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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축제 겉만 화려…해양문화유산 발굴은 뒷전

■ 해양수도 부산에 문화는 없다

목포시·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조선통신사선 복원 위상 공고

서긍 ‘고려도경’ 기록 섬 따라 서남해 사단항로 탐방 등 적극

부산시 주관 올 해양행사 24개…국립해양박물관 뒤늦게 용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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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조선통신사선 복원선을 앞세워 지역 해양유산 발굴에 전력을 쏟는다. 조선통신사 축제에만 배를 띄우는 게 아니라, 서남해 지역을 기록한 옛 문헌을 직접 뒤쫓으며 오늘날과 연결시키는 등 차곡차곡 지역 해양문화 자산을 쌓는다. 국제신문은 지난 20~22일 연구소가 주관한 ‘고려시대 서남해 사단항로 시범항해’에 동행해 조선통신사선의 활약상을 들여다 봤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이하 연구소)의 조선통신사선 복원선. 신심범 기자


●고려시대 사단항로 탐방 나선 통신사선

복원선은 연구소와 국립해양박물관 소속 학예사, 목포 향토사학자 등 15명을 싣고 목포에서 출항했다. 항해는 송나라 사신 서긍이 고려의 지형과 생활풍속 등을 관찰해 정리한 ‘고려도경’에 기록된 섬들을 따라 이뤄졌다. 2박 3일간 흑산도를 거쳐 홍도와 위도, 선유도 등을 다녀온 뒤 목포로 돌아왔다.

이 기간 서남해는 안개가 자욱해 전방 30m 앞조차 보이지 않은 때가 잦았다. 파고 0.5~1m 수준의 ‘장판 바다’가 깔렸다지만, 외해로 나아갈수록 배는 좌우로 끊임없이 흔들거렸다. 배 밑이 편평한 평저선이라 이런 움직임을 보인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서도 사단항로를 직접 체험하고자 배에 오른 이들은 하루 13시간 이상 갑판 위에서 바닷바람을 맞으며 섬의 위치와 생김새 등을 꼼꼼히 살폈다. 물론 탐구는 잠시 미뤄둔 채 비취색 바다 위를 수놓은 수많은 섬들을 보며 탄성을 내지르는 일도 적잖았다.

항해의 1차 목표는 서긍이 기록한 섬의 이름과 오늘날의 지명을 짝 맞추는 것이다. 그가 고려도경을 쓴 건 지금으로부터 899년 전인 1123년이다. 6척의 배와 함께 서남해 항해에 나섰던 그가 남긴 지명 기록 중 오늘날까지 그 이름이 이어져 내려온 건 흑산(흑산도), 군산도(고군산군도) 정도에 그친다. 본래 고려도경은 그림책이지만, 정강의 변(금나라가 북송을 멸망시킨 사건)을 겪으며 그림 전부가 유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나머지 섬들은 서긍이 활자로 묘사한 생김새와 주변 지형지물에 미뤄 생각해보는 수밖에 없다. 가령 이런 식이다. 서긍은 6월 3일(음력) ‘월서(月嶼)’를 지나며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월서는 둘인데 흑산에서는 심히 멀다. 앞의 것을 대월서라고 하는데 달같이 둘러싸고 있다. 전부터 그 위에 양원사(養源寺)가 있다고 전해진다. 뒤의 것을 소월서라고 한다. 문같이 대치하고 있어 작은 배가 통행할 수 있다.’ 이 묘사를 두고 2008년 일본 학자 모리히라 마사히코는 월서가 지금의 신안군 재원도 인근 대·소허사도를 가리킨다고 봤다. 반면 2016년 공주대 문경호(역사교육과) 교수는 대치마도를 뜻한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1990년대 이후 고려도경 연구가 본격화한 이래 학자들마다 다른 견해를 드러내고 있다. 항해가 이어지면서 지명을 둘러싼 선상 토론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이들이 직접 옛 선박을 타고 사단항로를 탐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장은 “차후에는 중국이나 북한의 학자와 함께 합동 탐방을 추진하는 등 서남해의 해양 자산을 통해 다양한 시도를 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가 처음 기획된 목포의 해양 세계 속 위상도 덩달아 높아진다”고 말했다.

●“언젠간 중국·일본 찍고 북한까지 항해”

시범항해에 동원된 조선통신사선은 무게 149t에 길이 34.5m 높이 9.3m로 최대 72명이 승선할 수 있다. 연구소가 2015년~2018년 3년간 약 21억4000만 원을 들여 만들었다. 이 배가 한일·한중 관계를 개선하는 문화 외교 수단으로 기여할 수 있다며 기획재정부를 설득해 사업 예산을 확보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연구소는 고려시대 청자운반선 등 다수의 전통선을 복원해 보유하고 있다.

연구소는 옛 문헌과 회화에 현대의 조선공학을 동원해 조선통신사선의 옛 모습과 성능을 고증했다. 선박 건조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배 복원을 총괄한 연구소 홍순재 연구사는 “강원 삼천·태백·홍천 등을 직접 다니며 금강송 900그루를 구해 배를 만들었다. 4년이 지난 지금도 나무 갈라진 곳 하나 없이 멀쩡하다”며 자부심을 보였다.

2019년엔 부산을 넘어 대마도 항해까지 성사될 뻔했다. 쓰시마시와 뜻이 맞아 조선통신사선의 섬 탐방이 계획됐다. 그러나 그 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관리 일반포괄허가 대상) 국가에서 제외하고, 이에 대응해 국내에서도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등 무역 분쟁이 일어나면서 계획은 유예됐다.

연구소는 조선통신사선이 한일 관계는 물론 한중, 나아가 남북 관계의 진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연구소 진호신 연구관은 “언젠가는 서긍이 항해를 시작한 심가문(오늘날의 중국 절강성 주산시 보타구)에서 남·서해안 섬들을 탐방하거나, 서긍의 최종 목적지였던 개경(개성)에까지 가볼 수 있을 것”이라며 “정치가 하지 못하는 일을 풀어내는 게 문화의 역할 중 하나다”고 말했다.

연구소와 조선통신사선, 목포의 활약이 부산에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올해 열렸거나 개최가 예정된 부산시 주관 해양 행사는 모두 24개다. 대부분 해양수산업 등 해양 경제를 논하는 행사거나, 부산의 바다를 걸개그림으로 삼은 일반 축제 또는 레저 대회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에서 진행한 행사로 넓혀봐도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부산의 해양 문화 자산을 활용하거나 발굴하려는 시도는 찾아보기 어렵다. 뒤늦게나마 국립해양박물관이 사업비 230억 원을 들여 서울~부산에서 일본까지 옛 통신사의 육로와 바닷길을 체험하면서 학습할 수 있는 해양 탐방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김 관장은 “부산 동구 좌천동 출신으로 대마도와 울릉도의 영토 문제를 담판 지은 안용복 등 부산에도 해양 문화 유산을 기획할 요소가 넘쳐난다. 문제는 의지다. 지역 청년이 바다에서 상상력을 얻을 수 있도록 해양 문화 유산을 발굴·확보해 해양세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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