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원폭피해자협회 심진태 합천지부장이 수집한 ‘피폭자 증언서’에는 당시의 끔찍하고 아찔한 상황이 적나라하게 묘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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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가 2019년부터 수집해온 국내 원폭피해자 1세의 증언서 |
◎남성 A 씨 = (원폭) 투하지점에서 800~900m 지점의 방공호와 터널로 피신했다. 피폭 당시 터널이 무너지고 몸이 튕겨 날아갔다. 부친의 시신을 찾아 울부짖었다. 부친 시신의 뼈를 고향에 묻기 위해 귀국했다.
◎남성 B 씨= 아침에 학교가는 도중에 ‘쾅’하면서 벼락 치는 소리에 놀라서 주저 앉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사람들이 울로(위쪽으로) 도망가 따라 올라갔다. 가보니 방공호였다. 어머니와 방공호에서 만났다. 그곳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신원불상 C 씨 = 집이 무너져 어머니와 언니가 다쳤다. 동생은 죽고 나도 상처를 많이 입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에서 가족 모두가 응급치료를 받았다. 피난 도중에 주먹밥을 먹고 살았다. 집에 와보니 모든 것이 잿더미로 변한 상태였다. 도단(양철) 조각을 주워 오두막집을 만들어 살았다.
◎여성 D 씨 = 방에서 놀다가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에 놀라서 나갔다가 화상을 입었다. 아버지 어머니가 놀라서 돌아왔다. 천지가 불이었다. 집은 다 부서지고 살 길이 없어서 나무공장 주변에서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다.
◎여성 E 씨= 원자폭탄이 터졌을 때 아버지는 일하러 가시고 어머니는 머리를 감고 계셨다. 언니 둘은 학교에 갔다. 나는 오빠와 집에 있었다. 어머니는 피투성이가 된 오빠와 나를 데리고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 무너진 집 더미 속에서 동생을 겨우 끄집어 내어 안고 학교로 피신했다. 일본에서 전 재산을 잃었다.
◎여성 F 씨= 어떤 물체가 우리 집을 덮쳐 아버지가 다쳤다. 히로시마는 불 타고 있었다. ‘한국 사람이 있으면 죽인다’는 소문에 급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정리=김민훈 기자 minhun@kookje.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