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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랑인 시설 인권유린 증언] <4>14살에 영화숙 생활 박경훈 씨

"보리밥 좀 더 먹으려 방장 수락…생존 위해 거절 못했다"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2-11-27 19:11:18
  •  |   본지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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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구경 갔다가 가출소년 취급
- 시립아동보호소에 두 달 간 수용
- 연고지인 부산 영화숙에 보내져
- 한겨울 맨몸 ‘빠따’ 후 쫄쫄 굶겨

- 감금 2년 차에 점호 방장 맡게 돼
- 경비 서던 날 목숨걸고 탈출 감행
- 자갈치시장 아줌마 덕에 집으로
- 기사 본 동생, 증언 동참 권유해

1960년대 부산 유일 부랑인 시설 ‘영화숙·재생원’은 내부자를 동원해 수용인을 통제했다. 원생 중에서 ‘방장’으로 불린 관리자들을 뽑아 동료 원생을 억압하게 했다. 방장에겐 조금 더 많은 밥, 좀 더 편한 잠자리가 제공됐다.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갈대밭 습지로 둘러싸인 이 아수라장에선 굶어서 죽고 맞아서 쓰러진 10대의 주검이 하루가 멀다고 나왔다. 방장 자리를 마다하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생존’에 불리한 일이었다.

1년 가까이 영화숙에서 방장을 맡은 박경훈(69) 씨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어린아이가 부모 보고 싶어할 새도 주어지지 않는 일상”을 견디려면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 했다. 이들 또한 강제로 시설에 갇혀 수년을 폭력과 강제노역에 시달린 피해자란 사실엔 변함이 없다.

■서울 구경 나섰다 2년 감금

유년 시절 박경훈(왼쪽) 씨와 그의 동생 박승훈 씨. 박승훈 씨 제공
박 씨는 14살이던 1968년 영화숙에 붙잡혀 갔다. 그는 부모·형제와 함께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서 살았다. 집은 가난했을지언정 고아나 부랑아가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서울 구경을 떠나지만 않았더라도 그에게 불행은 없었을지 모른다. 당시 박 씨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 몇 날 며칠을 돌아다녔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출해 온 친구의 꼬드김에 집을 떠난 것이다. 이때만 해도 2년을 영화숙에서 썩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다 단지 행색이 남루하단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역에서 남대문경찰서로 끌고 간 경찰은 “부산 가는 12시 열차에 태워주겠다”며 지하 유치장에 박 씨를 가뒀다. 그러나 그가 향한 곳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였다. 박 씨는 “새벽에 버스가 한 대 오더니, 은평구에 있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갔다. 거기서 두 달을 지냈다”고 회상했다.

2개월 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부산행 기차에 태워졌다. 부전역에 도착하자마자 낯선 이들에 의해 검정 차량으로 떠밀려 들어갔다. 창문도 없는 차량은 30명 가까운 어린이로 꽉 들어찼다. “차량은 중구 중앙동 사무실로 갔어요. 집으로 보내주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죠. 사무실은 형무소와 비슷하게 창살이 있었어요. 밥 한 끼도 안 주고 저녁까지 기다리게 했어요. 밤이 돼서야 다시 차에 태워 장림동(영화숙 소재지)으로 갔습니다.”

당시 각 지자체는 연고지에 따라 수용 중인 가출 소년을 주고받았다. 부산시는 박 씨가 영화숙에 갇히기 직전인 1967년 4월에도 서울시립아동보호소가 수용 중인 가출 아동 중 부산 연고가 있는 54명을 인수해 재생원에 수용했다.

또 영화숙·재생원은 ‘거리단속반’으로 불린 조직을 운영하며 부랑아 소탕에 나섰는데, 주로 매 끼니 시간과 야심한 밤에 이뤄졌다. 박 씨가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 대기한 이유도 이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박 씨는 영화숙에 도착하자마자 방망이 세례를 맞았다. 그는 “보충대라는 곳에 배치하고는 옷을 벗기더니 ‘신입 빠따’라면서 2, 3대를 때렸다. 옷을 벗기면 도망을 못 가지 않나. 어린애가 그 겨울에 얼마나 추웠겠나. 밤새 밥도 안 주고 굶기더니 아침이 돼서야 밥 먹으라고 식당으로 모이게 했다”고 치를 떨었다.

그의 기억에 영화숙은 총 7개 소대로 구성됐다. 나이별로 1~6소대를 나눠 배정했고, 여아 소대가 따로 편성됐다. 인근에 재생원이 있었지만 교류는 거의 없었다. 소대 내 수용실은 침상 없는 좁은 방이었다. 이곳에서 15명가량의 어린이가 몰려 생활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똑같은 이불과 담요를 썼다. 아침 세면은 도랑이나 개울가에서 해결했다. 단체 세면장이 있었지만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개울 물이 따뜻했다. 그는 야산에서 자루에 돌을 주워 와 담을 쌓는 노역에도 동원됐다. 끼니는 보리밥 한 덩이에 국 한 그릇 정도만 제공됐다. 머리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깡마른 아이의 시신을 구덩이에 묻어준 일도 있었다.

■“방장이 돼 살 수 있었다”

영화숙에서 2년간 감금됐던 박경훈 씨.
영화숙의 군대식 통제는 폭력과 굶주림을 토대로 삼았다. 소대장으로 불린 중간 관리자는 방망이와 같은 둔기로 원생을 때렸다. 방장도 소대 내 분위기를 잡기 위해 주먹을 썼다. 방장에게는 보리밥을 남들보다 조금 더 주는 혜택이 있었다. 이동의 제한도 다른 원생보다는 덜했다. 당시 장림동에는 쓰레기 매립장이 들어서 갈대밭 습지를 메우고 있었다. 방장들끼리는 이 매립장을 뒤져 쓸 만한 물건을 건져오기도 했다.

4소대원이었던 박 씨는 영화숙 감금 2년 차에 방장이 됐다. 남들보다 빠릿빠릿해 방장 제안을 받았다. 방장의 주요 임무는 점호였다. 아침·저녁으로 진행되는 점호 때 방장은 인원을 파악한 뒤 소대장에게 신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는 “점호가 잘못되면 워커발이 날아들었다. 가슴팍을 차이곤 했다. 원생이 도망가면 안 되니 점호가 엄했다”고 설명했다.

방장이 됐다고 해서 배고픔과 학대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소대장이 먹다 남은 오이를 던지면 원생들이 개떼처럼 달려가 주워 먹었어요. 밥 말고는 먹을 게 없었으니까요. 하루는 원생 한 명이 밭에서 딸기를 훔쳐 먹었는데, 동네 주민이 신고를 했어요. 원장이 마당으로 모두 집합시키더니 그릇에 담긴 딸기를 한 움큼 쥐어서는 그 원생 입에 욱여 넣었어요.”

그는 영화숙의 대외 홍보를 위해 핸드볼 팀 골키퍼를 맡았다고도 했다. 박 씨는 “영화숙 근처에 장림초등학교가 있었다. 초등학생 나이가 아니었는데도 그 학교 핸드볼 팀 골키퍼를 맡게 됐다. 자신들이 아이들을 잘 먹이고 잘 보살피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홍보 수단의 일환이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장림초 교사들이 영화숙으로 와 국어 등을 가르치기도 했다고 그는 증언했다.

그는 방장이 된 덕에 영화숙을 탈출할 수 있었다. 방장은 밤에 경비를 서야 했다. 박 씨는 경비 업무에 투입된 틈을 타 영화숙 바깥으로 도망쳤다. 그는 “시내 쪽만 보고 뛰었다. 논에 쌓인 짚에 숨었다가 다시 뛰기를 반복했다. 다행히 자갈치시장에 고기를 사러 가는 아줌마 한 분을 만났다. 영화숙에서 도망 나왔다고 하니, 나를 데리고 하단에서 구포로 가는 배를 태워줬다. 참 고마웠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2년 만에 장남이 집으로 돌아온 통에 가족들은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박 씨는 “알고 보니 엄마와 누나가 영화숙까지 찾아왔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런 애 없다’고 해 돌아가야 했다고 한다. 내가 거지꼴을 하고 나타나니 동생들도 정말 놀랐다”고 했다.

박 씨가 당한 일은 가족들 외엔 아무도 모른다. 동생이 아니었다면 앞으로도 말할 기회는 없었을 터였다. 그의 동생인 박승훈 전 세계주니어역도 조직위원회 사무차장은 손석주 씨 등 영화숙·재생원에서의 삶을 털어놓은 기사(국제신문 지난 1일 자 1·6면 등 보도)를 보고 형에게도 증언에 동참하라고 권유했다. 박 씨는 “형제복지원과 다르게 영화숙은 말을 띄울 형편이 아니었다. 아무도 모르는데 말을 해서 뭣 하는가”며 “지금이라도 영화숙 피해자를 꼭 만나 보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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