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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경의 부산 사람 인생사 <2> 롤러코스터 인생 조문선 씨 이야기

100억 부도, 3개월 시한부…그래도 희망찬 삶에 브레이크는 없다

  • 김가경 소설가
  •  |   입력 : 2021-05-20 19:20:32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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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어서 조립컴퓨터 사업 큰 성공
- 대기업 횡포에 한순간 나락으로
- 과자 대리점·마트 손댔지만 쓴맛

- 암선고·이혼 등 시련 잇따랐지만
- 퀵 배달하며 활기찬 일상 이어가
- 어릴 때 인연으로 연극일도 도와

- 미군 범죄 수사대 근무했던 부친
- 권력층 부패 캐려다 미운털 박혀
- “타협 않는 성격 아버지 빼닮았죠”

조문선(63·부산 사상구 주례동) 씨를 부산시민회관 옆 가온아트홀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해 8월 말기 암으로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고 투병 중이다. 그사이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지 10년 동안 해온 퀵 배달 일을 계속하고 있다. 양·한방과 기 치료를 겸하며 꾸준히 진행 상황을 보고 있다. 시간이 나면 그림도 그리고 극단 일이 바쁘면 스태프로 일도 돕는다. 일상을 지속하는 그의 표정에 여유가 있었다.
   
극단 부두 대표를 지내는 등 연극 사랑이 각별한 조문선 씨가 소극장 객석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여서 국가에서 혜택을 받는데, 그것도 새삼 감사한 생각이 들어요. 나라 위해 한 일이라고는 군대 다녀온 거밖에 없는데, 남은 인생 다른 사람한테 누는 끼치지 말고 살아야 하는데.” 선량한 눈빛에서 그 선의가 읽혔다.

조문선 씨의 이력은 남다르다. 어렸을 때 한 동극(童劇)이 계기가 돼 지금껏 연극 쪽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있다. 극단 부두의 창단 멤버로 2대 대표를 지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컴퓨터조립업(성문전자컴퓨터)이 전국에 이름을 알려 청소년은 물론 이찬진 안철수 등 컴퓨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대거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명성을 알고 교육청에서 찾아와 직업교육원을 맡아 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다. 그런 제안을 거절한 그의 대답이 궁금했다.

“사명감을 갖고 해줘야지, 내가 장사에 눈이 먼 놈이라서 잘못하면 애들을 이용할 수도 있고…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당시 그가 조립해 만든 컴퓨터가 6만 대가 넘었다. 그런 중에도 여러 극단과 인연을 이어갔는데 그들의 고충을 알기에 음으로 양으로 지원했다.

■20년 전 대기업 횡포에 털리고

   
그가 짬짬이 그린 그림.
“그때 일본 부품을 썼는데 부품 조달에 문제가 생겼어요. 수입선다변화 품목이라 해서 몇 가지를 묶어 수입을 막아 어쩔 수 없이 대기업 부품을 쓸 수밖에 없었지요. S전자 컴퓨터 사업부가 적극 지원을 하겠다고 해서 조립 형태의 대리점을 하게 됐어요. 그때 이중가격으로 시중에 풀어 그게 사단이 돼 결국 번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100억 원대 부도가 났어요. 20여 년 전에.” 그쪽에서는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그는 전 재산을 그들에게 다 강탈당했노라고 단호히 말했다. “그 당시 대기업 횡포 때문에 컴퓨터 조립 시장이 다 망가졌어요.”

그 뒤 과자대리점, 마트 등 수없이 도전했는데 제대로 안 풀렸다. 그 끝을 지켜보던 아내와는 몇 해 전 헤어졌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서인지, 태생적 여유 때문인지 그 고통의 간극을 뛰어넘은 담담함이 이야기 내내 묻어났다. 부드럽고 유하게 보여도 삶에 대한 그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느껴지고도 남았다. 타협하고 피해 가면 넘길 수도 있는 일을 곧이곧대로 부딪치고 겪어온 그의 기질은 선친 조옥제 씨를 닮아 그렇다고 했다.

“광복되던 날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19살 나이에 죽창을 만들어 하동 옥종에 있는 주재소를 습격했어요. 일본 순사들을 무장해제시킨 그 사건은 ‘하동관보’에도 나왔습니다.”

선친은 이후 부산으로 와 그동안 익힌 한학 덕에 경찰서 사환으로 들어갔고 미군 제2 범죄수사대 CID 한국파견대장까지 됐다. 구호물자가 너무 많이 없어지니 수사해달라고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대부분 구호물자가 지금 제5 부두 자리에 쌓여있었는데 덮치고 보니 빼돌린 양이 엄청나더랍니다. 추적해 올라가니까 이승만부터 정·재계 권력 실세들이 다 배후에 있었던 거지요. 그때 부친이 다짐했답니다. 내가 호랑이띤데, 사나이가 이렇게 추접하게는 살지 말자고.”

윗선에서 수사 중단을 요구했는데 뜻을 굽히지 않자 미국 FBI 연수를 제안받았고,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조옥제 씨와 조문선 씨, 부자간의 역사는 거절에 맥이 닿아 있는 것 같았다.

■보도연맹과 선친의 아픔

   
차를 몰고 배달 일에 나서는 조문선 씨 모습.
“결국 수사 종결했는데, 그래도 윗분들한테 미운털이 박혔죠. 어쩔 수 없이 민원이 들어와 국제시장 같은 데 단속을 나갈 때는 대원들에게늘 당신 뒤 100m쯤 떨어져 오라고 했답니다. 아버지 얼굴을 상인들이며 그곳 사람들이 다 아니까 먼저 도망들 가라고. 어찌 거절만 하면서 살아왔겠어요. 아버지도 나도 적어도 나보다 약한 사람한테 하지 않아야 하는 짓은 안 하고 살아왔다고 생각은 하는데. … 그때 집에 미도시계라고, 시분초침만 있는 시계가 있었어요. 아버지가 안 끼고 서랍에 던져 놓더라고요. 제가 고등학교 때 끼라고 주시기에 뭔지도 모르고 한참 차고 다녔어요, 나중에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얼마 전 신세계 백화점에 퀵 배달 갔다가 명품관에서 미도시계 코너를 발견했다. 물어보니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며칠 뒤 다시 갔는데 저를 부르더라고요. 그 시계 갖고 있냐고. 세계에 딱 3개 밖에 없는데 본사에서 어쨌든 구해오라고 한 모양이더라고요. 옛날 일을 생각해 혹시나 물어본 거였는데.” 그거에 대한 아쉬움도 없어 보였다.

부친이 생전에 마음에 걸려 했던 게 하나 있었다고 한다. “아버지가 특수임무를 띠고 위쪽에 파견을 갔다가 6·25가 터졌다고 해요. 기차 타고 내려오는데 한강철교가 끊겨 걸어서 서울을 거치게 된 거죠. 이후 대전까지 걸어와 거기서 기차 타고 부산진역에 내렸는데, 공무원 칸에서 내리니 행색이 민간인 복장이다 보니 잡더랍니다. 신분증을 내놓으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상관한테 전화 한 통화만 해달라고 사정했대요. 그때는 헌병이 이상하다 싶으면 간첩이니 스파이니 하며 바로 쏴 죽였답니다. 겨우 신분 확인이 돼 지프를 타고 부민동으로 갔는데, 거기 이승만 대통령이 있었던 거죠. 그때 상황을 본대로 정확하게 보고해야겠다고 생각해 보고했는데, 그게 6·25 동란 최초 서울 상황 보고였다고 해요. 그리고 보도연맹 사건의 시발이 된 게, 수인복을 입은 죄수들이 탱크 위에서 인공기를 흔드는 모습을 여과 없이 보고 해버린 거예요. ‘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리됐다’고 자책이 많으셨어요. 돌아가실 때까지.”(1949년 조직된 국민보도연맹 관련 내용은 더 연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편집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지녀야 할 책임감이 있는 것 같았다. 조문선 씨는 아버지에게 무용담을 많이 듣고 자랐지만 보도연맹 이야기는 어렵게 들었다고 했다. “10년째 이 일 하면서 여러 층위를 겪어봐도 내가 가장 사람답게 느끼는 이들이 일용직 사람들이에요. 감출 게 없으니까 그냥 다 나와요. 아무 치장 없이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거지요. 아! 사람이 저런 모습을 드러낼 수 있구나, 하는 걸 느끼는 것도 참 좋아요. 처음엔 나는 아니다, 저런 사람 아니다고 생각했는데 같더라고요. 그게 편해요. 어쩌다 동료 기사들이 바깥에서 듣고 와서는 조 기사 옛날에 이랬다메, 하고 물어요. 그게 다 무슨 소용 있겠어요.”

   
사람마다 과정만 다를 뿐 고난을 겪어 넘긴 사람들의 시선이 가 닿는 지점은 거의 같았다. 어느 자리에 섞이든 가장 편안한 모습의 인물을 찾으라면 조문선 씨도 그에 해당될 것이다. “아프고, 수면내시경을 해야 하는데 부를 사람이 없더라고요. 애들 엄마한테 연락하니까 달려왔어요. 와서 눈물도 흘리고.” 이후 아내와 남처럼 친구처럼 왕래한다고 했다. 지금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군지 물었더니 온병원 혈액종양내과, 주례1동 주민자치센터 복지과 종사자분들, 심신수양치료에 열성을 다해주신 고 선생님께 꼭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시민기자·소설가 ksh1055254@hanmail.net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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