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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마을' 혁신을 찾아서 <33> 합천군 덕곡면 율지마을

영남 오광대 발상지…복원하고 축제 열었더니 마을이 살아났다

  •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
  •  |   입력 : 2021-05-16 19:14:48
  •  |   본지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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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때 낙동강 물류거점으로 번성
- ‘밤마리 오광대’ 활동하는 무대돼
- 한국전쟁·산업화로 활기 잃어

- 주민 ‘보존회’ 결성… 복원 노력
- 축제·전국 각지 공연 등 활동
- 행복농촌, 문화·역사마을 결실
- 정부 공모로 체험·전수관 시설도

낙동강 변에 자리한 경남 합천군 덕곡면 율지마을은 오래전 낙동강 물류의 거점이었다. 오일장이 서는 율지장터는 낙동강을 따라 전국에서 모인 상인과 보부상으로 북적였다. 율지나루를 중심으로 번성한 율지마을에는 자연스럽게 광대패가 자리하면서 영남지역 오광대놀이가 탄생하는 무대가 됐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와 산업화에 밀려 율지장 폐쇄가 겹치면서 율지마을은 활기를 잃기 시작했다.
   
영남권 오광대놀이의 시원인 ‘밤마리 오광대’ 공연단이 야외무대에서 공연을 펼치는 모습.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할 것 같았던 율지마을은 2000년 ‘밤마리 오광대 보존회’ 결성으로 마을 부흥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후 20년 넘게 계속된 주민의 한결같은 노력과 열정에 힘입어 2019년 정부의 행복농촌 만들기 콘테스트에서 동상(문화·복지 부문 장관상)을 수상하며 명품마을 반열에 올랐다.

■영남 오광대놀이의 발상지

   
율지마을은 합천지역에서 동쪽 끝단 낙동강과 접한 덕곡면 소재지 마을이다. 밤나무가 많아 ‘밤마리’라고 불렸던 율지마을은 합천은 물론 인근 창녕군 경북 고령군을 연결하는 낙동강 포구 마을이었다. 율지장은 낙동강을 따라 전국의 상인이 몰려들 정도로 북적였던 영남의 대표 오일장이었다. 관이 만든 도박장이 있을 정도로 번성했던 만큼 각설이 광대도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율지마을은 옛날부터 농사보다는 상업이 발달했던 마을이었다. 낙동강 변을 따라 드넓은 농지가 있지만, 낙동강 범람으로 인한 피해가 잦아 농업보다는 상업이 활발했다. 율지나루를 오가는 배들은 주로 부산에서 게젓과 소금 등을 싣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상선이었다. 선주들은 배에 싣고 온 소금과 게젓을 지역 상인에게 판매하고, 그 돈으로 쌀과 보리 등의 곡식을 산 다음 부산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에 포함됐던 율지마을은 가옥의 90%가 폭격으로 부서지면서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전쟁 이후에는 경부고속도로 개통과 산업화에 밀려 낙동강 나루를 이용하는 상선은 사라지고, 율지장마저 폐쇄됐다. 영남 중부내륙 상권의 중심지였던 율지마을은 합천지역에서도 오지마을로 추락했다.

마을의 추락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주민은 예전 번성했던 마을의 상징인 오광대놀이 복원을 통한 역사·문화마을로의 변신을 꾀하고 나섰다. 오광대라 하면 고성이나 통영 가산 동래 오광대 등을 먼저 떠올리지만, 영남 오광대 문화는 율지마을에서 시작됐다. 다른 지역의 오광대가 복원되고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한참 후에야 율지마을 오광대의 복원이 시작된 탓에 어려움이 많다. 하지만 밤마리 오광대 복원에 대한 주민의 열정이 마을 부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화·역사마을로의 변신

   
난타 동아리에서 북춤을 배우는 율지마을 주민.
율지마을 주민이 잊힌 밤마리 오광대를 떠올린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인근 초계고등학교 학생이 합천지역 대표 축제인 ‘대야문화제’에서 오광대 놀이패로 가장행렬을 선보였고, 주민은 율지마을 최고 번성기에 밤마리 오광대가 함께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다.

이후 율지마을 주민은 밤마리 오광대놀이를 복원해 마을의 정체성을 되찾자는 공감대를 형성, 주민 전체가 참여해 복원 활동에 돌입했다. 그러나 관련 기록을 찾기 어려운 데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놀이 대사를 기억하는 이도 드물어 원형을 복원하는 데 한계에 부닥쳤다. 하지만 주민은 다른 지역 오광대를 방문해 옛 기억을 되살려내는 등의 노력 끝에 2000년 ‘합천 밤마리 오광대 보존회’를 결성, 첫 밤마리 오광대 탈춤 축제를 열고 오광대 여섯 마당을 선보였다. 이후 오광대놀이 발상지의 공연팀이라는 후광은 전국 각지에서의 공연 초청으로 이어졌다.

   
‘밤마리 오광대’ 체험전수관이 있는 합천군 덕곡면 밤마리 문화교류센터 전경.
마을의 환경도 바뀌었다. 골목길 따라 난 담장은 밤마리 오광대를 주제로 한 벽화로 단장됐다. 마을 입구와 도로변에는 밤마리 오광대의 발상지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등장했다. 율지마을의 또 다른 명소인 낙동강 제방을 따라 금계국을 심은 둘레길을 조성해 관광객의 발길을 끌고 있다.

이 같은 마을주민의 노력과 변화는 2003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문화·역사마을로 지정되는 결실로 이어졌다. 이어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밤마리권역종합정비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숙원이었던 ‘밤마리 오광대’ 체험·전수관 시설도 갖추게 됐다.

무엇보다 밤마리 오광대의 부활은 그늘졌던 주민에게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다. 100여 명의 마을 주민은 대부분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20년째 공연을 이어가는 밤마리 오광대를 비롯해 부녀회를 중심으로 한 밤마리 난타 동아리, 청장년이 주축인 밤마리 주민밴드, 서예반 등에 참여해 주 1회 이상 활동을 이어간다. 주민 화합을 목표로 시작된 동아리 활동은 지역 사회에서 재능기부라는 공연 활동으로 이어지면서 명실상부한 문화 ·역사마을로의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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