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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의 페미니즘을 읽다<7>‘능력’에 따라 ‘차별’하면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능력주의와 절차적 공정성을 넘어서

페미니즘은 정의에 관한 이론이자 실천

  • 류제성 부산시 감사위원장
  •  |   입력 : 2021-07-24 14: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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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주의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지만 사회·경제·계층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신체능력차별주의, 연령차별주의, 자민족중심주의, 이성애주의 등 인간에 대한 모든 차별과 억압을 극복하려 하고 차별과 배타가 없는 평등하고 평화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인간해방철학”



[북 위드 유 페미니즘을 읽다]가 인용하고 있는 페미니즘에 대한 김민예숙 여성주의상담가의 정의입니다.



3회 방송에서 다룬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액트’와 미키 캔들의 ‘모든 여성은 같은 투쟁을 하지 않는다’를 통해 젠더 권력 구조가 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시민권 상의 지위, 학력, 나이 등 다른 항목들에 기반을 둔 여러 권력 구조에 의해서 복잡하게 강화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런 교차적 권력 구조를 공적으로 규명해야 한다는 점과, 페미니즘은 백인 중산층 여성만의 좁은 관심사로 한정되지 않고, 총기, 경찰 폭력, 주거, 정치 참여 등 성별뿐만 아니라 인종, 나이, 계급, 지역 등에 따라 차별화된 삶의 조건의 불공정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5회 방송에서 다룬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를 통해서는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이 성별이분법, 이성애 중심주의와 가부장제를 전복해 평등하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같은 지향을 가지고 만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즉 페미니즘은 궁극적으로 정의와 공정에 관한 이론이자 실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내로남불과 진영논리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과연 사람들이 합의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정의의 원칙들이 있을까요? ‘한국 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 우리 헌법에 담긴 정의와 공정의 문법’의 저자 김도균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의에 관한 심원한 의결 불일치에도 불구하고, 심층적 차원에서 공유하는 근본적인 정의 관념과 원칙들이 있다는 입장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정의란 무엇인가’ 책 표지


그런 공통된 기반 위에서 정의의 문제에 관한 토론, 논쟁의 길잡이가 될 일종의 정의와 공정의 문법을 찾고 이를 토대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정의를 향한 오랜 여망과 관념과 지향이 곳곳에 스며들어 있는 우리 헌법의 여러 규정들을 종합적, 체계적으로 해석해 헌법과 법질서를 최선의 작품으로 만들어주는 정의관과 정의 원리들 발굴, 재구성합니다. 그럼으로써 결론으로 ‘모두가 행복해지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 우리 헌법이 담고 있는 사회정의의 처방전을 제시합니다.



무엇이 행복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저자는 공정한 공존의 규칙 한도 내에서 각자가 수립한 합리적인 인생 계획의 실현(자아실현)을 행복이라고 보는 존 롤즈의 합리적 인생 계획의 관점에서의 행복론이 가장 타당하다고 봅니다. 합리적 숙고를 거쳐 타인의 행복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자율적으로 결정해 삶의 서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향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조건 아래에서 수립된 합리적 인생 계획이 꽤 성공적으로 실현되어 중요한 인생 목적이 성취되는 과정에 있을 때, 그리고 자신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충분히 믿을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리고 사회정의의 목표는 사회에서 각자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제공하는 데 있고 우리 헌법 전문은 네 가지 사회정의 원리들을 담고 있다고 도출해 냅니다. ⅰ) 기본적 자유와 기본권의 평등 보장 원칙, ⅱ) 사회적 관계의 평등 원칙, ⅲ) 사회적 존엄과 사회국가적 정의 원리, ⅳ)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이 그것입니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시민이 기본적 자유들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고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



첫째, 기본적 자유와 기본권의 평등 보장 원칙. 헌법 전문은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란 모든 시민이 인간 존엄성의 실현과 보장에 필수적인 근본적이고 중요한 기본적 자유들을 가능한 한 광범위하고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를 의미합니다. 자율이란 자기 스스로가 결정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고 조화란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공존할 수 있는 조건과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서 삶의 서사를 써나가고 고유한 색깔로 채워나가기를 소망하기에 ‘선택의 자유’는 정의 원칙의 하나가 됩니다.



선택의 자유가 실질적으로 보장되기 위해서는 국가나 사회, 타인의 부당한 강제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어야 하고, 선택할 수 있는 정신적· 신체적·정서적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 있어야 하며, 실행가능한 선택지들이 주어져야 합니다. 즉 ‘충분히 좋은 조건’에서, 즉 공정한 선택 배경에서 행사될 때 가치와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선택의 자유가 중요한 정의 원칙으로 작동하려면 “독점 방지와 공정한 거래의 유지”, “공정한 경쟁질서”와 같은 공정한 조건이 갖추어져야 하고, 선택의 자유는 최고의 정의 원칙은 아니어서 “사회적 약자 보호, 실질적 평등, 경제 정의”와 같은 여타 분배 원칙들과 충돌할 때 물러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시민이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서 존중받고 대우받는 사회



둘째, 사회적 관계의 평등 원칙. 이는 정의가 추구하는 궁극적 이상으로서, 관계의 평등은 ‘동등한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서, 그리고 시민으로서 평등하게 존중하고 대우하라’는 심층적 차원의 근원적인 평등의 이상을 뜻하며, 사회적 평등은 균분을 넘어서 사회적 관계의 평등 실현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이 두 평등의 상위 가치는 사회관계에서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도 합니다.



사회적 평등의 이상으로서 평등 원칙은 ‘몫 없는 사람들’의 ‘들리지 않던 말’, ‘의미 없는 소음’을 사회정치적 의미를 갖는 목소리로 바꿀 것을 요구합니다. “수많은 ‘부스러기들’이 외침이 유의미한 시민의 ‘목소리’로 제대로 고려되고 관심을 받고, 존중받는 사회”가 바로 정의로운 사회이고 이런 사회야말로 인류의 염원인 평등의 이상으로서의 사회적 평등 이상이 지향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인종, 성별, 출신, 소득, 지위 등의 차이와 무관하게 동등한 인간 존엄성을 가진다는 사회적 평등의 이상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훼손하는 것이 바로 부의 불평등입니다. 부의 불평등은 일부 집단이 타인의 삶을 지배·통제하는 부당한 권력 행사를 가능하게 하고(갑과 을의 사회), 절차적 공정성 원칙과 기회균등 원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정치적 차원의 불공정성을 증대시켜 법과 정책의 정당성 훼손, 체제 정당성 신뢰 침해, 사회적 갈등 격화를 초래하며,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게도 잔인성 증대, 공감 결핍 등 도덕적 능력의 손상과 인지능력의 왜곡이라는 심각한 해악을 미칩니다.



많은 통계가 우리 사회의 부가 소수에게 편중되고 있고, 자산, 특히 부동산 불평등이 심각하며 그 격차가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별간,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도 커지고 있고 코로나19로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더 심화되고 있으며, 부모의 부와 지위는 그대로 자녀 세대에게로 세습되고 있습니다. 공정한 조건에서 선택의 자유를 정당하게 행사한 결과로 발생했거나 불평등 분배가 없었을 상황과 비교해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면 그 불평등은 정당하다는 것이 정당한 불평등의 일반원칙이지만, 우리 사회는 그 원칙이 전혀 통하지 않는 불공정한 사회입니다. 이러한 불공정을 말하지 않으면서 더 ‘노오력’ 하라고, 경쟁을 통과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외치는 공정은 기득권을 더욱 공고히 하는 기만일 뿐 정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줄 의무가 있는 국가



셋째, 사회적 존엄과 사회국가적 정의 원리.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고 존중하라는 칸트의 인간 존엄 사상은 인간의 삶 전체, 나아가 삶의 사회적 조건으로까지 확대되어 “스스로를 존중하고 동료 시민들의 존중을 받는다는 의미에서의 ‘사회적 존엄’”이 인간 존엄의 원리에 도입될 것을 요구하고, 이는 사회적 존엄을 위한 ‘사회국가적 정의 원리’로 연결됩니다. 우리 헌재도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국가는 국민 각자가 실제로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 조건을 마련해줄 의무가 있는 국가라고 일관되게 판시하고 있습니다.



사회국가적 정의 원리는 사회정의의 최우선 원칙인 ‘필요 원칙’이 그 바탕이 됩니다. 필요 원칙은 ‘인간의 존엄에 따른 필요를 보장하는 사회’를 지향합니다. 필요 원칙이 요구하는 기본적 필요의 범주는 생물학적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 기초의료, 위생 시설 등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시대와 사회마다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공유하는 나름의 사회적 기준이 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이 기준에 비추어 삶이 최소한의 선 아래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충족되어야 할 것들을 기본적 필요의 범주에 포함시킵니다. 이와 함께 선택의 자유가 실질적 자유가 되기 위해 개인적 역량을 증진하고,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법제와 사회정책의 목표여야 한다는 ‘역량 증진 원칙’이 결합하여 사회국가적 정의 원리로 발전되는 것입니다.



능력주의와 절차적 공정성을 넘어서는 실질적 기회균등



마지막으로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 현재 공정담론의 핵심은 ‘개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공정한 경쟁을 거쳐 결과에 따라 차등 대우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협소한 능력주의meritocracy와 절차적 공정성 원리의 결합입니다. 능력주의는 정의 원칙 중 하나인 ‘응분 원칙’에 대응합니다. 개인의 자발적 선택에 따른 성실한 노력과 탁월한 성취를 칭송하고 존중하는 것은 시대나 사회를 불문하고 인간의 자연스러운 도덕적 감정과 반응이며, 응분 관념은 노력과 기여와 무관한 신분, 혈통, 출신배경, 성, 인종 등의 요인에 따라 특권과 특혜를 부여하는 체제에 저항하고 전복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개인의 재능과 노력하는 성품은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획득한 것이 아니라 가정환경과 사회제도가 인도한 덕분이고, 개인적 재능의 경제적 가치는 유사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 재능을 사회가 얼마나 필요로 하고 선호하는지에 좌우되므로 탁월한 재능과 그 발휘에 대한 응분의 몫은 재능이라는 응분 자격 근거가 아니라 재능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평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이런 점에서 응분 원칙은 공정한 사회제도와 분배구조를 배경으로 하여 작동하는 원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기장을 평평하게 만들기’라는 공정성의 이상을 근본으로 삼는 기회균등의 원리는 경쟁 ‘규칙’과 경쟁 ‘절차’의 공정성이라는 ‘절차적 공정성’뿐만 아니라 경쟁의 출발선에 이르는 과정 전체의 공정성, 즉 ‘사회적 배경의 불공정을 제거한 기회평등’으로서 ‘배경의 공정성’과 승자 독식 방지와 패자부활전을 보장하는 ‘결과 독식 방지의 공정성’(몫의 공정성)으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나 차별없이 경쟁에 진입할 평등할 권리가 보장되고 가정환경이나 사회경제적 지위가 아니라 오직 천부적 재능과 성취동기와 근면한 노력에 따라 성공 가능성이 달라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특정한 재능과 근성만을 우월하고 귀중한 것으로 평가하고 이에 기초해서 중요한 사회적 가치들을 배분함으로써 불평등한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 내어서는 안되고 재능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쟁 시작 후에는 절차적 공정성과 능력주의가 작동해야 하고, 출발선 이전 단계에서는 발달기회가 모든 개인에게 공정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인생의 중요 고비마다 병목을 설치해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고 그 병목의 통과여부로, 나아가 병목을 통과할 때의 성적으로 사람들을 줄 세워서 인생의 전망을 결정짓는 사회”인 ‘병목사회bottleneck society’ 는 기회균등의 원리를 심각하게 훼손합니다. 높이 평가되는 직업, 직위, 사회적 역할, 재화의 획득으로 가는 경로를 다양하게 만들고 사회 전반의 기회 구조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병목들을 넓히거나 없애지 않은 채, 협소한 능력주의 원칙과 절차적 공정성 관점에서만 기회균등의 원리를 파악하는 견해를 반성 없이 적용하면 병목사회는 결국 신-신분사회로 귀결됩니다.



저자는 이처럼 우리 헌법의 근저에 있는 다양한 정의 원칙들을 발굴하는 작업을 통해 밝혀낸 우리 헌법과 사회가 지향하는 정의관과 정의 원칙들을, 현재 우리들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세대 간 정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인류공영이라는 전 지구적 정의의 관점에서 적절하게 발전시키고 변경하면서 일구어가야 할 것이라고 마무리합니다.



어떠신지요? 공정과 정의가 다소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그래서 오히려 안도하게 되지는 않는지요? 저는 그랬습니다. 엘리트들이 말하는 공정이라는 것이 허구이자 기만임을 밝혀 줄 명쾌한 이론적, 헌법적 무기를 가지게 되었고 보다 나은 논쟁을 위한 기반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협소한 능력주의와 결합한 절차적 공정성이 정의의 전부인 양 이야기하는 공정론을 넘어서야 합니다. 정의론은 그 길을 밝히는 촛불이자 칼이 될 것입니다. 류제성 부산시 감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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