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 17세때 시모노세키 끌려가
- 해저 탄광서 목숨 걸고 탈출
-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할 것"
-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 내용
- 日 강제노역 미화에 정면 반박
- 한국 "군함도 세계유산 취소"
- 이달 내 유네스코에 서한 발송
- 日 "약속 잘 지켜” 오리발 여전
“조선인을 귀여워했다고? 윤리도 도덕도 다 내다 버린 놈들, 짐승도 그렇게는 안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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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인 신영현 옹이 22일 부산의 자택에서 “일본 아베 정부는 사과하라”는 입장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원준 프리랜서 |
한국과 일본이 국교 정상화 협정에 서명한 지 55주년인 22일. 부산 북구 한 아파트에서 만난 일제강제징용 피해자 신영현(94) 옹은 일본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역사왜곡에 대로했다. 일본이 지난 15일 도쿄도 신주쿠 소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유네스코 산업유산정보센터(이하 정보센터)를 개장하면서 강제징용 역사를 애초 설립 취지와 달리 정당화한 것에 대한 분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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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에 소개된 일제강제노역 현장인 ‘군함도’의 모습. 연합뉴스 |
2015년 7월 일본은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 23곳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한국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 의사에 반하게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강제로 노역했다고 인정하고, 피해자를 기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세워진 정보센터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했다. “집단 따돌림이 있었나? 아니 귀여워해줬지” “채찍질은? 노동시켜야 하는데 채찍질하겠냐” “돈은 잘 받았나? 받았다. 떼어먹었으면 그냥 뒀겠나” 등 당시 군함도 탄광에서 일했던 아버지의 말을 토대로 구술한 한 일본인의 증언을 전시하면서 인정·사과는커녕 수탈의 역사를 미화하는 역사왜곡까지 서슴지 않았다.
신 옹은 “가당치도 않은 이야기”라며 “강제징용도 한 적 없다고 한 게 일본 아베다. 내 말이 틀렸으면 틀렸다고 해라. 일본 놈들 죄를 따지면 수백 가지다”고 말했다.
1926년 7월 경남 창녕에서 태어난 신 옹은 가족을 따라 38선 경계인 황해도 연백으로 이사해 터를 잡고 살았다. 1943년 봄 그에게 징용 통보서가 날아왔다. 만으로 17세밖에 안 되던 해였다. 가기 싫다는 이야기도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불응하면 총을 들이대고 생사람을 죽이는 판국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끌려갔다. 밤 기차를 타고 간 곳은 부산이었고, 배를 타고 내려보니 일본 야마구치현의 시모노세키였다. 동네사람 2, 3명이 함께 갔지만 도착해서 보니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그렇게 해저 탄광으로 끌려간 그는 광부로 일했다. 그는 “공기 압축기로 바람을 넣고 기계를 돌리면 구멍이 뚫렸는데, 석탄이 쏟아졌다. 그걸 실어서 밖으로 내보냈다”면서 “눈 코 입으로 먼지가 다 들어가 죽을 것 같았다. 여기서 죽으나 도망치다 죽으나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1945년 해방을 앞두고 그는 동료 2명과 탈출을 계획했다. 새벽 순찰 감시를 피해 인근 야산으로 그냥 달렸다. 일본 농민이 목격했지만 강제징용을 당하는 조선인의 고통을 아는 터라 그냥 넘어가 줬다고 한다. 3명이 함께 움직이면 발각될 것 같아 이내 헤어졌고, 날이 밝자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한 민가로 들어갔는데 운 좋게 조선인을 만났다. 모래를 끌어 나르는 일을 하던 그를 도와 밥을 얻어먹었다. 다행히 당시 일본에서 일하던 친형의 주소를 기억하고 있어, 편지를 썼고 겨우 만났다. 그렇게 일본에서 해방을 맞이한 그는 친형과 함께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신 옹은 “당시 탄광에서 내가 살던 숙소에만 200명이 넘는 조선인이 있었다. 도망치다가 잡혀 온 사람들은 몽둥이로 팼는데 사람이 죽어도 사고 처리했다”면서 정보센터에 전시된 내용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일본 정부와 아베 신조 총리를 향해 간곡하게 호소했다. 그는 “수백만 명의 조선인이 강제징용과 위안부로 동원돼 피해를 봤다. 사람들한테 아무런 말도 없이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냐”면서 “지금도 거짓말을 일삼는 아베 정부는 사과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는 유네스코에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에 대한 세계유산 지정 취소를 요구하는 내용의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명의 서한을 이달 안으로 발송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한 대응 차원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2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유네스코의 결의와 권고를 받아들여 약속한 조치를 포함해 성실히 이행해오고 있고 적절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반박하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김진룡 기자 jryong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