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구촌 ‘약물 재창출’ 속속 활용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신종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1번(여·35·중국인)과 2번 환자(남·55·한국인)가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에이즈) 치료제를 투약받은 뒤 상태가 호전됐다. 해외에서도 말라리아와 에볼라 치료제가 신종 코로나 환자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임상·연구 결과가 잇따라 나와 사상 초유의 바이러스 사태 진전에 청신호가 켜졌다.
2번 환자의 주치의인 진범식 국립중앙의료원 소속 감염내과 전문의는 5일 기자회견을 열고 2번 환자가 지난달 24일 이 병원에 입원해 격리치료를 받은 지 13일 만에 퇴원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국립중앙의료원에 따르면 환자는 입원 당시 인후통 외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 그러나 복용 중이던 해열제를 중단하자 체온이 38도까지 상승했다. 의료진은 2번 환자의 입원 3일째 항바이러스제 투여를 결정했다. 2번 환자에게 투여한 항바이러스제는 먹는 HIV 치료제인 ‘칼레트라’다. 로피나비르와 리토나비르 성분의 혼합제로, HIV의 증식에 필요한 효소(단백질 분해효소)의 활성을 억제한다. 진 전문의는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르지만 항바이러스제 투여 3일째부터 흉부 엑스레이상에서 호전 소견을 보였고 입원 7일째부터는 기침 등도 소실됐다”며 “이후 6회 연속 상기도, 하기도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되지 않는 등 격리해제 기준을 충족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서울대병원 감염내과 오명돈 교수팀은 국제학술지(JKMS)를 통해 1번 확진자에게 HIV 치료 성분 두 개(로피나비르 리토나비르)를 섞어 투약했다고 밝혔다. 1번 환자를 치료 중인 인천의료원에 따르면 이 환자는 호전돼 격리해제가 검토된다. 김진용 인천의료원 감염내과 전문의는 “1번 환자의 임상 증상이 소실된 월요일(3일)부터 화요일(4일)까지 (바이러스) 검사를 진행했다”면서 “두 번 모두 ‘음성’ 결과를 얻으면 목요일(6일)께 격리해제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환자는 앞서 지난 1일과 2일 진행한 바이러스 검사에서는 결괏값이 모두 ‘음성’이었다. 1·2번 환자에 쓴 혼합제는 최근 태국 현지 의료진이 확진자에게 사용한 HIV 치료제와 같은 약물이다.
미국에서는 최초의 확진자가 완치되면서 이 환자가 투여받은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가 신종 코로나 감염증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19일 워싱턴주 에버렛의 병원 응급실을 찾은 35세 남성은 국내 1번 확진자와 마찬가지로 입원 이후 2일째부터 7일째까지 39도 이상의 고열이 지속되다가 폐렴까지 나타났다. 7일째 날 의료진은 에볼라 바이러스 치료제인 렘데시비르를 썼고, 8일째 환자의 상태가 혼전됐다. 의료진은 논문을 통해 “환자가 증상이 심하지 않았던 입원 4일째 검사에서도 목과 코에서 많은 양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증상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전파력이 강할 수 있다는 증거”라며 주의를 당부했다.
중국에서는 렘데시비르와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이 신종 코로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검증해 중국 각급 성·시 정부에 통보했다.
한국파스퇴르연구소는 신종 코로나 치료제 개발에 ‘약물 재창출’ 전략을 쓰면 연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약물 재창출은 상용화했거나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에서 새 약효를 발견해 다른 질환에 적용하는 ‘신약 재창출’ 기술이다. 연구팀은 국내외 의료진이 확진자에게 사용한 HIV 치료제(로피나비르 리토나비르)와 렘데시비르를 약물 재창출 전략을 위한 치료제로 꼽았다. 연구팀의 김승택 팀장은 “렘데시비르가 가장 연구 개발이 많이 진전된 항바이러스 후보 물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