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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574> 후성과 후생 ; 유전학의 전환

  • 박기철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  |   입력 : 2022-07-25 19:07:08
  •  |   본지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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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기 때부터 팝송을 많이 들었단다. 울 엄마가 라디오 프로그램인 ‘3시의 다이얼’을 들으며 집안일을 하셨는데 나도 덩달아 팝송을 늘 많이 듣고 흥얼거렸단다. 초등학생 때 독수리표 전축 장만 후 아버지가 팝송 레코드를 많이 사가지고 오셨는데 나 혼자서 참 많이도 들었다. 중학생 때 삼촌이 치던 기타를 물려받았는데 동네 형한테서 간단한 코드와 주법을 배웠다. 그리고 고등학생 때 소풍을 가면 기타를 들고 나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버닝 러브’ 등을 불렀는데 당시 내 별명이 엘비스 박이었다. 기타는 나한테 반려악기다. 매일 치며 노래 불러왔다. 지금도 어떻게 하면 잘 치고 잘 부를지 노력한다. 이제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한다. 내가 자녀를 낳는다면 내가 후천적으로 가지게 된 음악적 특성이 유전될까?

후천적 요인들도 유전된다는 후성 후생 유전학.
이 질문에 대해 다윈의 진화론으로 답변한다면? Absolutely no! 절대로 유전될 수 없다. 왜냐? 돌연변이로 인한 선천적 유전자만이 후손에게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화론의 절대자 다윈이라도 유전학에 대해서는 흐릿했다. 그는 물감 같은 게뮬(gemmules)을 통해 유전된다고 여겼다. 빨강과 파랑이 합쳐져 보라색이 나오듯이 유전된다는 것이다. 세상을 확 바꾼 ‘종의 기원’에서 그런 논리를 펴는 5장은 스킵하면 좋다. 그 정도로 허접하며 잘못된 내용이다. 유전은 DNA 분자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게 정설이다. 아울러 DNA 주변 요인들이 유전될 수 있다고 보는 설이 대두되었으니 이른바 후성유전학(epigenetics)이다. 이에 따르면 아까의 똑같은 질문에 대해 다르게 답변할 수 있다. Probably yes! 나의 노력으로 가지게 된 후천적 형질이 어쩌면 유전될 수 있다.

그렇다고 후천적 획득형질이 반드시 유전된다고 확정 짓는 건 아니다. 다만 유전될 수 있다고 추정 중이다. 이를 연구하는 후성 유전학은 아직 정설은 아니다.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후천적 요인들로 인하여 선천적 유전자인 DNA 염기서열과 그 주변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다면? DNA 주변 관계의 변화가 DNA 염기서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 DNA가 자극받거나 그 반대로 억제된다면 어찌 될까? 당연히 RNA가 달라지며 순차적으로 어떤 특정한 아미노산 발현 → 단백질 발현 → 세포 발현이 더 되거나 덜 된다는 것이다. 유전자 주변을 포함한 유전체 변화가 생명체 성장에 간접적 영향을 준다는 논리다.

좀 더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아까 한 질문의 연장이다. 10대 때부터 지금까지 나의 후천적 노력으로 지닌 내 성대가 유전될까?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지 않고 고음을 오래 내질러 불러도 목이 쉬지 않는 나의 후천적 성대가 유전되면 좋겠는데… 후성 유전학에서는 아마도 그럴 수 있을 거란다. 짧은 좁은 내 소견(所見)과 내 작은 소견(小見)으로도 그럴 것 같다. 또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라마르크 용불용설의 부활이며 역전이다. 아직 정립이 덜 된 후성유전학은 보다 확실한 후생유전학으로 자리 잡겠다. 이에 따라 좋은 쪽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좋겠다. 선천적 나뿐만 아니라 후천적 내가 유전된다는 사실은 인생을 다르게 동기 부여할 수 있다. 후손을 위해 지금 나 자신을 더 좋게 하려 힘쓰지 않을까? 후성(後成), 더 나아가 후생(後生) 유전학으로 더 나은 인간 세상이 된다면 좋을 텐데.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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