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가면 숨 차고 몸 뻣뻣
- 경비 일 계속할 수 없었다”
- “심리치료·경제 지원 포함
- 피해자 보호법 개선돼야”
“자꾸 생각나요, 그때가…. 안인득과 처음 마주친 그 장면이요. 흉기로 나를 찌르던. 잊으려 해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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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창원지법에서 정연섭 씨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서종영 인턴기자 |
26일 경남 진주 아파트 방화·살인 사건의 국민참여재판이 열린 창원지방법원. 안인득의 범행을 필사적으로 막은 당시 아파트 경비원 정연섭(29) 씨가 증인 신문을 마치고 나왔다. 정 씨는 자신도 크게 다쳤지만 입주민을 먼저 대피시켜 ‘영웅’으로 불렸다.
이날 정 씨의 광대뼈 부위에는 흉터가 선명했다. 안인득이 휘두른 흉기에 광대뼈가 부서져 수술을 받은 흔적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건 마음의 흉터인 트라우마였다. 정 씨는 “아직도 무섭다. 4층 복도에서 흉기를 든 안인득과 마주쳤을 때의 기억이 문득 떠올라 괴롭다”고 했다. 정 씨는 증인 신문을 앞두고서도 ‘안인득과 마주치지 않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구할 만큼 마음의 상처가 크다.
정 씨는 지난 4월 17일 새벽 화재 비상벨이 울리자 현장으로 달려갔다. 불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가스 밸브 잠금 상태를 확인하고 4층 집 현관문을 두드리며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그러다 비상계단 쪽에서 흉기를 들고 서 있던 안인득과 맞닥뜨렸다. 경비원으로 일한 지 한 달 보름께 된 날이었다. “안인득이 내게 다가오며 ‘경비실에서 한 일이 뭐냐’고 묻더니 다짜고짜 흉기를 휘둘렀어요. 그리고 비상계단으로 사라졌습니다. 잠시 후 아래층에서 비명이 들렸어요.”
악몽을 겪은 정 씨에게 남은 건 상처뿐인 영광이다. 정 씨는 부상·질병으로 취업하지 못하는 기간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휴업급여를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다친 부위가 얼굴이라 ‘일하면서 치료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곤 하루 치 급여인 6만6000원만 지급했습니다. 언론 보도 이후 휴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생계는 여전히 불안합니다.”
지난 6월 다시 아파트에 출근한 정 씨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직했다. 경비 업무를 할 수 없을 만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심각했기 때문이다. 정 씨는 “관리소장의 배려로 처음에는 현장에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안인득 사건이 발생한) 303동에 갈 일이 생겼는데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면서 숨도 가쁘고 몸이 이상했다. 다리도 뻣뻣해졌다. 참으려고 해도 몸이 이렇게 반응해버리니 사직서를 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심리치료를 받는다. 의사가 후유증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을 거라고 하더라”면서도 “원망스럽지만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오더라도 똑같이 할 것 같다. 내 원래 성격이 그렇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 씨 같은 범죄 피해자의 트라우마 치료와 경제적 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동의대 최종술(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사 피해자에게 보상해주는 제도가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보상 범위도 좁다. 정신적 피해를 포함한 포괄적 피해자 보호를 위해 현행법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광역 트라우마센터를 설립하거나 트라우마 치료를 지원하는 공익단체에 정부 예산을 지원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