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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둔 얘기를 터놓는 '인생현상소' <7> 유지훈의 ‘부자유친’

“늘 바다 지키는 아버지처럼… 저도 기장미역과 살아가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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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업 물려받으라’ 아버지 설득에
- 미역양식업 뛰어든 청년 귀어인
- 식품법인 ‘해조나라’ 3대 대표로

- “고된 일 하면서도 틈틈이 짬 내
- 아들과 함께 여행 다니던 당신
- 저도 두 아이의 아빠가 돼보니
- 그 깊고 진한 사랑 알 것 같아요”

청년 귀어인(歸漁人) 유지훈(31) 씨는 부산 기장군 대변항에서 기장미역을 양식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식품법인 ‘해조나라’의 3번째 대표가 됐다. 경남 거제에서 조선소를 다니던 지훈 씨는 어머니가 암에 걸리자 귀향을 결심했다. 그가 아버지 대원(58) 씨에게 쓴 편지를 ‘인생현상소’에 보내왔다. “아버지. 항상 아들일 것만 같았던 제가 이제 아버지가 됐어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셨네요. 벌써 세월이 이렇게 지났나 싶어요. 요즘 아버지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을 보면 저도 행복합니다. 늘 사랑하고, 고맙습니다.”
다시금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깨달은 지훈 씨.
■세 번째 유 대표

학창 시절 지훈 씨의 ‘꿈’ 목록에는 미역이 없었다. “24살 제대하자마자 친구 따라 거제의 한 조선소에 입사했어요. 선박에 전기 배선을 까는 일을 주로 했습니다. 친구들이랑 자취 생활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아버지 대훈 씨는 아들에게 자주 전화했다. ‘미역 양식업을 물려받으라’는 설득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가 혼자 일하시는 걸 힘들어 했어요. 1년 넘게 거절하다 어쩔 수 없이 돌아왔어요. 엄마가 아프셨거든요.”

암 수술을 받은 어머니의 간호는 지훈 씨 몫이었다. “아버지는 생계를 위해 늘 바다에 가 계셨어요. 동생은 어려서 간호를 맡기기는 어려웠고. 수술이 잘못돼 서울에서 재수술하고 퇴원할 때까지 10개월 동안 엄마랑 같이 지냈죠. 기장에 있으며 자연스레 미역 양식 일도 하게 됐고. 시간이 나면 친구들이랑 물고기를 횟집에 배달하는 ‘물차’도 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호랑이 선생님’이었다. “어릴 때부터 미역 양식을 보고 배웠는데도 실수투성이였어요. 종자를 들고 가다가 바다에 빠트리기도 하고. 미역 종자는 물에 한 번 들어가면 다시 쓸 수가 없어 재주문해야 하거든요. 늦잠을 자다 새벽일을 못 나가 불호령을 듣기도 하고.”

청년 귀어인 유지훈(왼쪽) 씨와 아버지 대원 씨가 함께 미역을 건져 올리고 있다. 유지훈 씨 제공
2016년 지훈 씨는 ‘미역으로 먹고살자’고 마음먹었다. “아내와 결혼 이야기가 나올 무렵 귀어를 결심했습니다. 다시 취직하는 것보다 가업을 이어받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수산업경영인단체에 가입해 낚시 고기잡이도 할 수 있는 연안 복합어업허가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가족이 먹기 위해 삼치와 갈치를 잡았어요. 하지만 잡다 보니 생각보다 잘 잡히더라고요. 그래서 작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잡기 시작했어요. 봄에는 다시마를 키우고 여름에는 삼치를 주로 잡습니다. 가을과 겨울에는 미역 양식하다 시간 나면 갈치를 잡아요. 그러다 보니 어느새 연 소득 8000만 원을 훌쩍 넘었죠. 언젠가는 멸치잡이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기장은 미역뿐 아니라 ‘대멸’이라고 하는 큰 멸치도 유명하거든요.”

기장 미역은 쫄깃한 것이 특징. 조선 시대 임금님 수라상에도 오를 만큼 질이 좋다. 어두운 암갈색에 가까울수록 품질이 좋은 것으로 친다. 기장 앞바다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지점이라 영양 염류가 많고 물살이 세 미역이 잘 자라기에도 충분하다. 엽체가 두껍기로 유명한 기장 다시마도 빼놓을 수 없다. 자연 해풍과 태양열에 전통 방식으로 건조해 윤기가 나는 것이 특징. 이 덕에 기장 미역은 지리적표시품(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과 지리적 표시 단체표장(특허청)이 등록된 상태다.

지난해 지훈 씨는 아버지에게 인정받아 ‘해조나라’의 대표가 됐다. “무게감이 다른 것 같아요. 아버지가 대표일 때는 알아서 다 하시니 책임감이 없었는데…. 부산시나 기장군의 어업인 지원사업에 선정될 때는 보람도 느꼈어요. 제가 많이 뛰어다녀서 얻은 성과니까요.”

요즘 지훈 씨를 괴롭히는 것은 기후변화. “바다 수온이 많이 높아지면서 기장미역 특유의 쫀득함과 탱글탱글함이 점차 줄어드는 느낌입니다. 새로운 종자를 개발하거나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던 고향 특산물은 지켜야 하니까요.” 기장군도 기장형 미역 종자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지훈 씨는 자신과 같은 ‘청년 귀어인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고 했다. “저도 처음에는 겁이 많았어요. 아무래도 바닷일이 힘들다 보니 도전하기가 쉽지 않죠. 하지만 청년들은 아직 젊잖아요. 그래서 서슴없이 도전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지금 아니면 언제 도전해 보겠어요.”

■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요즘 지훈 씨는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지훈 씨는 일할 때 실컷 하고 쉴 때 마음껏 쉴 수 있어서 큰 불만은 없다. “겨울에는 오전 6시에 일어나 미역 다시마를 건져 올려서 말리는 작업을 해요. 오후 4시쯤 마치면 어두워질 때까지 몇 시간 쉬다가 갈치잡이를 나갑니다. 근무시간은 제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니 괜찮아요.”

재작년 아빠가 된 지훈 씨는 ‘나’를 위한 시간보다 두 아이와 지내는 시간이 더 즐겁다. 아버지에게 ‘아버지가 되는 법’을 배웠던 게 큰 도움이 된다.

“아버지는 늘 제게 무뚝뚝했어요. 경상도 남자잖아요. 그래도 아버지는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데리고 어디든 갔어요. 둘이 여기저기 여행할 때도 대화는 없었지만 무언가 마음이 전달되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부자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가 아니었으면 아버지랑 담쌓고 살았을 텐데. 그래서 저도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해요. 시간이 날 때면 아이들을 어디든 데려가 놀러 다니죠.”

지훈 씨는 올해 두 아이의 할아버지가 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힘들 때마다 아버지의 대단함을 느껴요. ‘아버지는 이렇게 고된 일을 하시면서도 우리들을 잘 키웠지? 어떻게 잠시 짬이 날 때마다 나랑 여행을 다니셨지?’하고. 제 아이를 키우면서 그런 생각이 더 자주 드는 것 같아요. 아버지는 존재 자체로도 힘이 되는 분입니다. 늘 옆에 계시면서 나를 지켜주시는 수호자. 말로 표현하기는 부끄러워 편지로라도 제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아버지, 늘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함께 제작된 동영상 인터뷰는 유튜브 ‘국제신문’ 채널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작지원 : 기장군

글 = 정채영 PD, 사진 = 박희진 동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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