험 재배를 반복해온 내공이다. 그는 인생일모작의 자산도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LG에 다닐 때 학습한 영어능력, 조그만 성과 하나를 위해서라도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한다는 명제, 세상일 혼자서 이룰 수 없다는 깨달음이다. 인생 하수들이 경험을 우연의 사건으로 기억하고 말 때 서병희는 움켜쥘 수 있는 교훈을 축적하고 한 걸음 더 내디뎠다.


▶유럽식종 포도 TIP

-포도는 미국종 포도와 유럽종 포도로 나뉜다. 캠벨얼리 머루포도 샤인 머스켓 등 미국종 포도는 미국 동부가 원산지로 강수량이 많은 지역에서 재배된다. 플레임 시들리스 블랙 사파이어 등 유럽종 포도는 연 강수량 250㎜ 정도의 중동, 미국 캘리포니아, 호주 내륙 사막지에서 재배된다.

-포도의 소비자 트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씨 없고, 과일 같고, 단단한 특성을 지니는 포도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기후 여건상 이들 품종을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대로 가다가는 수입산이 식탁을 덮을 것이라 정부의 더 많은 관심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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