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전 공구상 가득했던 거리
- 카페 하나둘 생겨 ‘전리단길’로
- 지역 예술가들 주택 개조해
- 작년 8월 복합문화공간 선봬
- 주민 위한 미술 심리상담부터
- 작가들에겐 전시기회 제공도
전리단길로 대표되는 카페 거리가 유명한 부산 부산진구 전포사거리 일대. 사실, 10년 전만 해도 철물점이 잔뜩 들어선 공구 거리였다. 오늘날에야 공업 종사자 대부분이 사상이나 강서로 터전을 옮겼지만, 과거 이 거리가 어떤 곳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공구상들이 여전히 골목마다 화석처럼 자리한다. 지역의 과거와 오늘이 뒤섞인 이 이질적 공간에 ‘별일’이 벌어지고 있다. 부산의 예술인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커피를 볶으며 풍기는 ‘탄내’와 쇠가 용접되며 뿜어지는 ‘탄내’가 혼재된 이곳. 볼트·너트, 커피 대신 그림으로 대중을 사로잡는다.
별일은 ‘별에서 일어나다’의 준말이다. 지역 예술인들은 어린이집으로 쓰였던 주택을 개조해 지난해 8월 첫선을 보였다. 예술가에겐 상시적인 작품 전시 기회를 제공하고, 대중에겐 예술로써 심리적 위안을 안기는 게 이 공간의 지상 목표다.
■ 눈·코만 그려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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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일 부산 부산진구 복합문화공간 ‘별일’에서 서은숙(오른쪽) 부산진구청장이 정연희 대표와 색채심리상담을 한 뒤 색채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
별일이 제공하는 프로그램 중 눈길을 끄는 건 단연 ‘미술·색채 심리 상담’이다. 자신의 이목구비를 그리는 것만으로 자신조차 미처 몰랐던 내면의 나를 마주하게 한다. 선호하는 색채를 통해 자신의 성향을 깨닫고, 이를 보완하는 색깔을 추천해준다.
색깔로 내가 누군지 알게 해준다고? 지난 9일 서은숙 부산진구청장이 직접 별일의 색채·미술 심리 상담을 받아봤다. 과정은 간단하다. 먼저 테이블 위에 흰 도화지 한 장과 48가지 색의 오일 파스텔을 놓는다. 이 중 마음에 드는 색깔을 골라 코를 그린다. 그다음, 또 다른 색상을 집어 이번엔 입을 그린다. 서 청장은 초록으로 코를, 레드오렌지 색으로 입을 그렸다. 첫 번째로 선택한 색깔은 자신이 타고난 색이다. 안정적이고 편안한 상태를 좋아하며, ‘인류는 모두가 하나’ 같은 생각을 즐겨하는 이들이 초록을 선호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고른 색깔은 후천적으로 얻게 된 성향을 드러내는 식이다. 서 청장이 택한 레드오렌지는 이른바 ‘사춘기의 색깔’로, 스스로 개척하며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려 하는 진취적인 색이라고 한다.
“완전히 반대되는 색깔을 가지고 계세요. 타고난 성향은 안정을 지향하는데,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개척하고자 무척 애쓰는 삶을 살고 계신 분이에요.” 상담을 진행한 정연희(여·37) 대표의 설명이다. 이런 경우 스스로 혼란한 마음이 들어 자신조차 자신의 행동이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일이 생기곤 한다는 해설이 덧붙었다. 이 말을 들은 서 청장이 무릎을 치며 답한다. “제 인터넷 아이디가 ‘예측불허’거든요.”
서 청장에게 추천된 보완 색은 ‘인디고’와 ‘보라’였다. 인디고는 이른바 ‘부장님 색깔’로 불린단다. 침착함을 유지하고, 자기 감정을 쉽게 그렇게 드러내지 않도록 컨트롤하는 것을 도와준다고 한다. 보라색은 창의적이면서 독특한, 나만의 무언가를 추구하는 색깔이다. 이 색깔들이 보완되면 서로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는 목표하에 동료를 이끌어가는 기질을 갖게 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큰언니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는 거다. 상담이 끝나면, 자신이 선택한 색깔과 보완의 색깔로 추천된 장신구들로 만든 열쇠고리도 제작된다.
■대중을 찾아가는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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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부산진구 전포사거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별일’의 전시공간. 별일 제공 |
색채 상담 외에도 별일에는 일반인이 직접 예술적 체험을 해보는 프로그램 또한 다수 마련돼있다. 매주 2회 진행되는 ‘아트 클래스’에서는 실제 작가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완성된 작품들은 별일에 마련된 갤러리에 전시되기도 한다. 참여자들 누구나 작가의 삶을 일부 체험할 수 있고, 미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인다. 매주 토요일에는 ‘아트 기브’가 열린다. 별일의 루프탑에서 예술 영화가 상영된 뒤, 전문 에듀케이터가 큐레이션을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역주민을 위한 외부 출장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정 대표 외 심리 치료 자격증을 가진 미술 전문가가 색채 심리 이론을 강의하거나 직접 개인 상담에 나선다. 미술 문화 향유의 장을 만들어 예술을 통해 지역 주민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게 목적이다.
■부산에서 예술로 밥 먹고 살자
애초 별일은 작품을 만들어놓고도 그림을 전시할 공간이 없어 속을 썩이는 부산 예술인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예술가라고 해서 굶고 살 수는 없다. 밥벌이는 해야 한다. 그런데 예술을 일생의 업으로 삼는 이들이 상상하는 삶터는 서울밖에 없다. 예술로 밥벌이가 가능한 곳이 서울뿐인 게 현실이다. 이 때문에 지역에서 성장해 예술을 배운 이들조차 고향을 떠나야만 한다. 설사 지역에 남는다고 해도, 애써 만든 작품을 대중 앞에 선보일 기회조차 얻기 어렵다. 별일이 미술·색채 심리 상담에 나서는 것도, 작가들이 예술로 생계를 해결하는 한 방법으로 시작했다.
정 대표는 “작가는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이는 경험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 내가 처음 사회에 발 디뎠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바로 내 작품을 보여줄 공간을 구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별일은 갓 대학을 졸업한 학생 등 대중과 작품으로 소통할 기회 자체가 절실한 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대중이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대중과 작가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정 대표는 “작가들이 일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 일자리가 예술과 동떨어진 경우엔 감각이 떨어지거나 아예 예술을 접게 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부산 작가들이 서울로 가는 게 너무 슬프다. 별일이 부산 작가들에게 고향에서 예술을 해도 되는 여건을 조성하는 기회의 장으로 발돋움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