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최초의 공식 부랑인 시설인 ‘영화숙·재생원’은 1968년 ‘부산시 재생원 설치 조례’에 근거해 부산시의 권한을 위임받았다. 이 조례는 영화숙·재생원 이후에도 칠성원과 형제복지원에게 공적 권한을 부여, ‘부랑인 소탕’이란 명분의 인권유린이 지속되도록 만들었다.
칠성원(1971년~1975년)은 영화숙의 뒤를 어어 부랑인을 수용했다. 1971년 영화숙과의 위탁 계약을 해지한 부산시는 그해 9월 칠성원을 새 수탁자로 삼아 부랑인 수용·격리 정책을 이어갔다. 이때부터 칠성원은 1975년 7월까지 성인 부랑인 200~300명을 수용했다. 개중에는 아동 또한 포함됐다.
칠성원의 전신은 1951년 배삼술 대표가 설립한 애광양로원이다. 1962년에는 애광보육원이 설치되면서 법인 규모를 키웠다. 이후 시 공식 부랑인 수용 시설이 된 칠성원은 최대 300명 규모의 수용인을 관리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양로원·보육원 운영 경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배고픔 등을 이유로 시설을 탈출하는 이가 한 달에 50여 명에 이르렀다.
결국 칠성원은 1975년 7월 부산시에 위탁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1985년에는 애광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현재는 치매 노인 전문 요양원과 노인 복지시설 운영에 주력하고 있다. 설립자 일가는 2000년대 초 횡령 비리 사건으로 물의를 빚고 법인에서 물러났다.
칠성원 다음으로 부랑인을 수용한 시설이 형제복지원(1975년~1987년)이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 7월 25일 시와 위탁계약을 체결해 1987년 6월까지 12년 동안 국가의 방조와 묵인 아래 강제노역·구타·성폭행·암매장 등 인권 유린 행위를 일삼았다. 지난 8월 기준 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만 657명에 달한다.
형제복지원은 그 실태가 폭로된 1987년 이후에도 이름을 바꿔가며 비교적 최근까지 운영돼왔다. ‘재육원’(1988년) ‘욥의마을’(1991년) ‘형제복지지원재단’(2002년) ‘느혜미야’(2014년) 등으로 변모하며 2016년까지 존속했다.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박인근 원장은 2년 6개월의 형기를 마친 뒤 1991년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실로암의 집’을 개소하기도 했다.
박 원장과 일가는 레포츠(빅월드레포츠)·화장품(피부과학연구소)·온천사업(사상해수온천) 등 수익 사업에도 손을 대며 부를 쌓았다. 이는 부산시의 사업 승인 없이는 어려운 일이었다. 오랜 세월 지역에서 악명을 떨쳐온 이 재단은 2016년 1월 10일 부산시가 최종 설립허가 취소와 법인해산명령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