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한국 나이 네 살 때 아역으로 데뷔한 뒤 배우이자 문화행정가로 활동하며 반세기 넘게 한국 영화와 함께했다.아역 시절 ‘똘똘이의 모험’(1971) 등에 출연하며 동양방송(TBC) 전속 배우로 연기했다. 이후 KBS 청소년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 등으로 하이틴 스타로 성장했다.
고교생 때부터 본격적으로 영화를 찍었다. ‘고래 사냥 2’(1985),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1987) 등에 출연하며 청춘스타 반열에 올랐다.
스물한 살 때인 1987년 임권택 감독의 영화 ‘씨받이’로 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수상한 한국 배우는 고인이 최초였다. 1989년에는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당시 공산권 최고 권위였던 모스크바영화제에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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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씨받이’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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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연이 1987년 9월 ‘씨받이’로 제44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귀국 후 서울 시내의 한 커피숍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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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7월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 참가했던 대표단 귀국 모습. 왼쪽부터 임권택 감독, ‘아제아제바라아제’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강수연, 김동호 영화진흥공사 사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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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도 활발한 작품활동으로 한국 영화 중흥기를 이끌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90), ‘경마장 가는길’(1992), ‘그대 안의 블루’(1993) 등 수많은 흥행작을 탄생시켰다. 이들 영화로 대종상영화제·백상예술대상·청룡영화상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국내외 영화제·영화상 여우주연상 수상만 10회에 달한다.
고인은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처녀들의 저녁식사’(1998) 등 페미니즘 계열로 분류되는 영화에도 여럿 출연했다.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부단장을 맡으면서 미국의 통상 압력에 맞서 한국 영화를 지키는 활동에 앞장섰다.
2001년에는 SBS TV ‘여인천하’로 정난정 역을 맡으며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복귀했다. 이 드라마로 그해 SBS 연기대상을 받았다.
고인은 이후 연기 활동을 줄이는 대신 문화행정가로 변신했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BIFF) 출범 초기부터 심사위원·집행위원 등으로 활동하다가 2015년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2014년 이른바 ‘다이빙벨 사태’ 이후 몇 년간 계속된 갈등과 파행의 책임을 지고 2017년 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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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6년 9월 13일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을 찾은 영화배우 강수연(오른쪽) 김지미 씨. 국제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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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10월 11일 오후 부산 중구 남포동 BIFF광장 특설무대에서 열린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전야제에 참석한 강수연(왼쪽부터) 집행위원장, 김동호 이사장, 김은숙 중구청장, 서병수 부산시장, 백종헌 부산시의회 의장이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감독), 말리의 술래이만 시세(감독), 한국 이두용(감독)의 핸드프린팅 개봉식을 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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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물러난 이후 공식 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강릉국제영화제 개막식 참석이 4년 만의 공개 활동이었다. 지난해 연상호 감독의 신작 ‘정이’(가제)에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단편 ‘주리’(2013) 이후 9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있었다. 장편 극영화 주연은 ‘달빛 길어올리기’(2010)가 마지막이었다. 넷플릭스가 제작한 ‘정이’는 촬영을 끝내고 후반작업을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