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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공작소-기장옛길 스토리 여행 <상> ‘식객’ 심노숭의 길

1100리길 유배 온 ‘조선 식객’, 기장 특산품·옛길·사람 기록하다

  •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  |   입력 : 2021-06-21 19:42:44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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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기록벽으로 유명한
- 조선 후기 대표적 문인 효전
- 5년 넘게 기장서 유배 생활
- 일상 담은 ‘남천일록’ 남겨

- 이방인의 눈으로 먹거리 탐닉
- 싸게 산 미역 되팔아 돈 벌고
- 오만동 전복 청어 등 책에 담아

- 한양서 내려오는 길에는
- 일광천 거쳐 기장읍성 동문으로
- 유배 끝나 올라가는 길에는
- 고속도로격인 ‘영남대로’ 이용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먹는 일을 몹시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을 ‘식객(食客)’ 또는 ‘맛객’으로 부른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문인 효전(孝田) 심노숭(沈魯崇·1762∼1837)은 식객으로 통한다. 식객이란 ‘예전에, 세력 있는 대갓집에 얹혀 있으면서 문객 노릇을 하던 이’를 일컬었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확장됐다. 심노승은 자기 묘사에 솔직하고, 작은 사실도 놓치지 않고 글로 남기는 ‘기록벽(記錄癖)’이 있었다. 그는 ‘조선판 미슐랭 가이드’로 불리는, 방대한 분량의 시문집 ‘효전산고(孝田散稿)’를 썼다. 또 부산 기장에서의 유배 기간 그곳의 일상을 깨알 같이 담은 유배 일기 ‘남천일록(南遷日錄)’도 남겼다. 모두 독특한 그의 기록벽 덕분이다. 특히 유배 일기 ‘남천일록’에는 기장옛길의 자취도 확인된다. 그 시종점은 기장읍성이다.
   
기장읍성의 서벽. 동래와 양산, 좌수영 등지로 향하던 기장옛길은 모두 기장읍성으로 통했다. 기장군 제공
■ 미역 팔아 ‘슬기로운 유배 생활’

심노숭은 1801년 2월 당시 기장현으로 유배 왔다. 순조실록(순조 1년 2월 26일 조)에는 ‘전 참봉 심노숭을 기장현에 찬배(죄인을 지방이나 섬으로 보내 일정한 기간 정해진 지역 내에서만 감시를 받으며 생활하게 하는 형벌)하고…’가 보인다. 그는 1965일(5년 5개월)에 이르는 기장의 유배 기간 거의 매일 일기를 썼다. 서울에서 온 이방인의 눈으로 기장 사람과 특산물 등의 얘기를 자세하게 담았다. 그중 미더덕과 비슷한 ‘오만동(五萬同)’을 다룬 게 눈에 띈다. 기장 주민과 주고받은 얘기다.

‘내가 일찍이 들으니 속칭 ‘오만동(五萬同)’이라는 것이 살찐 배꼽처럼 생겼는데 양기에 좋은 약이라고 한다. 동래와 기장에서 많이 생산된다. / 침수군(沈水軍)에게 물어보니 “이것이 이 지방에서 나는 산물이지만 쉽게 얻을 수는 없습니다. 또 조개 속에 머금고 있는 것이 아니면 약이 되지 않는데 이것은 더욱 얻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있으면 널리 구하여 드리겠습니다”고 하였다. / 유배지의 주인 여자가 오만동 이야기를 듣고 손뼉을 치면서 깔깔대고 웃으며 말했다. / “서울에서 온 양반들은 어느 한 사람도 이것을 찾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인가요? 우리 포구 사람들은 비록 이것을 얻더라도 오히려 먹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들딸 잘 낳고 사는데, 서울 사람들은 반드시 이것을 먹어야 아들딸을 낳습니까?” (중략)’(정경주 외, ‘옛길 따라 만난 부산’, 부산연구원 부산학연구센터, 2020.12, 60쪽).

과연 심노숭은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다. 기장미역을 싸게 사서 이를 되팔아 이득을 남긴 뒤 파주의 본가로 돈을 보내는 등 ‘슬기로운 유배 생활’도 했다. 또 그는 기장 바다에서 나오는 전복 백합조개 비목어 등이 매우 흔하고 도미 청어 조기 등도 가끔 잡힌다고 적었다. 청어에 대해서는 자신의 고향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 입맛에 딱 맞아 어머니의 밥상에 올리고 싶다고 했다.

■ ‘남천일록’에 나타난 기장옛길

   
용소골 옛길 인근의 여근석. 이 바위에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낳고, 자식이 잘 된다는 전설이 있다. 기장군 제공
심노숭이 유배지 기장으로 가던 길과 유배에서 벗어나 서울로 돌아가던 길은 달랐다. ‘남천일록’에 유배 노정이 나온다. 본가가 있는 파주에서 출발해 서빙고 용인 충주 풍기 영주 안동 의성 영천 경주 울산과 남창(울주군 온양읍 남창리)을 거쳐 기장으로 향했다. 1100리에 달하는 먼 길이었다. 이 중 기장옛길 구간은 동해안을 따라 울산 경계인 화철령을 거쳐 장안천 좌광천 일광천을 건넌 다음 기장읍성 동문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기장읍성 동문이 있는 기장읍 동부리에는 신라 태종무열왕이 동래에 온천 목욕을 하러 갈 당시 가마 행렬이 멈추고 쉬었던 태정대가 있었다고 한다. 기장∼울산 옛길에는 기장 읍내장, 좌촌장, 울주 남창장이 있었으므로 해안 포구를 잇는 물류의 길로 상당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심노숭은 1806년 유배에서 풀려났다. 서울로 돌아가던 길은 올 때와는 달랐다. 기장에서 동래읍성으로 넘어간 뒤 양산 밀양 청도 선산 상주를 거쳐 문경새재를 넘는, 당시 ‘도보 고속도로’이던 영남대로를 택했다. 기장에서 동래읍성으로 향하는 옛길은 기장읍성 남문에서 용소골(용소웰빙공원), 신명역(도시철도 4호선 안평역 자리)을 지나가는 코스다. 이 가운데 용소옛길 약 200m 구간에는 잔도(험한 벼랑 같은 곳에 다리를 놓듯 낸 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명역이 있었던 안평마을은 도시철도 안평역이 자리 잡고 있어 역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안평마을 옆 고촌리에서는 1400여 년 전의 수레바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도로 유구가 조사되기도 했다. 삼국시대부터 기장과 동래를 오고 가는 길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 여근석에 현감 이름 새긴 까닭

유배에서 풀려나 서울로 향하던 심노숭의 발걸음은 가벼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는 동래읍성으로 가는 길에 지금의 용소웰빙공원 부근에서 기장 관리들의 배웅을 받았다. 기장읍성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다. 여기에서 부산울산고속도로 아랫길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기장옛길’ 표지석과 원두막이 서 있다. 표지석은 1996년 기장군수가 세웠다. 표지석 바로 위쪽 계곡을 따라 오르는 용소옛길에서 잔도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지방관들의 공덕을 기리는 바위도 여럿 있다. 1897년(고종 34) 6월부터 1900년(고종 37)까지 기장군수를 지낸 이해륜(李海崙), 1904년(고종 41) 무렵 기장군수였던 엄신영(嚴信永), 1895년(고종 32) 이후 기장군수로 재직한 것으로 보이는 손영희(孫永禧), 개항기에 기장현감을 지낸 손경현(孫庚鉉) 등의 이름이 보인다. 엄신영과 손경현은 해동용궁사 쪽 시랑대 바로 앞 학사암에도 이름을 남겼다.

기장현감 손경현의 이름이 새겨진 용소옛길의 바위는 특이하다. 이른바 여근석(女根石)이다. 이 바위에는 ‘현감 손경현 영세불망(縣監孫庚鉉永世不忘)’이 새겨져 있다.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손경현 현감’을 여근석에 새긴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찌 되었건,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아들이 없는 여인들이 여근석에 치성을 드리면 바라는 대로 자식을 낳고, 그 자식이 잘 된다는 얘기가 있다. 개울 건너에 있는 여근석 안으로 돌을 던져서 들어가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전한다. 여근석에서 계속 계곡 쪽으로 올라가면 시내버스가 다니는 반송로에 닿기 전 독립운동가 이명순(1872∼1920)을 기리는 ‘이명순 공적추모비’가 서있다. 옛날 동래와 양산으로 각각 향하던 갈림길이다. 쌍교 또는 쌍다리재로 불린다.
   
1750년대 초 고지도인 ‘해동지도’상에 표시한 기장옛길. 출처 ‘기장옛길 학술연구 용역 결과 보고서’(기장군·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2009)

오광수 기자 inmin@kookje.co.kr

공동기획 : 기장군·국제신문·(사)부산스토리텔링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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