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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로컬크리에이터를 찾아서 <10> 동구 영초산방·공공플랜

산복도로 걷고 즐기고…재미있는 부산을 설계하는 청년들

  •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  |   입력 : 2021-05-25 19:50:09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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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초산방

- 산복도로 주제로 한 콘텐츠 기획
- 트래킹·독서모임·멘토 인터뷰 등
- 청년들과 행복한 부산 생활 고민

# 공공플랜

- 도시재생 전문 예비사회적기업
- 골목길 밝히는 글귀 조명 설치
- 주민 참여 상생 프로젝트 진행

해방 이후 ‘부산 사람’은 산복도로에서 탄생했다. 한국전쟁을 피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이 이곳에 판잣집을 짓고 삶터를 이뤘다. 가난이 깃든 산비탈의 땅에서도 삶은 계속됐다. 그 위에서 사람들은 더 나은 날을 일궈왔다.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부산항을 터전으로 삶을 지켜낸 이들이 오늘날 발전된 부산을 만들었다.
   
부산 산복도로의 로컬크리에이터들이 이바구길을 배경으로 사업 팸플릿을 들어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영초산방 전혜인 팀장, 짐캐리 정세현 매니저, 최형욱 동구청장, 공공플랜 이정우 공동대표. 서정빈 기자
여러 사람을 구분 없이 너르게 품었던 산복도로가 이제 지역 소멸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전락했다. 오래돼 낡은 이곳을 떠나 도심으로, 부산 바깥으로 하나둘 떠나갔다. 북항재개발로 우후죽순 들어선 초고층 건물이 부산항 앞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근래의 모습은, 오랫동안 이곳을 지킨 ‘망양로(望洋路·바다를 바라보는 길) 사람들’에게 고민을 안긴다. ‘산복도로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길에 자리한 ‘영초산방’과 ‘공공플랜’은 이 같은 물음에 답하고자 모인 청년 기업들이다. 이들은 산복도로 등을 무대로 ‘재미있는 부산 살이’를 상상하고 실천하려 한다.

■부산에서 재밌게 살기

영초산방은 산복도로를 주제로 한 로컬 콘텐츠를 기획·제작하는 공간이다. 이들의 지상과제는 ‘재미난 동네살이’다. 부산의 바다와 산으로 꾸민 프로그램을 만들어 원주민·타지인 할 것 없이 지역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게 이들의 일이다. 이를 위해 2019년 9월 동구 초량동 영초윗길에 자리 잡은 이후 현재까지 다양한 모임, 교육, 투어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영초산방의 대표 브랜드는 ‘오-올드(O-old) 어반 트레킹’이다. 오-올드는 낯설다는 뜻의 ‘Odd’와 오래됐다는 뜻의 ‘Old’의 합성어다. 부산 산복도로를 설명하는 3가지 핵심 키워드인 ‘낯섦’, ‘오래됨’, ‘여유로움’을 바탕으로 산복도로의 매력을 만끽해보자는 취지다.

참가자들은 약 2시간 동안 초량동~영주동~대청동~보수동~동대신동~부산민주공원·숲길의 산복도로 골목골목을 누빈다. 이후 1시간 정도의 드로잉(그림 그리기) 시간을 갖는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산복도로를 함께 명상하듯 천천히 걸으며, 눈에 담긴 부산의 모습과 마음속에 품어진 인상을 그림으로 남기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해운대나 광안리, 서면 등 부산 도심의 인파 속을 거니는 것과는 다른 ‘잔잔한 부산’으로부터 위안을 얻는다.

지역을 살아가는 청년들과 ‘부산 살이’를 놓고 고민하는 일 또한 영초산방의 주요한 역할이다. 일례로 영초산방은 지난 8일부터 ‘동네 살이 기록하기’라는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부산지역 청년들이 모여 각자의 동네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고민해 서로의 생각을 나눠보는 게 목표다. 참가자들은 총 12번에 걸쳐 독서 모임과 디자인 씽킹 시간, 로컬 크리에이터 멘토 인터뷰 시간을 가진다. 여기서 얻은 경험과 견해를 토대로 ‘내가 계속 부산에 사는 이유가 되는 것’이나 ‘행복한 부산 생활을 위해 필요한 것’ 등의 물음에 답한다. ‘동네 살이 기록하기’는 부산시 2021 청년 프로그램 지원 사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영초산방은 산복도로에서 자신들이 받은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이곳을 활동 무대로 삼았다. 전혜인 팀장은 “대학에서 다큐멘터리를 전공했다. 처음엔 이곳을 주제로 영상을 만들 계획으로 월세를 잡아 살기 시작했는데, 점차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인데도 이곳은 나를 품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내가 산복도로에서 사람을 맞이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부산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공공플랜은 도시재생과 공공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예비사회적기업이다. 부산 동구가 지정한 거점시설 컨트롤 타워 기업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청년 기업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역 주민과 소통해 동네를 더욱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한 디자인을 기획한다. 2019년 5월 출범한 이들은 짧은 시간 동안 ▷시각디자인 ▷공공디자인 ▷기업 연계 사회 공헌 ▷도시재생 ▷행사&영상 기획 ▷메이커 스페이스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공공플랜의 시작은 벽화였다. 지금의 회사를 만들기 전에도 한 차례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던 이들은 경남 통영 동피랑 마을을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벽화 붐이 일었을 당시 전국 각지를 돌며 벽화를 그렸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그저 벽화에서 그칠 게 아니라, 지역의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자인 기획을 해보자는 꿈을 갖게 됐다.

그중 하나가 해운대구 우동과 강서구 평강 상리마을에서 진행한 ‘반딧불 프로젝트’다. 이들 마을에는 셉테드 사업의 일환으로 CCTV와 비상벨, ‘범죄 신고는 112’ 문구의 안내판 등이 다수 설치돼 있었다. 이들은 이 같은 시설들이 오히려 동네를 우범지대처럼 보이게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기존 설비를 모두 없앤 뒤, 지역 주민과 협의해 어두운 길을 밝히는 빛 조명을 설치했다.

산복도로에 정착한 뒤부터는 지역 주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도 여럿 마련했다. 일례로 이들은 2019년 ‘다 가온나 프로젝트’를 벌였다. ‘어머니 밥상 만들기 프로젝트’, ‘숨은 장인·목수 어르신과의 목공프로그램’ 등 주민과 일상에서 함께하는 목공예 물품을 만드는 사업이다. 지역 청년들과 함께 초량 이바구길에 위치한 거점 공간이 처한 문제점을 고민하고 의논해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취지로 시작했다.

지난 4월에는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2021년 청년마을만들기 지원사업에 ‘이바구 마을 만들기’ 사업을 신청해 최종 선정됐다. 만 19~39세 청년을 대상으로 6개월간 함께 살며 사회적경제기업·청년로컬크리에이터·F&B청년사장 등의 수업을 진행한다. 지역에 정착해 고령화 지역인 동구 주민과 상생하며 서로가 공유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컨셉이다. 이정우 공동대표는 “청년을 갓 졸업한 ‘청년 꼰대’가 지역 청년을 육성한다는 콘셉트로 지역에 공헌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활약은 부산형 도시재생 ‘산복도로 르네상스’의 주 무대였던 부산 동구에도 자극을 준다. 최형욱 동구청장은 “시설을 넣는 것 외에 행정관이 지역공동체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는데, 지역 청년들이 이 점에 있어 훌륭한 역할을 해주고 있다”며 “곧 선보일 동구의 도시재생 프로젝트인 ‘이바구 2.0’ 등을 통해 지역에서 로컬 콘텐츠를 고민하는 청년들과 함께 산복도로가 사는 재미가 있는 곳으로 거듭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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