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손회 회원들 ‘유전성’ 인식
- 암 등 각종 질환에 취약 통계
- 현행법상 피해자 지원서 소외
- 정부 뒤늦게 과학적 조사 진행
- “유전자 돌연변이 여부 포함
- 2024년까지 후대 영향 연구”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카사키를 초토화시킨 원자폭탄 투하에 따른 피해는 진행형이다. 피폭 1세가 일본 정부로부터 의료비를 보조 받는 반면 피폭 2·3세대는 잊힌 존재다. 2017년 시행된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서도 피폭 2세는 ‘피해자’에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피폭 2세 상당수는 자신이 앓고 있는 질병이 피폭 1세(부모)로부터 물려 받았다고 인식한다. 한국원폭피해자협회 부산지부 후손회 회원들의 신상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와 동생이 아버지(피폭자)의 영향으로 갑상선암 수술을 받았다. 다른 친척 중에서는 갑상선암에 걸린 사람이 없다(40대 여성)” “뇌경색을 앓았던 부친(피폭 자)의 영향을 받아 뇌경색에 걸린 것으로 추정된다(60대 남성)” “아버지에게서 유전된 것으로 추정되는 피부질환을 앓고 있다. 다른 형제 남매들도 비슷한 증상으로 고생한다(50대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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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히로시마 원폭돔 전경. 국제신문DB |
■ 아파도 이유를 모른다
부모가 일본에서 피폭당한 한정순(여·62) 씨도 “피폭의 영향은 어떤 식으로든 대물림 된다”고 주장한다. 한 씨는 9남매 중 8번째 딸로 태어났다. 형제는 피폭 1세(첫째·둘째)-태내 피폭(셋째)-피폭 2세(넷째~ 아홉째)로 구성돼 있다. 1945년 8월 6일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히로시마에 떨어졌을 때 첫째 언니와 둘째 오빠가 피폭됐다. 그때 엄마 뱃속에 있던 ‘태내 피폭자’ 셋째 오빠는 두 돌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한 씨 가족이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귀국하자 시름시름 앓던 첫째 언니도 사망했다. 첫째 언니와 셋째 오빠의 사망 원인은 아직도 모른다. 피폭으로 인한 영향이라고 짐작만 할뿐. 둘째 오빠는 2009년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국내에서 태어난 넷째 언니와 다섯째 언니는 둘째 오빠와 같은 뇌경색을 앓고 있다. 여섯째 언니는 자신과 같은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을 앓는다. 일곱째 오빠는 심근경색에 걸렸다. 온 몸 수십 곳에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막내동생은 30대 들어 치아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잇몸이 약해 이가 무너져 내렸다. 막내 동생을 진찰한 의사는 ‘구체적인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다. 한 씨는 “유전이 아니라면 9남매 중 3명이 일찍 숨지고 나머지는 질병에 시달리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하나”고 반문했다.
녹색병원 박찬호 사무처장은 “피폭 2세가 만성질환을 앓아도 그 원인이 피폭에 의한 것인지 다른 이유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현대 의학에서도 원인을 특정할 수 없는 질병이 많기 때문에 ‘생리학적 유전 영향’이 있다고 추정된다 하더라도 쉽사리 ‘유전’됐다고 말하기 어렵다”면서도 “의학계는 피폭의 유전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인 반면 국제방사선방어위원회(ICRP)를 위시한 물리학계에서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유전체 검사는 이제야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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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원폭피해2세환우회 한정순 전 회장이 반핵평화운동가 김형률 씨를 기리기 위해 설치한 비석을 안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수아 박채은 인턴기자 |
피폭 2세가 일반인보다 질병에 취약하다는 연구 결과도 상당수다. 경남도가 2013년 피폭 2세 244명의 건강상태를 조사했더니 13.9%가 선천성 기형이나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었다. 장애인 등록률은 9.1%로 전국 성인 평균(5.0%)보다 배 가량 높았다. 김창훈(예방의학과) 부산공공의료지원단장은 “원폭피해의 유전성 여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하지만 원폭피해자의 생식세포에 독성이 포함되어 있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며 “역시 유전성이 없다고 확언하기도 쉽지 않다.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앞서 국가인권위가 2005년 피폭 2세대 4080명을 설문 조사했더니 7.3%가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이중 52%(156명)는 열 살이 되기 전에 숨졌다. 사망 이유로는 ‘원인 미상’이 60.9%(182명)로 가장 많았다.
보건복지부도 2018년과 2019년 피폭 1·2세를 대상으로 건강실태조사를 했다. 2018년에는 ‘피폭 영향이 유전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피폭 2세가 결혼·출산을 포기한 경우가 있어 정부 차원의 역학조사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시 피폭 2세의 86.5%가 정부의 의료비 지원을 촉구했다. 건강검진(37.5%)·건강상담(33.7%)·암검진 서비스(32.7%)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복지부가 2019년 건강보험료 청구자료를 분석한 조사에서는 피폭 2세들이 일부 암·만성질환과 희귀 중증 질환 유병률이 일반인보다 유의미하게 높다는 결과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복지부는 지난해 한양대병원에 피폭 후손(2·3세)의 유전체 검사를 의뢰했다. 한양대병원 측은 2024년까지 피폭 2·3세를 대상으로 ▷가족관계 ▷유전체 조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원폭 피폭 1세대에게는 나타나지 않은 돌연변이가 2·3세에서 나타나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한다는 계획이다. 기존 실태조사가 피폭 2·3세의 건강 상태를 조사하는 데 무게를 뒀다면, 이번에는 실제 후손에게 피폭 영향이 옮겨가는지 여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번 연구를 진행하는 한양대의대 박보영 교수는 “기존에 일본 연구에서는 원폭피해의 유전성이 없다고 나왔다. 이는 실제 유전자가 전달되는지를 확인한 게 아니라, 질병이 유전이 되는지를 본 것”이라며 “이번 연구에서는 원폭피해로 인해서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겼는지 여부와 그 유전이 실제로 후대에 전해지는 지 확인한다. 선행 연구보다 뚜렷한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준용 기자 김수아 박채은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