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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경의 부산 사람 인생사 <1> 배처럼 시원하고 달게 과일가게 이재호 사장님

“져줘야지 이겨, 퍼줘야지 남아” 노점상 찾게 하는 이 씨만의 철학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21-04-22 19:07:20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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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서 태어나 홀로 부산행
- 스무 살 때 생긴 아이 키우려
- 온갖 궂은일 다하다 장사 시작

- 매일 새벽마다 도매시장 찾아
- 싸고 맛난 과일 위해 열정 쏟아
- 비싸단 손님 불평에 뒷말 않고
- 어려운 사람엔 손해봐도 더 줘

- 고향서 과일나무 심는 게 목표
- 사장님 앞길 배처럼 시원하길

부산에 과일가게가 얼마나 많을까. 동네 과일가게 앞을 지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노점상까지 치면 아마 수천 군데나 될 것이다. 부산 남구 감만동 버스정류장 앞 이재호(60·용당) 사장님 과일점도 그 중 하나다. 사장님과는 감만창의문화촌 입주작가로 있으면서 알게 되었다. 이곳 정류장 옆 굵은 벚나무를 기둥으로 하늘을 지붕 삼아 노점상을 한 지도 수 년이 다 되어간다. 과일도 살 겸, 내가 그곳을 찾았을 때는 마스크를 뚫고 딸기향이 달콤하게 날아들고 있었다. 딸기 외에 참외, 토마토 등 제철 과일은 물론 땅콩에 양파까지 웬만한 것은 다 있는 만물상이기도 하다. 가게도 기운이라는 게 있었다. 오후였는데도 여느 가게와 달리 생기가 느껴졌다. 제철 과일에서 풍겨 나오는 생명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생명력을 소중히 다루는 사장님의 남다른 열정 때문이기도 하다.
부산 남구 감만동 버스정류장 앞에서 즐겁게 과일 가게를 하는 이재호(왼쪽) 사장.
“탱자도 나왔네요.”

여느 과일가게에 없는 대봉 크기의 황금색 과일을 보고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사람들이 저걸 자꾸 탱자라고 하네. 금귤이라요. 탱자는 9월이고.”

금귤은 지금이 한창 맛있을 때라고 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낑깡이 금귤이었다. 그 옆으로 수북히 쌓인 토마토 박스만 보아도 하루 매출 양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많은 과일이 대부분 다 팔려나가는 이유는 가격도 싼데 맛까지 있어서다. 제철 과일은 받아 온 그날이 가장 품질이 좋고 맛도 좋다고 했다. 냉장고가 있는 가게라면 몰라도 노점에서는 그날 온 것은 그날 다 팔아야 손해를 안 본다고 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도 사장님은 그날 먹어야 맛있는 과일을 많이 가져다 놓는다. 그러기 위해 매일 새벽 반여농산물도매센터에 간다고 했다. 일 마치고 집에 가면 밤 10시쯤 되고 잠시 눈 붙이고 새벽에 일어나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 도착하면 새벽 3시 전후. 그래도 더 일찍 나온 사람도 많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 가격이 매겨지기에, 좋은 과일을 좀 더 싸게 사려면 미리 가서 경매에 나온 과일을 둘러보고 좋은 물건을 점 찍어 놓아야 한다. 채소류는 새벽 2시 30분에, 과일은 새벽 4시에 경매가 시작된다고 하니 구색을 맞추려면 그 시간이 금쪽같을 터였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20여 년간 해온 일이라고 했다.

“처음 이곳에서 장사할 때는 거의 다 남았어요. 생물이라 다음날 팔지도 몬하고, 숱하게 손해 봤지요.”

새벽 3시 반께의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농산물도매시장 모습이다. 한가득 쌓인 싱싱한 딸기가 상인들의 손길을 기다린다. 딸기에서 달콤한 향이 났다.
감만동 사람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단골이 생기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고 한다. 전라도 순천이 고향인 이재호 사장은 17살 되던 1976년 혼자 부산으로 왔다. 5남매 중 셋째였는데 형제 중 고생을 제일 많이 하고 자랐다고 했다. “어린 나이에 학교도 제대로 졸업 못하고, 혼자 부산 와서 직장도 다니고 부두에서 일도 하고. 안 해 본 거 없이 닥치는 대로 했어요.”

스무 살에 연애를 했는데 바로 아이가 생겼다고 한다. 그 아이가 돌을 하루 앞두고 하늘나라고 갔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벌어서 다 고향에 보내고 빈손으로 살림을 꾸렸다고 했다. “그때는 여기 사람들이 내 이름을 안 불렀어요. 어이 깽깽이!라고 했지. 정치하던 분들, 김대중 김영삼 씨가 서로 파벌이 심했어요. 전라도다 경상도다, 원수도 아닌데 원수처럼 갈라져 차별이 얼마나 심했다고요. 지금 그래 하면 내가 가만 안 있지요.”

나도 모르게 치미는 게 있어 사장님 입에서 거친 말이 한마디쯤 나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자네는 대한민국 사람 아닌가! 라고 따지지.” 온갖 풍파를 겪어낸 강인한 얼굴에서 그렇게 순한 항의성 멘트가 나오다니. 역시 사장님 다웠다.

“내 철칙이, 싸움하면 안 된다, 내가 무조건 손해다. 너무 당하다 보니까 아닌 것도 기다 해야 하고, 눌리면 당해야 하고,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밀어붙이면 당해야 하니까. 살아보니 내 혼자 바꿀 수도 없고, 우리도 한낱 미물한테 강자가 되잖아요. 마찬가지 약한 사람은 강자의 말 한마디에 날아가는 거요. 신세 망치는 것이죠. 그래도 내가 안 그러면 되니까.”

그때 손님이 땅콩이 얼마냐고 물었다. 오천 원이라는 말에 손님이 비싸다고 불평했다. 내가 보니 만 원어치는 돼 보였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 싸네’ 소리가 튀어나왔다. 내가 땅콩 한 봉지를 사자 바람잡이 아지매까지 뒀다고 화를 버럭 내며 가버렸다. 살면서 땅콩바람잡이아지매라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그런 손님에게도 사장님은 뒷말을 하지 않았다.

“싸게 파는데도 깎으려는 사람들이 있어요, 내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있는가보다 싶을 때는 손해도 보고 줘요. 근데 말짱한 사람들, 깐깐한 사람들, 돈도 많은 사람들이 그러면 짜증이 나버려요. 습관적으로 무조건 장사꾼 말은 거짓말이다, 무조건 남는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 팔아야 오천 원인데 하고 사 가는 사람이 있어요. 가면서 수고하세요, 하고 가요. 그러면 더 주고 싶지.”

지난 여름, 지나가다 보니 평소와 달리 트럭 가득 수박이 실려 있었다. 싱싱한 수박을 너무 싸게 팔기에 걱정이 되어 남는 게 있느냐고 여쭸다. “경매 떼면서 좀 남아서 괜찮아요. 이건 덤이다 생각해요. 동네사람들한테 싸게 주고.” 사장님 마음이 읽혀서인지 그 앞을 지나다닐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지금까지 숱한 위기를 겪었지만 십 수 년 전 배추 밭떼기 사건이 가장 큰 고난이었다고 한다. “의령의 배추 밭을 내가 거의 다 샀어요. 김장 배추는 배추이파리 4개 나왔을 때 미리 밭떼기로 사요. 근데 막상 김장철이 되니까 삼분의 일 가격도 안 되게 공판장에 막 쏟아지는 거요. 그때 집도 날리고 재산 다 날렸어요. 접고 시골로 내려갈라 했는데 아는 형님이 말리더라고요. 부두에 일자리를 알아봐줘서 그냥 눌러 앉았지요.”

사모님은 안타깝게도 십여 년 전 돌아가셨다고 했다. 아이들은 다 커서 한 명은 간호사고 한 명은 큰 회사 다닌다고 했다. 집도 있고 이제 큰 걱정은 없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안심이 됐다. 사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배라고 했다. 그 많은 과일 중 하필 배냐고 여쭈었더니 그냥 시원한 단 맛이 좋더라고 했다. “어렸을 때 장에 가면 배장수 앞에서 배를 내밀고 이렇게 두드려요. 그럼 어머니가 없는 형편에 못이긴 척 배를 사주셨어요. 늘 고생만 시켰다고 마음 아파하셨는데…, 고향에 부모님 산소도 있고.”

이 일도 재미있지만 언젠가 고향으로 내려가겠다는 생각은 여전히 갖고 계신 모양이다. 뒤늦게 꿈을 여쭤보니 자신이 하는 일에 최고가 되는 거였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이미 최고가 된 분이다. 부산의 그 많은 과일가게 중 사장님 가게를 으뜸으로 뽑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건강검진은 매년 받으세요?” 사놓은 땅콩과 토마토를 챙기다 불쑥 여쭈어 보았다.

“그럼요, 별 이상 없어요. 좀 있으면 국민연금도 나올 거고, 노령연금도 나올 거고. 보험도 많이 들어놨어요.”

나중에 고향 가면 낚시도 다니고 과일나무도 심겠다고 했다. 배나무이겠거니 했는데 종류별로 다 심겠다고 하셨다. 그곳에 또 다른 천연노천과일점이 생길지도 모를 일이다. 사장님 손에 열매 맺을 과일들이 얼마나 맛있을지 상상이 됐다. 누군가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비는 것은 나 또한 행복해지는 일이었다. 사장님 앞길이 배처럼 시원하고 달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시민기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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