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각공장 특수선 조립장 노동자
- '부산대 난리 났다' 소식 접한 뒤
- 오후 3시께 작업 멈춘 휴식시간
- "유신철폐·독재 타도" 외치며
- 앞서거니 뒤서거니 독에 집결
- 정문가려다 관리자 제지에 해산
“참으로 경이로운 광경이었죠. ‘부산대에서 난리가 났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어요. 선각 공장에서, 그 뒤편 특수선 조립장에서, 동료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서 독(Dock)까지 행진했어요. 모두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선창하면 나머지가 뒤를 붙였어요. ‘유신 철폐, 독재 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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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신문 취재진(왼쪽)이 지난달 30일 1979년 10월 16일 부마항쟁 발발 당시 노동자들의 시위가 발생했던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옛 대한조선공사)를 찾아 목격자로부터 당시 상황을 듣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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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1979년 10월 16일 이곳 노동자들의 투쟁을 목격한 김모(72) 씨가 퇴직한 후 25년여 만에 ‘옛 직장’을 찾았다. 국제신문 취재진은 한진중공업과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의 협조를 받아 김 씨와 1시간가량 그날의 현장을 살폈다.
“그때는 정문과 별관을 잇는 구름다리가 있었거든요. 건물 3층 높이 정도 됐는데, 동료 둘과 거기에 올라서서 시위를 지켜봤습니다.” 지금은 매립된 ‘제1독’을 걸으며 김 씨는 그날의 상황을 설명했다.
1979년 김 씨는 당시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 별관 직장 예비군 부대에서 일하고 있었다.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몰려나오고 있다. 분위기가 심상찮다”는 동료의 전언을 듣고 곧장 구름다리로 향했다. 눈에 들어온 것은 400명 정도로 보이는 성난 노동자들이었다. “거리가 있어 정확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분명 ‘유신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고 있었습니다.” 김 씨는 이같이 말하며 회상에 잠겼다.
당시 노동자들이 몰려나왔다는 선각 공장은 현재 조선소 정문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뒤편으론 특수선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김 씨는 그곳을 가리키며 “저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나온 거다. 딱히 무리를 이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르르 독으로 몰려왔다”며 기억을 되살렸다.
김 씨의 말에 따르면 당시 공사는 오후 3시에 휴식 시간을 제공했다. 그는 “회사 내에서 부마항쟁 발발 소식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가 돌았다. 작업이 멈춘 그 시간에, 짬을 낸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독에서 집결한 노동자들은 정문으로 나아갈지를 망설이며 추가 행보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김 씨는 “독을 빠져나와 정문으로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을 막아선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자진 해산했는데, 엄혹한 시대였으니 구호를 외친 것만 해도 상당히 겁이 났을 거다”고 전했다. 그는 “YH 여공 사건,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사건 등으로 모두가 분노하던 시절이다. 그런데 유신에 맞서는 시위가 일어났다고 하니 노동자들도 불의에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씨의 증언이 사실로 확인되면 대한조선공사 노동자들의 부마항쟁 참여는 한국 노동운동사의 새 지평을 여는 사건으로 기록돼야 한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1970년대는 군사 정권이 본격적으로 노조를 파괴하던 시절이다. 이렇다 할 노동운동이 일어나지 못하면서 ‘노동운동의 공백기’로 남아 있다. 1960년대 ‘전투력’을 자랑한 공사 노조도 1969년 정권의 개입으로 조합원 다수가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으며 동력이 떨어졌다. 1970년대 들어서는 유신 정권의 새마을운동에 적극 동참하는 등 ‘어용 노조’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공사 용접사였던 김진숙(1981년 입사)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노조 대의원으로 당선된 1986년 이전까지 공사 노조는 ‘민주 노조’와 거리가 멀었다.
저서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에서 1960~80년대 공사 노조를 세밀히 분석한 미국 워싱턴대 남화숙 교수는 국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공사 노조에서 저항적인 움직임이 다시 생겨나는 과정에 늘 의문이 있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말하는 ‘아저씨 노동자’들이 왜 노조 민주화에 호의적이었는지 몹시 궁금했다”며 “(이번 증언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